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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축복 나누기

고요를 깨뜨리실 때

작성자융제|작성시간26.06.14|조회수17 목록 댓글 0


무너진 고국 예루살렘… 느헤미야의 고요한 삶이 무너지고 고난이 예견된 역사적 사명에 헌신을

다하다 우리를 흔드시는 하나님의 뜻 따라 편안함을 깨고 가치 있는 삶으로 승화시키길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겪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 1:3~5)

마땅한 놀이가 없던 초등학교 시절에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를 즐겼습니다. 검정 고무줄을 양쪽에서

길게 잡고는 노래를 부르며 팔짝팔짝 뛰어넘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장난이 심한

녀석들은 예리한칼로 고무줄을 끊고 도망치곤 했고, 분을 참을 수 없는 여자아이들은 엉엉 울곤

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마치 심술궂은 아이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그의 삶을 뒤흔들어 엉망을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본문도 그러한

예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주전 465~424년 재위) 시대에 왕의 술을 맡은 관원으로

수산궁에서 잘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조상은 주전 589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을 때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포로의 후손인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수산궁에서 권력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술을 맡은 관원이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관쯤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이 고요하고 안락한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고요한 삶을 뒤흔드셨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부터 느헤미야의

친척 하나니를 비롯한 몇 사람이 왔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예루살렘의 참혹한 형편을

말해주었고, 느헤미야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안락한 인생은

끝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슬퍼하고 울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게다가 그 기도는 회개

기도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과 자기 가문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루살렘의 형편과 느헤미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거리도 수천 리 떨어져

있었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은 백 년도 더 된 일로서 그때 느헤미야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편안히 살고 있는 이의 삶을 흔드실까요? 그것은 새로운 삶으로 불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느헤미야도 그랬습니다. 그는 수산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삶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남은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 생애가 얼마나

고단하고 위험하고 힘든 희생적 삶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생애는 고난을 통하여

가치 있는 삶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느헤미야가 수산궁의 안락한

삶을 고집했다면, 그의 생애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며, 우리는 그를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함으로써 정말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흔드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교회는 편안히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요를 깨뜨리시고, 한국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무릎 꿇고 부르짖게

하십니다. 안타까운 기도 제목이 많습니다. 세계는 전쟁 중입니다. 북한은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부인하고, 통일을 포기하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두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휴전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장벽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국내의 정치적 불안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수당의 무리한 입법 폭거가 국민을 불안하게 합니다. 성경의 원리에 도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수십 가지 악법들이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편안한 삶을 깨뜨리십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안락한 삶이 깨어지고, 고단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떠맡지 않아도 될 일에 자신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 봉사, 애국적 헌신,

민족을 위한 수고는 모두 이런 측면이 강합니다. 편안히 잘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애국운동에

나섭니다. 지사의 길을 걷습니다. 작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 학부모기도회, 거룩한방파제기도회,

철야기도회를 통해 부르짖고, 퀴어축제에 맞서 국민대회를 열고, 올바른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선택되도록 기도하고, 바른 한 표를 행사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수산궁을 떠나듯이, 우리도 편안한

삶을 조금씩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복음통일을 위한

기도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느헤미야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우리도 작은 애국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 김운성 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6년 6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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