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터키) 중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78초간 뒤흔든 규모 7.8의
강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망의 비극과 145회의 여진의 공포로 이어졌다. 14일에 수도
앙카라에 있는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집계된 지진 사망자 수는 35,418명, 부상자 수는
105,505명이었다. 시리아 국영 언론과 유엔 집계를 통해 파악한 시리아 쪽 사망자
5,814명을 더하면 이번 지진으로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수는 41,000여 명이나 된다.
이런 현실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면,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객과 고아와 나그네와 같이
약하고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전쟁과
기근, 지진과 재난의 현장에 마치 강도 만난 자의 이웃과 같은 심정으로 함께하신다.
이런 재난의 상황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도움의손길이다. "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
Slow help is No help라는 서양 속담처럼 선행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 문제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나누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유는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면에 문제가 있으니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이 쉽지 않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눔을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한다. 또한 긍휼의 마음으로 하지 않고, 남을 나보다 낮게 보며 동정의 마음으로
한다.
사실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서 나누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야
섬김과 나눔, 봉사와 헌신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 나의 의지로 하는 나눔과 섬김은
유효기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유효 기간이 없기에 그 은혜에 기초한 나눔은
끝이 없다. 없으면 나누지 못하고 있으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게 된다.
하버드대에서 돈을 받고 노동에 참여한 그룹과 무료로 봉사에 참여한 그룹을 나누어
체내 면역 기능 변화를 검사했다. 그 결과 봉사에 참여한 그룹에서만 특별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면역 기능이 월등하게 높아지고 유해 병균을 물리치는 항생물질이 생겼다.
직접 나누거나 다른 사람의 나눔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체의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마더 테레사 효과’ The Mother Teresa Effect가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 나눔은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봉사할지 찾고 발견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 성경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한다. 진정한 나눔은 자신의 것을 먼저 기꺼이 내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눔에는
기쁨이 동반된다. 주는 기쁨, 받는 기쁨, 함께하는 기쁨이 있다. 이것은 나눔을 통해 체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나에게 나눌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나눔은 주위 환경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더 밝아지게 만든다. 성경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라고 말한다(눅 6:38).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고 말한다(고후 9:6). 이처럼 적게 나누면 적게 거두고 많이 나누면 많이 거둘
것이다. 그래서 나눔은 소유의 많음에 있기보다 마음의 넉넉함에 있다.
나눔은 사랑할 때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나눌 것이 있다. 주고 또 더 주고 싶다.
나눔은 희생으로 시작되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나눔은 한마음과 한뜻을
가졌기에 화평케 하는 자로 의의 열매를 맺었다. 나눔의 삶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와 새 힘을
준다. 나눔은 어떤 조건을 달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줄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를 보거나 소식을 들으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된 것이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드린
마게도냐 교회들(고후 8:1-5)처럼 인간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으로 해야
한다. 마음에 정한대로 하고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고후 9:7).
나눔은 해본 사람이 또 한다. 나누는 즐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이다. 나눔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는 이유와 같다.
농부는 콩 세알 중, 한 알은 공중의 새 몫이고, 한 알은 땅속의 벌레들 몫이며, 마지막 한 알만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안다. 나누는 마음 없이 한 알만 심으며 수확을 기대했다가는 빈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래서 농부는 하늘과 땅이 주는 만큼 얻고, 어부는 바다가 주는
만큼 거둔다. 동정이 아닌 긍휼의 마음으로 행하는 나눔은 행복이요 축복이며 형통이다.
- 윤호용 목사 저, ‘관계의 은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