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8
성문품(聲聞品)-5
5. 부루나의 문병
그때 세존께서 부루나1>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여라."
그때 부루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감히 그에게 문병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제가 옛날 한때에 큰 숲 속에서 새로 출가한 여러 비구2>들에게 법을 말하고 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 유마힐이 그곳에 와서 저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부루나 존자(尊者)시여!.
마땅히 먼저 선정(禪定)에 들어가 비구들의 마음을 관찰한 뒤에 그들에게 법을 말씀하셔야,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는 일이 없을 것 입니다.
마땅히 먼저 모든 비구들이 어떤 염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환하게 아셔서, 값을 매길 수 없는 폐유리(吠琉璃)3>의 보물을, 잘 깨지고 값싼 수정(水精)4> 구슬과 같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존자 부루나여!.
모든 중생의 근성(根性)이 차별되는 것을 관찰하지도 않고서, 조그마한 근기가 받을 법을 주지는 마십시오.
그들 스스로 상처가 없는데, 그들을 상처 입히지 마십시오.
큰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작은 길을 보여 주지 마십시오.
햇빛을 반딧불과 같게 만들지 마십시오.
큰 바다를 소 발자국에 넣지 마십시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지 마십시오.
사자의 큰 울부짖음을 들여우의 울음소리와 같게 만들지 마십시오.
존자 부루나여!,
이 모든 비구들은 전부 과거에 대승(大乘)의 마음을 내기 시작하였다가,5> 깨달음을 바라는 가운데 이 뜻을 잊었을 뿐인데, 어찌 성문승(聲聞乘)의 법을 보여 주겠습니까?
제가 성문(聲聞)을 관찰해 보니, 성문은 지혜가 작고 얕아서 날 때부터의 맹인6>보다는 나으나, 모든 중생의 근성이 묘하고 지혜로움을 관찰하는 대승의 마음이 없는 까닭에, 모든 중생의 근성이 날카롭고 무딤을 분별치는 못합니다.
그때 유마힐은 곧 이와 같이 뛰어난 삼매(三昧)7>를 가지고 모든 비구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생8>의 차별되는 일들을 기억하게 하니, 일찍이 과거의 오백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심은 온갖 선근(善根)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뛰어나게 쌓은 공덕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으로 돌렸던9> 일을 기억하였습니다.
비구들이 이와 같은 전생의 일들을 기억하고 나니,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다시 앞에 나타나 곧 저 유마힐 보살10>의 발에 머리를 숙여 절하였습니다.
그때 유마힐은 그들에게 법을 말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에서 다시는 물러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성문(聲聞)의 사람들은 중생의 근성이 차별됨을 알지 못하니, 여래에게 말씀드리지 않고서 저 중생들에게 곧장11> 법을 말하면 안 되는구나.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성문의 사람들은 중생의 뛰어나고 못난 차별되는 여러 근성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과 같은 선정에 늘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맡을 수 없습니다."
*참고 해석
1> 만자자(滿慈子): 부루나(富樓那)의 의역(意譯).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부라나매저려야부다라(富羅拏梅低黎夜富多羅)·부나만타불다라(富那曼陀弗多羅)·보랄나매달리니불달라(補刺拏梅坦利尼弗咀羅)라고 음역(音譯)하고, 만원자(滿願子)·만축자(滿帆子)·만자자(滿慈子)라고 의역한다. 인도 교살라국 사람, 바라문 종족의 출신, 아버지는 가비라성주(迦毘羅城主) 정반왕의 국사, 태어난 집은 큰 부자이고, 부처님과 생년월일이 같다. 대단히 총명하여 어려서 4베다(吠陀)·5명(明)을 통달, 세속을 싫어하여 입산 수도, 부처님이 깨달아 녹야원에서 설법하심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과를 얻다. 변재(辯才: 말솜씨)가 훌륭하여 불제자 중에 설법제일 (說法第一)로 불린다. 뒤에 여러 곳으로 다니며 중생 교화에 전력하였다.
2> 필추(苾芻):bhikkhu, 비구(比丘)·픽추(福芻)·비호(比呼)라고 음역(音譯). 걸사(乞士)·포마(怖魔)·파악(破惡)·재근(除饉)·근사남(勤事男)이라 의역(譯). 남자로서 출가하여 걸식으로 생활하는 승려로 250계를 받아 지니는 이.
3>폐유리(吠琉璃): 실론 섬에서 나는 석영의 일종인 묘안석(猫眼石), 아름답고 귀하여 보물로 취급됨, 비유리(毘瑠璃), 비두리(毘頭梨)라고도 음역함.
4> 수정(水精): 수정(水晶)과 같다. 파려(玻瓈)라고도 한다.
5> 발취(發趣): 시작하다. 어떤 마음을 일으키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 도(道)를 이루고자 발심(心)하고, 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6> 생맹(生盲): 날때부터의 장님, 생맹천제(生盲闡提)의 준말, 생맹천제(生盲闡提)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법(正法)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자. 천제(闡提)는 일천제(一闡提)의 약자로서 불법에 대한 믿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자. 불법을 믿지 않는 자는 마치 태어나 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이 이 세상에 빛이 있음을 믿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생맹천제(生盲闡提)라고 부른다.
7> 삼마지(三摩地): 삼매(三昧)의 다른 음역(音譯), 삼매(三昧)는 samādhi의 음역으로서, 삼마제(三摩提·三摩帝)·삼마지(三摩地)라고도 음역, 정(定)·등지(等持)·정수(正受)·조직정(調直定)·정심행처(正心行處)라 번역, 산란한 마음을 안정(安定)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여 망념(妄念)에서 벗어나는 것.
8> 숙주(宿住):①과거 세상에서 살던 곳. 전생에 살던 곳. ②전생. ③옛날에 이루어진 일.
9>회향(回向): =회향(向), 회전취향(迴轉趣向)의 약자, (무엇을 어디로) 향하여 돌리다는 뜻. 자기가 닦은 선근(善根)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불과(佛果)로 향하여 돌림, 보리회향(菩提廻向)은 자기가 지은 온갖 선근을 보리를 향하여 돌려서 보리 즉 깨달음인 불과(佛果)를 얻으려 하는 것.
10> (大士): 마하살(摩訶薩)의 번역, 보살과 같은 뜻.
11> 첩이(輒爾): ①늘, 항상. ②곧, 바로, 즉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