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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공연예술] 방창과 흐름식 입체무대

작성자맑은영혼(김승규)|작성시간07.05.03|조회수49 목록 댓글 0

서사적인 극을 위한 장치 
[북한의공연예술] 방창과 흐름식 입체무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방창과 흐름식 입체무대는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서사적 특징과 연관된다.

▲ 방창과 흐름식 입체무대는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서사적 특징과 연관된다. 

 

지난 회에서 ‘<피바다>식 혁명가극’이 지니는 독특한 특성을, 대중성, 민족성, 서사성이라는 세 가지 틀로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절가와 춤의 활용을 대중성으로 설명한 바 있다. 두 번째 특성이 ‘민족성’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민족문화유산의 계승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설명한 내용과 같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즉 남한의 오페라와 달리, 국악기와 양악기가 섞인 ‘배합관현악’으로 연주된다는 점이 핵심적 내용이다.

 

이번 회에서 설명할 내용은 ‘서사성’과 관련된 특성이다. 서사성(敍事性)이라는 말이 일반 독자에게 그리 편한 말은 아니다. ‘서사(敍事)’는 사건을 서술한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극’은 사건을 재현한다. 여기에서 사건이란 대립이 있는 행동인데, 극은 이를 재현하고 서사는 이를 서술한다.

 

극적인 것 서사적인 것

 

좀 더 쉽게 말하면, 흥부와 놀부가 나와서 대립하다가 화해하는 사건을 흥부와 놀부 역을 하는 배우가 직접 나와서 연기를 하면서 보여주면 ‘극’이 되고, 이를 제삼자가 서술해주면 ‘서사’가 된다. 제삼자가 서술해준다는 것은 ‘그때 흥부는 놀부에게 쫓겨났다’,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었다’는 식으로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극에서는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만 등장하면 된다. 그러나 서사에서는 그 인물 말고도, 사건을 서술해주는 ‘서술자’가 존재한다. 즉 ‘흥부는 놀부에게 쫓겨났다’고 서술한다고 했을  때에, 흥부와 놀부처럼 직접 사건 속에 들어가 있는 인물 말고, ‘쫓겨났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를 서술자라고 한다. 소설이나 서사시, 설화, 판소리 등은 모두 서사적인 예술이다. 사건을 직접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극과 달리 서사는 서술자가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극은 대립하는 행동 그 자체의 힘으로 밀려간다. 즉 사건이 스스로 발전한다. 즉 인물과 인물이 각기 자신의 목표를 의지적으로 관철하려 할 때 충돌이 생기고, 그것이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의 양상이 변화 발전해 간다. 그 다음 장면에는 앞 장면의 결과로 새로운 양상의 갈등이 벌어지고, 또 그 다음 장면은 그것이 발전한 새로운 양상이 벌어져, 결국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이르면 절정이 된다. 그 다음에는 절정에서 떨어져 내리는 해리와 결말로 가게 된다. 즉 극에서 사건은 스스로의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극에서는, 인물들이 나와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지켜보도록 만든다. 지켜보고 있으면 사건은 스스로 발전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사는 다르다. 스스로의 동력이 아니라, 서술자의 매개에 의해 이끌어져 간다. 대립의 행동이 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게 없어도, 서술자가 미리 분위기 잡으면서 사건을 예고할 수 있다. 사건이 막 벌어지고 있을 때에, 그걸 계속 지켜보지 않고 잠깐 다른 장면을 보여주면서 관객․독자의 기분을 바꾸어 주기도 한다. 인물 둘이 직접 싸움을 하지 않는데도, 두 명의 인물이 각기 자기 집에서 화를 버럭버럭 내는 장면을 교대로 보여주면 둘이 속으로는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즉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인물과 사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에게서 나온다. 그가 이야기를 주물로 각 부분을 재배치하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은 서사문학의 대표적 장르이다. 연극은 극문학의 대표적인 장르이다. 그럼,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것은 서사일까 극일까?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서술자 없이 인물이 직접 나와 재현하므로 극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카메라가 서술자의 역할을 하는 예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사건이 있는 곳을 카메라가 비추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카메라가 비추고 싶은 곳을 비추어서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서사적인 예술은 극에 비해 장면수가 많아지고 이야깃거리가 복잡하며 풍부하다. 생각해 보라. 서술자가 자신이 알아서 사건을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고, 또 카메라를 옮겨 다른 장면을 보여주고, 또 궁금증을 야기시키다가 다시 그 사건을 보여주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면, 장면의 수는 매우 많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카메라가 안방 비췄다 건넌방 비췄다 하는 식의 장면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장면 수는 매우 많아지는 것이다.

 

무대에서 하는 연극은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극과는 달리, 장면 전환이 큰 의미를 가진다. 영상물에서 장면 전환은, 그냥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상을 맞대어 편집하기만 하면 된다. 두 장면의 연결은 아무런 틈도 없다.(심지어 요즘은 앞 장면의 마지막에, 그 다음 장면의 음향을 미리 넣어 장면 전환의 틈을 더 없애 버리고 긴박하게 넘어가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무대의 연극에서 장면을 전환하려면 (적어도 북한처럼 사실주의적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경우에는) 조명을 끄고 배우가 퇴장하고 새 장면의 배우가 등장하고 나서 조명이 들어오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때로는 조명을 끄거나 막을 닫은 상태에서 무대장치를 변환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무대에서 장면 전환은, 영상물의 장면 전환처럼 시간적 틈이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무대의 연극에서 마치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장면 전환을 자주 하면 극의 흐름이 자주 툭툭 끊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설명이 좀 길었다. 다시 혁명가극 이야기로 가보자. 혁명가극은 ‘극’이다. 그것은 소설도 영화도 텔레비전 드라마도 아니다. 그런데 북한의 혁명가극은 극이면서도 장면이 매우 많고, 한 장면도 여러 도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 혁명가극은 극이면서도 매우 서사적인 작품과 닮아 있다. 이는 극으로 보자면 결격사유일 수 있다. 한 장면 안에서 충분히 사건을 진행시키고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재미있는데, 자꾸 장면이 전환되니 호흡이 툭툭 끊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혁명가극은 극 중에서는 서사적 성격이 강한 극이다.

 

따라서 혁명가극에서는, 서사성을 강화하고 호흡을 떨어뜨리지 않고 매끄럽게 처리하는 방법들이 고안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북의 <피바다>식 가극의 중요한 특징으로 손꼽히는 방창과 흐름식 입체무대라고 보인다.

 

반복되는 선율의 절가에 극적 흐름 만드는 방창

 

방창은, 쉽게 말해서 무대 바깥에서 제삼자의 시각에서 독창 혹은 합창으로 불러주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북의 가극에서는 방창과 합창을 구별한다. 무대 위에 인물로 출연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은 그냥 ‘합창’이다. 그러나 무대 아래쪽에서 서술자처럼 노래를 불러주는 것은 방창이다.

 

예를 들어보자. 흥부가 내쫓는 놀부에게 매달려 사정을 하는 장면을 가극으로 한다고 해보자. 뒤에 늘어선 수십 명의 흥부 자식들이 큰아버지인 놀부에게 잘못을 빌며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면 그것은 그냥 합창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아 불쌍하다 흥부여. 결국 이렇게 쫓겨나는구나. 이 엄동설한에 도대체 어디에서 살란 말이냐. 가슴이 막막한 흥부는 땅을 치며 통곡한다”라는 노래가 나온다고 해보자. 이런 가사를 부를 수 있는 인물은, ‘극’의 상황 안에서는 없다.(영화 용어로 치자면 디제시스 안에서는 없다.) 그런데 극중 상황 바깥의 제삼자라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방창은 바로 이런 것이다. 무대의 아래쪽에서 합창단 의상을 입고(인물의 의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극중 상황을 설명하거나 그 상황에 대한 서술자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하는 것이다.

 

북의 문헌에 의하자면, 방창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개방하고 부각한다. 극 정황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작품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극을 발전시킨다. 음악과 극을 조화롭게 결합시킨다. 연기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무대생활을 지속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관객들의 심리를 대변하면서 그들을 극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기능을 한다.

 

다소 기능적으로 볼 때에 방창은 극이 늘어지는 것을 막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극을 하다 보면 대사 없이 행동 연기만 하게 되는 때가 생기는데(이런 서사적 작품은 더더욱 그런 것이 많다) 이런 틈이나 장면 전환의 중간 등을 메꾸어 줌으로써 극이 늘어질 틈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의 가극을 보면, 인물이 노래를 하다가 무언가 내면적인 생각을 하는 대목이 나와 더 이상 대사(노래)를 하지 않으면 바로 그때 방창이 개입한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노래가 계속 끊이질 않도록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인물의 노래와 방창이 교대로 흘러나오면서 전체적으로는 노래가 계속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물들의 노래는 짤막짤막하게 분절하기가 쉬워진다. 북의 가극의 노래들을 보면, 서양의 오페라와 달리 한 인물의 노래 하나가 지루하게 지속되지 않고 짤막하게 끝나버린다. 그리고 그 뒤를 바로 방창이 이어간다. 절가로 만들어 쉽게 들리는 짧은 노래 형식이 대중적이라고 판단하며 이를 선호하는 북의 관행과 조응하면서, 짧은 노래의 잦은 배치로 공연이 늘어질 새 없이 흘러가도록 만들고, 또 이렇게 같은  선율의 절가를 반복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일관된 정서적 이미지와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재현주의적 무대장치 분절없이 전환하는 ‘흐름식 입체무대’

 

흐름식 입체무대는, 시각적인 측면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암전을 하지 않고 무대장치를 전환하는 방식이다. 사실주의처럼 재현주의적 무대장치를 마치 영화의 장면전환처럼 빠르고 분절 없이 전환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대목은 내가 완전히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나는 북의 가극을 녹화영상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녹화영상으로 보자니 구체적으로 장면의 어느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는지를 선명하게 알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녹화물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조명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무대장치가 옆으로 흘러가게 하여 교체하거나, 겹겹의 무대장치를 만들어놓고 앞의 것을 위로 올리거나 혹은 앞으로 새로운 무대를 내리는 방법, 반투명막 등을 사용하여 특정 화면을 영사하는 방법 등을 자주 쓴다는 것이다. 예컨대 광한루 장면에서는, 방자가 몽룡의 분부로 그네터에 있는 춘향을 데리러 갈 때에는 무대 오른편에 있던 광한루 누각이 거의 무대 바깥으로 밀려 나가면서 왼편으로는 춘향이 서 있는 그네터의 작은 다리가 밀려 들어와 장소의 이동을 보여준다. 이별 장면에서도 몽룡이 떠난 후, 울부짖는 춘향을 실은 채 부용당이 왼편으로 밀려 나가면서 오른쪽으로는 오리정이 들어온다. 이 역시 혁명가극으로부터 시작된 무대미술의 방법인데, 혁명가극에서는 <춘향전>에서보다 훨씬 더 자주 이러한 방법을 쓰고 영상적 기법의 사용도 매우 적극적으로 나타난다.(<춘향전>에서는 비교적 부분조명이나 짧은 암전을 이용하여 바꾸는 경우도 많은 데에 비해, 혁명가극에서는 완전히 무대 전체를 밝히는 조명 아래에서 장치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방법을 쓰면 장면 전환에 암전을 하여 현격한 시간적 분절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지므로, 극영화에서처럼 잦은 장면전환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방창까지 결합되면, 장면 전환은 훨씬 쉽고 부드러워진다. 암전을 하지 않고도 방창이 흘러나오는 사이에 무대장치를 겨울에서 봄으로 흘러가듯 바꿔버리면, 암전 없이 시간의 경과를 보여줄 수 있다.

 

흐름식 입체무대에서처럼 암전 없이 무대를 전환하는 것은 남한의 대극장 공연에서도 보편화되어 있다. 반투명막을 사용한다든가, 회전무대, 아래위 혹은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무대, 이중삼중의 무대장치를 무대 위의 대형 바(bar)에 매달아 올리고 내리는 방법 등 암전 없는 무대 전환은 매우 보편적이다. 물론 남에서 이러한 방법이 보편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이다. 남한에서는 1960년대까지 이런 극장시설이 거의 없었음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1970년대 초에 이런 방법을 쓴 것은 획기적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매우 보편적이고 익숙한 기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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