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 그 과포화의 욕망
태풍,효율성·내실보다 확장에만 힘 쏟은 부실공사 결과물
신태균/칼럼니스트
<태풍>을 보고 나오며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전국대회 2회전, 고교 최강 산왕 공고와의 시합 도중 교체 센터 신현필의 압도적인 높이와 무게 앞에 강백호는 번번히 골밑 찬스를 내어주고 만다. 바로 이 때 채치수가 강백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몸을 좀 더 낮춰. 니가 아무리 커 보이려 애써도 저 녀석보다 커 보이진 않아”. 옳으신 말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올바른 대응법이지 상대의 크기에 자신을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은 무모한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시장이 커질수록 영화는 대형화 경향을 띠게 마련이다. <태풍>이 내세우는 무기 역시 한국영화사상 최대라는 프리미엄을 달고 있는 남다른 규모에서 비롯된다. 이젠 우리도 이런 대작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이쯤에서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채치수의 말처럼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무리 크게 보이려 애써도 헐리우드 영화만큼 커 보이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즈와 볼거리가 아니다. 강백호가 신현필에게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자세를 낮추고 자신의 기민한 운동능력을 살려냈기 때문이었지 크기로 대항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풍>이, 더 나아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나아갈 길도 효율성을 기하는 것에서 찾아야 했을 것이다. 물론 <태풍>이 자본의 힘으로 완성해낸 스펙터클의 전시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당대 한국영화의 모든 흥행요소를 총집결 시키고자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차있다. 이미 그 대중적 호소력을 인정 받은 분단현실의 비극을 배경 삼아 서로 반목하는 두 남자의 갈등과 화해라는 남성영화의 보편적 공식을 가져왔으며 여기에 가족 이데올로기를 버무리고 첨예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군데군데 심어놓았다. 사내들만의 미학을 그려내는 데 남다른 솜씨를 발휘했던 감독의 전작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당대 최고의 두 톱스타를 대립의 양극단에 배치해 놓은 것 또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과포화 상태이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드니 서사구조는 빈곤해지고 스펙터클과 드라마는 두서 없이 뒤엉킨다. 곽경택 감독의 의도는 애초부터 분명했다. 흔히 킬링타임용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헐리우드 팝콘 무비들과의 차별화를 두는 것. 그것을 위하여 강박적으로 매달린 흔적이 곳곳에 역력히 드러나있다. 때문에 영화는 분단의 현실을 끌어와서 설교조의 대사들을 휘날리며 신파에의 눈물을 강요한다. 하지만 명분을 지나치게 앞세울 때, 인물들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곽경택의 전작들에서 유지되던 지역적 특색과 사람냄새로 가득한 고유의 정서도 몰아치는 비바람과 함께 소멸되어 버렸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볼거리 역시 대규모 자본에 힘입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독야청청 홀로 빛을 발하는 주연배우 장동건의 카리스마였건만 할말 많고 갈 길도 바쁜 감독의 빡빡한 연출은 배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여력 조차도 남겨 주지 못한다. <태풍>의 과포화적인 성향은 결국 그 동안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던 선두주자들이 보여준 문제점들의 반복재생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성과 내실 보다는 확장에만 힘을 쏟은 부실공사의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식성만큼은 블록버스터급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나 소화력은 그에 미치질 못하는 영화. <태풍>을 정의 내릴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로 족할 듯싶다. “총체적 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