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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공간

[천리마 축구단 & 어떤 나라] 나의 축구 영웅들이 어떤 나라에 산다

작성자맑은영혼|작성시간06.02.23|조회수51 목록 댓글 0


 

 

나의 축구 영웅들이 어떤 나라에 산다

<천리마 축구단> & <어떤 나라>

 

정영권/영화평론가

 

<천리마 축구단 The Game of Their Lives>과 <어떤 나라 A State of Mind>는 젊은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이 만든 두 편의 북한 소재 다큐멘터리이다. 그것은 또한 축구광을 자처하는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축구에서 비롯된 자신의 관심 영역을 한 국가로까지 확장하여 작은 결실을 이루어낸 하나의 기록이기도 하다.

 

<천리마 축구단>은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북한 축구 팀을 다루고 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국가 아닌 국가' 북한은 월드컵 예선전에서부터 거의 찬밥 신세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3대륙에 하나의 월드컵 티켓만이 주어지는 처사에 반발한 3대륙 국가들이 출전을 거부한 후 남은 국가는 호주와 북한 뿐. 북한을 얕잡아 봤던 호주를 꺾고 영국 행 티켓을 따낸 북한 팀이지만 주최측은 북한을 정식 참가국으로 인정하는 것에 난색을 표시한다.

 

북한의 정식국호(DPRK.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 국가가 서방세계에 울려 퍼진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 그래서 국호는 'North Korea'로, 국가는 개막전과 결승전에서만 연주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게 되고(북한이 결승전에 진출할 일은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국기는 모든 참가국이 자신들의 국기를 갖고 출전한다는 것을 감안하여 눈감아 주게 된다.

 

이렇듯 '박대'를 받으며 출전한 북한 팀이었지만 서방세계의 심장부에서 그들이 거둔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조별 경기 중 소련과의 대전에서 패했지만 덩치 큰 소련 선수들이 몸집 작은 북한 선수들에게 행한 거친 플레이에 반발, 영국 관중들이 약소 팀인 북한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이어 열린 칠레 전에서 1: 1 무승부, 8강 진출을 놓고 이태리와 벌인 경기에서 1:0으로 이기는 기적 같은 일을 달성해 낸다.

 


 

대니얼 고든 감독

대니얼 고든 감독은 당시의 기록 필름과 자신이 북한에서 찍은 ‘그 때 그 선수들’의 현재 모습 인터뷰를 섞어 가면서 1966년의 기적을 부활시킨다.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며 넘치는 패기로 무장한 북한 선수들이 시원하게 골대를 가르는 장면은 북한 소녀들의 전통 춤과 무용, 인민군의 전투성을 표현한 상징물들과 몽타주로 결합되면서 생동감 있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온전히 축구광으로서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천리마 축구단>은 감독 자신이 평소에 흠모했던 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영웅들이란 물론 1966년 영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북한의 축구 선수들이다. 영국의 가난한 공업도시 미들스브로 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북한 팀에 대해 ‘우리 팀’이라고 말하게 할 정도로 놀라운 투지와 저력을 보여주었던 그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되어 그 날을 회고한다.

 

<천리마 축구단>이 축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어떤 나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나라’에 맞춰져 있다. 고든 감독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 매스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하나만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중동원 체제가 이 나라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스펙터클로서의 매스게임보다는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두 여중생들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천리마 축구단>이 북한 국영 TV를 통해 수차례 방영되고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도 얻어낸 고든 감독은 북한인들의 일상에 좀 더 밀착해서 다가간다.

 

확실히 <천리마 축구단>에 비해 <어떤 나라>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 매스게임에 참여하게 된 현순과 송연의 일상,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화면에 담아내면서 항시적인 전시체제 속에 살고 있는 북한인들의 모습이 제시된다. 엄청난 식량난을 '고난의 행군'으로 표현하면서 '자력갱생'의 의지로 위기를 돌파해 나가겠다는 북한인들의 모습, '경애하는 장군님' 앞에서 무대에 설 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는 소녀의 이야기 등이 다큐멘터리스트의 특별한 개입 없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어진다.

 

<어떤 나라> 중 한 장면

모든 것이 통제된 폐쇄국가로서의 북한, 혹은 서방세계 언론에 의해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매도되어왔던 북한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일상적인 측면들을 보는 것은 자못 신선한 측면도 있다. 기쁨에 겨워 자발적으로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에서 체제가 가하는 억압 같은 것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그들의 가족도 사이좋게 둘러 앉아 과일을 까먹고 딸의 숙제를 봐주며 휴일에는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협조에 의해, 평양에서 살고 있는 혜택 받은 중산층 가정을 주요 촬영 대상으로 하는 이 영화는 또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고든 감독은 서방 세계에 의해 악의적으로 덧칠된 북한 이미지를 거두어내고 그들의 실제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지만, 그것은 북한 사회 전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북한에서 살아가는 특정한 계층의 삶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니얼 고든은 두 편의 영화를 찍으며 북한 인들의 입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장군님의 은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어떤 나라>의 종반부에서 두 여중생이 매스게임을 마친 후 화면 위에 떠오르는 자막은 ‘끝내 김정일은 오지 않았다. 그는 어떤 공식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다. 소녀는 결국 흠모하는 ‘장군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이 자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갈색 눈의 젊은 영국 감독은 왜 이런 자막을 삽입해 신격화되어 있는 김정일의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깎아 내린 것일까? 혹시 그는 영화를 찍으며 느꼈을지도 모르는 ‘어떤 나라’에 대한 일말의 의혹을 이런 식으로 간접 표출한 것은 아니까? 정말 궁금해지는 것은 그가 보여주지 못한 북한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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