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 작성자맑은영혼|작성시간04.10.24|조회수59 목록 댓글 0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Alcoba Azul / Lila Downs 삽입곡 중에서 일대기적 전기 영화가 그렇듯 <프리다>도 멕시코 여류 화가의 불꽃 같은 인생 중 결정적인 국면들을 요약 발췌한 '엑기스' 모음이다. 프리다 칼로(샐마 헤이엑)는 처녀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된다.그에게 불구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그림이다. 멕시코의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알프레드 몰리나)를 찾아가 그림 실력을인정받은 프리다는 디에고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여성 편력이 심한 호색한 디에고를 돌보면서 그는 한편으로자신의 내면에 담긴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동료 예술가이자 동지였지만 남편으로는 친밀하지 않았던 디에고의 못 말리는 바람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동시에 프리다의 성치 않은 육체도 서서히 쇠잔해간다. <프리다>는 전형적인 전기 영화다. 전기 영화가 지녀야 할 요소를 완비했다는 뜻이다.드라마틱한 생을 살았던 인물, 대중들의 인지도, 그의 생애와 밀접히 연관된 영화적인 요소(<프리다>의 경우 그림과 음악) 등 모든 것이 매력적이다.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이 왜 프리다 역을 탐냈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형적이라는 말은 전기 영화가 지니는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일대기적 전기 영화가 그렇듯 <프리다>도 멕시코 여류 화가의 불꽃 같은 인생 중 결정적인 국면들을 요약 발췌한 '엑기스' 모음이다. 당연히 듬성듬성 빈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이야기는 드라마틱하지만 깊이가 떨어지는 단점도 감수해야 한다. 굴곡진 프리다의 삶이 기구해 보일지언정 썩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그런 까닭이다.혁명가-예술가-자연인으로서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에 쉽게동화할 수 없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유명 인사의 일생을 되새김질하는 3류 전기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프리다>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을 밀착시킨다.목수와 세트 화가, 미술품 복원사를 동원해 복원한 수십 장의 그림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현란한 색채와 음악의 향연도 압도적이다.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연행 장르에 두루 통달한 여성 감독 줄리 테이머는 다채로운 볼거리와물결치는 음악으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든다. 테이머는 특히 ‘평범하지 않은 인상을 주는 연출’에 신경을 많이 썼다.움직이는 그림, 인형극, 마네킹, 콜라주를 활용한 화면 연출은 단조롭게 흘러가기 십상인 전기의 형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주의 깊게 디자인된 멕시코 가옥의 인테리어, 멕시코 전통 의상에 대한 프리다의 애착을 보여주는 의상들, 소품들도 그득하다.이처럼 <프리다>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그의 그림과 연관돼 있다.전기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예술과 생의 합일이란 이런 것이다. Frida Kahlo,1907-1954,mexico)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아내이며 초현실주의 화가라 일켤어지는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는1907년 7월 6일에 태어나 1954년 7월13일 사망하기까지 불꽃같은 일생을 살다갔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자화상,1926. Private collection, Mexico City 프리다는 현대 멕시코의 시대와 시작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멕시코 혁명이 발발한 1910년을 자신이 태어난 해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면으로도 혁명의 정신이나, 여성의 자유주의와 프리다가 연결되어지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도덕적 관습에 반발하고 독립심이 강한 성격이었다고 일켤어집니다.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1940.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프리다 칼로는 생전은 물론이고 1957년,사후에도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서만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되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그림을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북마크 공유하기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0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