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그곳에서 미리 예행연습을 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익힌다. 기초적인 교과목 말고 학생 집단에 주입되는 건 헤겔의 정, 반, 합이다. 반성의 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체득 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데는 효과적이나 맹점은 다수의 헤게모니에 의해 소수의 의견은 묵살된다는 점이다. ‘파쇼’라는 극단적 전체주의의 논리의 기반에는 너무 깊이 파고든 변증법에 있었다. <세계의 주인> 속 아이들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 후 돌아온다는 소식에 수호는 출소를 반대하는 탄원 서명을 받는다. 모두가 동의함에도 왜인지 주인만 거부한다. 탄원서에 쓰인 피해자를 그저 미래가 없는 불쌍한 사람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응징과 별개로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주인의 의지다. 개인의 말과 행동은 집단에 의해 알맞게 재단된다. 주인의 밝음 조차 그늘의 역광으로 판단하거나 애써 모른 척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곡해와 부정의 세계에서 자신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꼬집기의 순간을 견뎌야 한다.
주인은 학교를 안 가는 날 봉사활동을 간다. 다수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이들은 평범해 보이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연령대가 다양하고 어떤 계기로 모였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다만, 봉사활동으로 하기 위해 모인 커뮤니티 치고는 폐쇄성이 짙다는 것이다. 주인이 남자 친구와 동행한 날, 미도는 울분에 찬 시선으로 노려 보며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후 드러난 미도가 재판에서 증인석에서 상대측 변호인의 심문을 받는 장면이 나오고 나서야 그들이 성폭력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모임임을 인식하게 된다. 재판에서 상대 변호인은 미도의 진술이 아닌 캐릭터의 일관성을 폭로해 약점으로 활용한다. 부친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문자에 하트 이모티콘, 태권도 대회에서 수상 뒤 밝은 웃음과 학원비를 50만 원 올려서 부른 점을 들어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의 캐릭터가 아닌 점을 부각한다. 주인 역시 자신의 경험이 모두에게 공유되면서 그의 친구들은 거리를 두며 각자의 재판대에 올리려 든다. 이따금씩 누군지 모를 상대로부터 쪽지를 받는데, 그는 자신의 상식과 이해의 폭으로 판단하려 든다. 주인의 성폭력 경험은 처음엔 농담으로 나중엔 정신 분석의 교보재가 된다.
주인이 대상화되고 상처 아닌 상처를 입을 때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친구는 유라뿐이다. 주인이 그런 사연을 가졌는데 성애를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는 죄책감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는 ’ 괜찮아.‘ 와 ‘괜찮아?‘로 오가지만 ‘나 아파 ‘는 말로 해석하기엔 우리 사이에 벽이 있다. 수호 역시 동생 누리의 멍자국을 보며 따져 묻는다. “얼마나 상처 나야 다친 거예요? “ 실존하는 고통 앞에서 언어는 길을 잃는다. 영화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통을 객관화한 서술로 간주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자신의 꿈을 사랑이라 말한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여전히 따뜻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시들 걸 알지만 항상 꽃을 둔다. 속이 쓰리면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고, 태권도 관장님의 도장에 미도가 그을린 벽은 누구든 언제라도 돌아올 곳이 되어 주려는 마음이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의 사과 역시 내면에 간직한 마음일 것이다. 동생의 마술 역시 마찬가지다. 고민을 없애주는 결국 실패하지만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우리는 마음에 응어리를 감추고 산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야 한다. 사과가 빨간 이유는 눈에 띄기 위해서다. 품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볼 때다.
<세계의 주인>은 분노에 찬 세 번의 쪽지 끝에 한 번의 편지로 막을 내린다. 아이들의 청명한 목소리로 나눠 낭독되는 그 편지는 사실 너와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고백, 감사였다.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들추는 대신 아이들의 솔직한 성애와 인류애를 남겼다. 주인은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사람도, 짓눌린 기억을 망각하려 들지도 않는다. 피해자와 일반인을 구분 짓는 이분법의 세상에서 주인은 그저 농담을 건넨다.(“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돼 볼까요?”) 이제 우리는 주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고통을 연민하는 대신 행복을 상상하는 당신이 되길.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안경 선배 작성시간 25.11.06 100이 '온'이라고 하던데 글이 온전하네요 아주 빈틈없이 완결성 꽉꽉^^ 주옥같은 문장 감사합니다~
저는 주인이 남친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어요. 바른데(저는 그렇게 바르진 않지만) 또 보통의 존재. 그 친구가 느낄 어려움을 보며 나는 주인이에게 좋은 친구나 이성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뭐 주인이같은 인싸는 나랑 안놀아줄 것 같아요 ㅋㅋㅋ -
작성자코코아마녀 작성시간 25.11.06 호평이 자자한 영화라 궁금했는데 소대가리님 글을 읽어보니 알겠습니다.주변에 볼수 있는곳이라도 있으면 보거나 ott올라오면 다시 한번 리뷰 정독하러 올게요. 꼭 보고싶어졌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소울 작성시간 25.11.06 보고나서 읽을래!
-
작성자족구왕 작성시간 25.11.06 저도 일단 올해의영화입니다!! 편지씬과 세차장씬에서 눈물이ㅠㅠ
-
작성자정수진 작성시간 25.11.16 오호~~평이 좋네요.
ott 올라오면 꼭 봐야겠어요.
리뷰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