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가부키라는 무대 예술이 전성기를 맞을 때 막부는 풍기문란을 염려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참여를 막았다. 때문에 ‘온나가타‘라 불리는 여성의 역할을 대신할 배우가 필요했다. 단순히 여장을 하는 게 아니라 완벽한 몰입을 위해 목소리와 표정, 사소한 동작까지 구현하는 기예를 보여야 했다. 그들은 혹독한 수련으로 여성미를 극한으로 표현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국보>는 치열했던 그들의 인생을 담는다. 이름을 계승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예술혼에 대한 집착을 표면에 깔고 있지만 이상일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심층에 깔아 두고 있다. 제일교포에게 씌워진 굴레, 혈통주의 일본 사회에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경지에 오른 예인의 인생을 비춘다. 갈구하는 욕망을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추구했는 가를 묻는다. 신기루처럼 순간에 스쳐갈 반짝임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살아낸다는 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국보의 스토리 라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특출 난 제자가 친아들과 자웅을 겨루는 무협의 플롯과 분장 속에 자신을 감추는 인물들을 다룬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연상케 한다. 지난 시대의 이야기 구조를 답습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전혀 다른 테제를 품고 있다. 야쿠자의 후계자인 키쿠오가 집안이 멸문하고 하나이 한지로라는 스승을 만나 가부키에 입문한다. 그의 아들 슌스케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며 정진해 간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스승의 아명을 물려받지만 세습으로 이어지는 가부키 세계에서 출신은 그의 발목을 잡고 재능은 저주가 된다. 경쟁으로 얻은 타이틀은 벽을 넘지 못하고 질투는 배신으로, 집념은 광기로 변한다.
여기서 빛나는 것은 이상일의 섬세한 연출이었다. 그는 망가진 키쿠오가 술집에서 연명을 위한 공연을 할 때 손님으로부터 가짜라며 행패를 부리는 장면을 통해 확실히 자신을 투영한다. 아무리 열심히 공연해도 화장하고 여자를 연기하는 남자가 키쿠오의 실체다.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린 지 3대째지만 여전히 자이니치라 불리는 이상일과 겹쳐 보인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에 서있는 그의 예술은 혈통 없는 가짜처럼 느꼈을 그의 고뇌가 보인다.
가부키를 통해 보이는 예술성은 아비에 의해 전승되지만 그 본질은 여성성에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무대를 준비하는 막후는 마치 여성의 자궁처럼 보인다 좁고 음침한 공간에서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의 역할도 그렇다. 조용히 감싸고 잉태한다. 그들이 낳는 것은 생명만이 아닌 감정이다. 그것은 연민이자 이해였고 그 마음은 상대를 향한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향해 치달리는 남자들에겐 없는 요소다. 그러니 온나카타는 치기 어린 젊은 예인들에게 머나먼 영역이었다.
여성을 연기해야 했지만 정작 마음속은 남성적 욕망으로 들끓었다. 이겨야 하고 최고를 추구해야만 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공허한 마음은 키쿠오와 슌스케를 누그러뜨린다. 세월은 그들을 유하게 만들고 자신이 아닌 상대를 보게 한다. 두 사람은 한한콤비로 이름을 날렸으나 오랜 시간 반목으로 인해 갈라섰고 다시 만나 합을 맞춘다. 온나카타의 미학은 발 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 알았지만 슌스케는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 그런 그들이 함께 올리는 마지막 공연은 ’ 소네자키의 심중‘이다. 오하츠를 진심으로 연기하는 슌스케의 발은 회한을 넘어선 여성을 보여주고 키쿠오의 도쿠베는 마루 밑에서 그 발을 바라보며 망연한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서야 깨닫는다. 최고가 되고자 발버둥 쳤지만 결국 가부키 역시 막을 내린다. 덧없는 인생을 알았을 때 흩날리는 눈과 같았음을
키쿠오는 노년에 접어들어 이제 국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중년이 되어 자신을 마주한 딸은 어린 날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보고 원망의 말을 전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당신으로 있어달라는 당부를 전한다. 그는 이제 백로 처녀를 공연한다. 하얀 기모노를 입고 눈이 내리는 숲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노래하는 백로, 그 춤에는 찰나이자 영원한 생이 녹아 있다. 국보의 춤은 흩어지는 눈 속에서 빛난다.
무대에 선 자에게만 허락되는 풍경이 있다. 먼지가 조명에 반짝이는 순간이다. 그 낯선 광경이 예인들을 거기에 세우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겐 정체성이고 또 누군가에겐 들끓는 욕망의 표출이다. 무대 위 반짝임은 그 모든 순간들의 집합체다. 혐오와 고통은 예술이 지닌 숙명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자에게 펼쳐지는 광경은 아름다울 것이다. 영화의 막이 올라가면 기억에 남는 것은 미장센이다. 배우는 그 속에서 춤추는 오브제였다. 시야가 달라졌음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눈은 배우의 움직임을 쫓았지만 인식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가 있었다. 국보는 시점이 아닌 화각을 보는 시야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예술의 배경엔 여백이 있다. 여백은 당신이 생각을 넣을 자리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완성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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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경 선배 작성시간 25.12.09 세월은 그들을 유하게 만들고 상대를 보게 만든다에 특히 공감합니다. 오랜만에 리뷰 감사합니다. 부질없다 생각마시고 계속 뭔가 지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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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코아마녀 작성시간 25.12.12 국보라는 영화가 이래서 보시는 분들이 다들 극찬하고 추천하셨군요. 리뷰를 읽으면서도 어쩐지 코끝이 찡해옵니다.
첫문단 소개만 봐서는 패왕별희랑 비슷한 느낌일것 같은데 아래는 다르네요.
늘 그렇지만 다읽고 나서는 영화가 궁금해집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
작성자안젤리나 졸려 작성시간 25.12.26 국보급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올 한해 좋은 글 남겨주심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