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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눈물로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사라트> 리뷰

작성자소대가리|작성시간26.01.28|조회수148 목록 댓글 7

모로코 사막에 모인 이들은 스피커로 된 재단을 쌓는다. 이윽고 울리는 음향은 원시의 소음에 가깝다. 하드 테크노의 킥 비트는 영혼을 위한 울림이다. 모두가 광란의 춤을 추는 순간, 신은 소리의 형태로 현신해 강림해 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자유와 해방감이 공존한다. 술과 마약은 증폭 장치일 뿐 그들은 미친 듯이 음악에 몸을 맞긴다. 그 사이, 한 부자와 개 한 마리가 혼돈의 공간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부자는 실종된 딸 마르를 찾고 있다. 파티를 레이버들을 쫓아 떠났을 거라는 막연한 단서를 가지고 스페인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신곡’에 등장하는 베르길리우스처럼 사막을 뒤지고 다니는 루이스의 모습은 이곳이 자유의 성지가 아닌 지옥의 입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제목과 함께 흐르던 자막이 다시 떠오른다. “시라트”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 머리카락 보다 얇고 검보다 날카로운 길 신은 어떤 얼굴도, 어떤 답도 해주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루이스 부자는 레이브 파티를 누비던 중 한 무리의 팸을 만난다. 제이드, 스테프, 토닌, 조시, 비기로 구성된 디아스포라 집단이다. 그들은 레이브라는 공통된 목적이 있을 뿐 국적도, 인종도 다르다. 심지어 한쪽 손과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함께한다. 그들의 공동체적 감각은 밀려난 자들의 자연스러운 연대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반려견인 피파까지 그 무리에 합류하는 것은 서로의 부족함과 불안전함을 타인으로 메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부자는 정해진 선을 벗어나며 자신들의 길을 가는 그들에게 동화되 따르면서 점점 녹아든다. 함께 먹고 마시고 떠나는 여정 끝에 딸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서로가 형성한 라포와 다른 방향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사막을 횡단하는 시퀀스에서 부서지는 자갈과 흰색으로 이어졌다 사라지는 길은 즐거움 뒤에 감춰진 불안을 암시한다. 그에 앞서 군사적 개입은 떠나온 해방의 땅이 전장의 한 복판임을 말한다. 모든 시간과 공간의 방향성이 문명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은 알지 못한다. 아니, 외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강을 함께 건너는 순간부터 지옥이었다. 모리타니아로 향한 여정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얼마나 많이 왔는지 일절 정보가 없다. 그저 시공간의 무한함 속에서 방황하는 시지프스만 존재할 뿐이다. 그 안에 낡고 작은 루이스의 미니 밴의 보잘것없음은 숭고해 보인다. 이 모든 광경은 16mm 필름에 포착된다. 거칠고 투박한 화면은 사이키델릭 한 질감으로 다가오고 영화의 사운드와 만나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낯설던 이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 루이스는 에스테반과 피파를 잃는다. 사막의 중력은 두 목숨을 가져가고 절망에 빠진 루이스를 위해 환각과 음악을 준비한다. 추모의 한가운데 제이드와 토닌이 지뢰를 밟고 폭사한다. 누가 묻은 건지 알지 못하는 지뢰밭에서 일행들은 길을 잃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바위를 향해 걸어간 루이스는 살아남고 뒤 따르던 비기는 죽는다. 그때서야 그들은 깨닫는다. 모든 죽음은 공평하다. 어떠한 윤리 잣대도 도덕적 관념도 사막은 무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수행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엠비언트와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사운드는 영혼의 박동일뿐 길을 알려 주지 않는다.

“시라트”는 로드무비의 탈을 쓰고 있지만 해체와 재조립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존의 서사가 목적지 도달이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데 있다면 이 영화는 여행이라는 이미지를 투과한다. 그러면서 죽음이라는 실존과 마주한 인간을 그린다. 서사의 부재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선 우리에게 인과 따윈 중요치 않다고 라시는 말한다. 영화에서 시간을 인지할 수 있는 순간들은 디졸브뿐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변화하는 순간들을 보는 동시에 멈춰진 이미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소리와 속도는 횡으로 흐르고 보이는 것들은 종으로 추락한다. 때론 현실의 고통으로 벼랑 끝에 서지만 그 순간 아르페지오가 흐를 것이다. 그리고 말하리라. “사막을 건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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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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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경 선배 | 작성시간 26.01.28 좋은 가이드 감사합니다. 칠드런 오브 맨도 떠오르고 매드맥스도 떠오르고 듄도 상상되고 그러네요. 피투의 존재로 태어나 매일 의미를 찾지만 시지프스처럼 허무해져야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많이 만들어져도 계속되는 건 그래도 끝까지 알고 싶어서겠죠. 소대가리님 가이드를 얻고 도전!
  • 작성자안젤리나 졸려 | 작성시간 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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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젤리나 졸려 | 작성시간 26.02.03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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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어린왕자 | 작성시간 26.02.14 대형 스피커라는 제단
    테크노비트라는 종교
    사막이라는 경계
    상실이라는 신의 시험
    우리는 어디에 이르를것인가

    라고 어딘가에 썼어요ㅎㅎ
    오랜만에 만난 인상깊은 영화였어요
    밀양의 주제의식과 연결해보았어요
  • 답댓글 작성자소대가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2.14 죽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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