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의 소설은 과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엔진처럼 작동한다. 난관을 응시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그 자체가 서사의 동력이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이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이야기는 기억의 복원에서 시작된다.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깨어나고, 독자는 그의 인식과 동일한 속도로 세계를 구축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복원되는 추리형 구조는 사건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 자체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이때 과학은 장치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 치밀하게 직조된 퍼즐 구조는 독자에게 반복적인 이해의 쾌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정밀함이 이 소설의 한계를 만든다. 모든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결 가능하며, 그 과정은 완벽하게 회수된다. 현실의 위기가 해결 불가능하거나 윤리적 균열과 정치적 혼란을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세계는 지나치게 닫혀 있다. 좋은 서사가 질문을 남긴다면, 이 작품은 질문 대신 완결된 해답의 쾌감을 제공하는 데 머문다.
영화는 이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우회한다. 기억의 퍼즐을 축소하고, 현재의 위기와 선택에 집중한다. 이해의 과정 대신 결단의 순간을 따라가면서, 과학은 더 이상 사고의 과정이 아니라 이미지로 압축된다. 설명과 이론은 배제되고, 빛과 속도, 폭발 같은 시각적 효과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이해 대신 행동을, 사유 대신 반응을 택한다.
서사가 전환되는 지점은 외계 존재 로키와의 만남이다. 완전히 다른 감각과 인식 체계를 지닌 두 존재는 빠르게 공통의 언어를 구축한다. 이 과정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매끄럽다. 공통의 목적이 개연성을 보완하지만,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맞물리는 구조는 오히려 인위적인 인상을 남긴다. 완벽하게 맞물린 톱니처럼, 이 관계는 살아 움직이기보다 설계된 결과처럼 보인다.
이 문제는 인물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라일랜드는 유머와 매력을 지니지만, 깊은 균열을 드러내기보다는 합리적 판단의 연속으로 움직인다. 지구의 인물들 역시 기능적이다. 감정의 복잡성은 효율을 위해 제거되고, 서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화된 구조로 수렴한다. 그 결과 외계 존재가 지닌 타자의 급진성마저 인간의 이해 가능한 범위 안으로 빠르게 흡수된다. 감동은 남지만, 단절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소설과 영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페트로바선의 방향이 다르다.) 소설은 과학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지배가 아닌 협력, 벽이 아닌 계단으로서의 난관. 과학은 타자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보편적 언어로 기능한다. 반면 영화는 이 거대한 주제 대신 매체의 가능성으로 선회한다.
복원되는 기억과 영상 기록, 그리고 비틀즈의 음악은 인간성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지구에서 출발한 음악이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구조는,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기억의 순환이다. 특히 Two of Us가 흐르는 순간, “집으로 간다”는 가사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기억과 존재의 지속을 의미하게 된다. 비틀즈는 인류 보편의 감각이자, 지구라는 존재를 압축한 기호로 기능한다. 이때 영화는 소설과 확실한 선을 긋는다.
결국 이 서사는 타우메바의 해결 방식과 닮아 있다. (절대적 포식자는 없다는 생태계 순환 논리로) 문제는 이미 세계 안에 존재하는 해답으로 수렴된다. 이 닫힌 구조는 안정적인 쾌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과학적 상상력을 제한한다. 과학 서사가 단순히 가능한 세계를 설명하는 데 머무를 때, 그것은 더 이상 미래를 열지 못한다.
과학이 진정으로 향해야 할 방향은 완결된 해답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질문이다. 인간은 해결된 세계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균열 속에서 더 멀리 나아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직전까지 도달하지만, 끝내 그 틈을 열어두지는 않는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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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 Kim 작성시간 26.04.24 아니 상업영화도 보시는군요 ㅋㅋㅋ
잘봤습니다 소대님 -
답댓글 작성자소대가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4 안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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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 Kim 작성시간 26.04.24 소대가리 돌아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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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코아마녀 작성시간 26.04.24 영화도 봤고 소설도 읽고 있어서 더 공감하며 리뷰 읽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꽉 닫힌 결말. 대충 그렇다고해~ 하는식의 전개등 공감하는 부분도 생각못했던 부분도 있어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역시 영화를 보고 리뷰를 읽으니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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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경 선배 작성시간 26.04.25 경쾌한 해답을 제시해줘야 영화를 보지요 ㅎㅎ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질문은 다들 머리가 아프데요 ㅎㅎ 근데 님의 글을 보니 미키 17이 꽤나 좋은 영화였구나 싶어집니다. 나만의 수작 설국열차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