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영화의 언어』는 ‘영화 보기’가 단순히 본다는 행위를 넘어 감각하는 일임을 말한다. 객석에 앉아 스크린을 마주하는 순간, 화면 속 인물의 행위와 그들이 발화하는 언어,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까지 수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그렇게 보고 들은 것들은 뇌를 거쳐 재조립되고 우리는 그것을 ‘재미’라는 말로 쉽게 결론 내린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단순한 판단 너머에 남는 감각의 층위를 들여다본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종종 멈칫한다. 분명 재미있었는데 무엇이 좋았는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론의 언어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읽어내는 방식은 때로 낯설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점과 요약된 줄거리로 영화를 판단하고, 나아가 인공지능이 축약한 결과물에 기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방식이 서사의 흐름만 남길 뿐, 영화의 감각을 지워버린다고 말한다. 영화는 요약되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영화를 보는 방식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연기다. 저자는 배우의 표정을 문장 속 단어에 비유한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해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우와 감독의 협업 속에서 그 표정과 몸짓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침묵하거나, 일그러지거나, 때로는 과잉된 수다로 채워지는 과정 속에서 세계는 형성된다. 샬롯 웰스의 우울이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무표정은 배우의 얼굴을 통해 일상적 감각으로 번역된다. 또한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톰 크루즈처럼 한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은 역할에 따라 변화하며, 그 자체로 시대의 공기를 품는다.
두 번째는 사운드와 미장센이다. 저자는 영화 속 소리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각을 조직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속 부엌에서는 날카롭고 서늘한 소리 위로 가족에 대한 감정이 쌓인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끓는 물소리,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스며든다. 그렇기에 저자는 좋은 영화일수록 기내와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의 관람을 피하라고 말한다. 계산된 앵글은 축소되고, 사운드는 본래의 밀도를 잃기 때문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처럼 소리의 높낮이와 간격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경우, 극장의 환경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반면 이미지에 집중하는 영화도 있다. 미겔 고메스의 『그랜드 투어』나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빛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는지를 통해 감각을 만들어낸다. 또한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원작 소설의 서사를 축소하는 대신 소품과 미장센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이처럼 영화는 줄거리 이상의 요소들이 결합된 감각의 총체임을 책은 강조한다.
세 번째는 감독의 시선이다. 저자는 영화가 결국 감독의 시선으로 조직된 세계라고 말한다.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통해 낯선 공간에서의 고독과 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스파이크 존즈는 『그녀』로 이에 응답하듯 서로 다른 감정의 균열을 그려낸다. 영화는 ‘directing’이라는 방식으로 타인의 몸과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세대와 세계의 균열, 인간 군상의 일그러짐,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각의 틈까지 모든 것이 영화의 재료가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영화는 더 이상 단순히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상영 시간 동안 우리는 타인의 삶을 감각하고, 그 감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요약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영화는 점점 더 짧게 소비되고 있지만, 감각은 그렇게 쉽게 축약되지 않는다.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의 빛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을 경험한다. 『영화의 언어』는 그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붙잡아 보려는 시도이며,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