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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해하기

스크랩 붓다는 구도자인가, 혁명가인가?

작성자자광|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구도자’와 ‘혁명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도자란, 어떤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나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기존에 있는 사상이나 사회 질서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학자나 사상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구도자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습니다. 구도자는 기존의 사상과 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즉, 탐구적 자세가 강한 사람을 구도자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혁명가는 전 사회적인 대변혁, 즉 기존의 사회 질서나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다면 그것은 쿠데타라고 해서 단지 권력 찬탈에 불과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붓다가 살았던 당시의 인도 사회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붓다가 왜 구도자인지 혁명가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 사회가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이 심했습니다.


▶왜 부처님을 혁명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시대에 붓다의 삶은 먼저 구도자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붓다는 기존의 가르침에 따라서 위대한 자가 된 게 아닙니다. 전통 사상에 의문을 가지고 신흥 사상가로 입문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된 탐구로 스스로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구도의 성격이 강합니다. 중도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발견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내용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고 인연을 따라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전통 사상은 항상(恒常)함을 바탕에 두고 나만의 ‘나’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기존의 전통 사상을 뿌리째 흔든 것이 연기법입니다. 중도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포용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간 것이고, 새로운 길을 가면서도 기존을 포용한 것입니다.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모두 뛰어넘은 혁명가


모든 것은 다 형성되었으므로 소멸합니다. 괴로움이란 것도 본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인연을 따라 형성되었으니 인연을 따라 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던 시대에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에 의해서 정해졌거나, 전생에 의해서 정해졌거나, 아니면 사주팔자로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붓다는 모두 부정했습니다. 업식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사라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상적으로는 기존의 가르침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양반이 되고 상놈이 되는 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겁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 여러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만약 그 의식을 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평등하다.’라고 말합니다. 붓다는 이렇게 현실 속에서 계급 차별을 부정했습니다.


그 당시 주인은 출가할 수 있지만 노예는 출가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어야 출가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노예가 몰래 출가하면 주인은 자신의 재물을 잃은 것이니까 다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발사 출신 우파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노예였던 수드라의 출가를 인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도 출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석가족 여인 중에는 부모도 죽고 남편도 출가하고 자식도 출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해서 어릴 때는 아버지가 주인이고,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주인이었어요. 그래서 여성이 출가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한테 매여 있는 존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석가족의 여인들이 ‘우리도 출가하겠다.’ 하고 나선 겁니다. 당시 사회적 조건으로 보면 관습적으로는 출가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셨습니다. 출가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에 계급 해방과 성 해방을 모두 실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전 사회적으로까지 계급 차별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부처님 법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4개의 강이 있지만 바다에 이르면 하나가 되듯이, 세상에는 4개의 계급이 있지만 내 법 안에서는 하나다.’


이것은 당시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이 극심했던 인도 사회에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똥꾼 니이다이에게 ‘똥이 묻은 옷을 씻으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천민이라고 하지만 너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본래 깨끗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니이다이는 천민이라는 허위의식을 벗고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문장 하나 못 외우는 바보 주리반특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소란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 거잖아요. 부처님은 주리반특에게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 하고 계속 중얼중얼 거리며 반복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러자 주리반특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각기 수준에 맞게끔 법을 설해서 누구나 깨달음을 얻도록 했습니다.


이런 면모를 보면 부처님은 가히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구도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부처님은 구도자를 넘어서서 당시 사회 질서였던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부정하는 혁명가였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의 첫 번째가 비폭력입니다. 원하는 것을 힘으로 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힘을 동원해서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장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상가라는 범위 안에서 실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처님이 만든 모델을 확산해서 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우리가 특별히 다른 것을 더 할 게 없습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평가해도 혁명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확산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2600년이 지났다고 해도 발전한 게 없다고 볼 수 있겠죠. 오늘날에도 차별을 받아들이고 산다면 오히려 후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생 하인을 두지 않고 사는 수행자의 삶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집안을 돌보는 하인, 말을 모는 하인, 음식을 만드는 하인 등 수많은 하인을 두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출가하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하인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 시대는 신분 사회이면서 농경 사회였습니다. 당시에 가장 큰 재산은 첫 번째가 땅이고, 두 번째가 노비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포상할 때 땅과 노비를 주곤 했습니다. 양반은 옆에 시봉하는 몸종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출가한 후 열반하실 때까지 그런 시스템 위에 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한 모든 승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신라 시대에는 임금이 절에 땅과 노비를 주면 그것을 기반으로 스님들이 살았습니다. 의상조사도 그랬고, 자장율사도 그랬고, 승려의 대부분이 그 시스템에 기반해서 학문을 연구하고 위대한 학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위대한 학자라고는 할 수 있지만 위대한 구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찰에서도 노동자를 고용해서 스님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중세에 오면 농노가 되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찰마다 가보면 밥 해주는 사람 따로 있고, 운전해 주는 사람이 있고,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남아에 있는 절을 가봐도 절마다 이런 기반 위에 스님들이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기반 위에 절이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스님들이 사회적 통념과 거리를 둔 것은 그나마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를 빼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뛰어넘은 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의 사람이고, 당시 사회는 신분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사회의 시스템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어요.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있으니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다음 단계, 즉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 지금의 우리를 평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조선 시대에 신분제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평가가 될 겁니다. 만약 정토회가 노동자를 고용해서 어떤 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 안에서 조금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죠. 그런 면에서 붓다는 위대한 구도자이고 동시에 위대한 혁명가라고 할 만하지 않나요?


예수님의 삶도 구도자이면서 동시에 혁명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혀서 순교하는 쪽으로 종결이 지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붓다는 근원적 혁명을 했지만, 그 방식이 비폭력적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물론 석가족이 전멸하는 불행을 겪기도 하고, 제자 중에 앙굴리말라와 목갈리나가 살해되는 일을 겪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붓다 자신이 살해되는 일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후대에 법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온 달마 대사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 때문에 살해되었고, 2조 혜가대사 역시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혁명적인 삶을 사신 분이 붓다입니다.
붓다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인간 가운데 위대한 구도자이고 스승입니다.


출처 : 법륜 정토회 스님의 하루

출처: 지리산 천년 3암자길 원문보기 글쓴이: 향상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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