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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좋은시

안다는 것

작성자자광|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앎은 무지함을 몰아낸다. 그것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學者와 현자賢者의 차이점을 기억하라. 현자는 반드시 학자가 아닐 수도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학자는 반드시 현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학자가 현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자는 너무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다.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기만에 거꾸로 기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현자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현자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토록 어리석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믿기 시작한다. 따라서 학자의 삶에는 어떤 여행이나 탐험이나 발견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실제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앎의 인간은 지식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지식은 장애물이고, 가짜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를 실현할 수 있기 전에 가짜를 제거해야 한다. 지식을 아는 것보다 차라리 무지한 것이 더 낫다. 무지함은 적어도 그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버리는 것은 재산을 포기하고, 왕국을 포기하고, 가족을 포기하고, 사회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그대의 마음속에 축적된다. 그대가 어디를 가더라도,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을 가더라도 지식은 언제나 그대 안에 남는다.


지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깊은 내면을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명상’의 의미이다. 명상은 빌려온 지식을 버리고 자신의 무지함을 완전히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변형을 가져온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는 순간, 무지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변화를 겪는다. 무지함은 크나큰 변화를 통해 순진무구함으로 바뀐다. 그래서 현자는 늘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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