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선도群仙圖〉 김홍도, 1776년, 종이에 수묵담채, 132.8×575.8㎝, 국보 제139호, 호암미술관 소장 여러 신선들이 세 그룹을 이루어 왼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원래는 파도 위를 걸어가는 해상군선도이나 여기에는 파도가 생략되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신선들은 원래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을 재세 연대와 무관하게 함께 등장시켜 그렸는데, 신선이 된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과장화·신비화하였고 나아가서는 괴이하게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홍도의 손끝에서는 다시 인간미를 회복하기에 이르니, 달마마저도 인도인이 아닌 조선 사람으로 바뀐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 깊숙한 곳에 깔린, 괴이함을 피하려는 미적 정서에서 연유한 것으로 사료된다. 현재 이 그림은 구성상 셋으로 무리지어 있는데, 이를 따라 셋으로 나누어 족자 세 점으로 꾸며져 있으나, 실제로는 전체가 병풍으로 연결된 한 폭의 그림이다. 〈군선도群仙圖〉 확대 서왕모(西王母)의 반도회(蟠桃會)에 초대를 받고 약수(弱水)를 건너는 군선(群仙)들을, 배경 없이 표현한 그림이다. 이러한 김홍도의 도석인물화는 주로 30대와 40대에 제작된 되었으며, 그 전형적인 양식이 이 군선도에 잘 나타나 있다. 배경 없이 인물을 배치한 구성법, 각각 개성과 감정이 살아있는 인물의 묘사, 얼굴에 나타나는 행인형(杏仁形)의 둥근 눈매 등은 그의 인물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신선들은 기물(器物)이나 도상(圖像) 등으로 보아, 화면 우측에는 외뿔소를 탄 노자(老子)를 선두로, 두건을 쓴 종리권(鍾離權), 두루마기에 붓을 든 문창(文昌)으로 보인다. 다음 두 폭에는 흰 당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張果老), 딱다기를 치는 조국구(曹國舅), 어고간자(漁鼓簡子)를 든 한상자(韓湘子), 그리고 좌측에는 연꽃줄기를 든 하선고(何仙姑)와 꽃바구니를 맨 마고(麻姑)라고 할 수 있다. 이철괴 李鐵拐 그는 곡기를 끊고 잠을 자지 않는 고행을 40년 동안 계속했는데, 마침내 스승 노자는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 같은 문중 사람들에게(노자의 성도 역시 이씨임) 세속의 덧없음을 가르쳐도 좋다고 동의했다. 어느 날 하늘의 스승을 방문하고 지상으로 돌아온 이철괴는 그의 육신을 맡았던 제자가 그 육신을 불태워버린 것을 알았다. 세속의 육신을 잃어버린 그는 굶어 죽은 거지의 몸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몸을 갖게 되었다. 새로 몸을 빌린 사람이 절름발이라서 철괴(쇠지팡이)를 늘 갖고 다녔다. 이 때문에 철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철괴는 장춘(長春)이라는 영약을 호리병에 담아서 갖고 다니면서 약값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그는 밤이면 호리병에 들어가 잠을 잤다. 종리권鐘離權 성은 종리(鐘離), 이름은 권(權)이고, 한(漢) 나라 때 사람이라서 한종리(漢鐘離)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문헌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당나라 이후이다. 종리권은 영생을 찾아 속세를 등지고 은둔했으며 술을 잘 마셨다. 배가 불룩 나오고 턱수염이 달렸으며, 말총으로 된 술이 달린 부채를 쥐고 있는 노인으로 묘사된다. 때로는 무사이면서 연금술에 관한 비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팔선 가운데 지위가 가장 높았지만 그가 다른 신선인 이철괴(李鐵拐)의 금욕주의로 개종하면서 지위가 낮아졌다고 한다. 여동빈呂洞賓 여동빈은 오대(五代) 송(宋)나라 초기의 사람으로 산시성(山西省) 융러현(永樂縣, 영낙현) 출생이다. 호는 순양자(純陽子)이고, 여조(呂祖)ㆍ부우제군(孚佑帝君)이라고도 했다. 여동빈은 신선도에서 등에 칼을 지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종남산(終南山)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여동빈은 역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선인(仙人) 종리권(鐘離權)에게서 전수받은 《천둔검법(天遁劍法)》과 《금단(金丹)의 비법》을 써서 민중을 고통으로부터 구했다고 한다. 전진교(全眞敎)와 정명도(淨明道)가 다같이 그를 조사(祖師)로 보고 계보에 올려놓은 것은 그가 “유구필응(有求必應,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준다)”의 영험(靈驗)을 지닌 신선으로 인정되어 절대적인 인기와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말해준다. 장과로張果老 장과로는 장과의 존칭. 장과(張果)라고도 한다. 그는 상고시대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7세기경에 생존했던 역사적 인물로 되어 있으며, 당(唐)나라의 두 황제가 그를 황궁으로 초빙했다고 한다. 그는 은둔생활을 더 좋아하여 황실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으나, 한때 당 현종(玄宗:712~756 재위)의 궁궐을 방문하여 요술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후에 그의 그림은 신방(新房)에 장식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신혼부부에게 아이를 선사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장과로는 당나귀를 타고 어고(魚鼓)와 간판을 가지고 있다. 중국예술에서 불사조의 깃털과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신비한 노새를 타고 있는데(간혹 거꾸로 뒤돌아 앉기도 함) 이 노새는 타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조국구曺國舅 조국구는 송(宋)나라 조황후(曹皇后)의 아우로서 1134년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운양판(雲陽板)을 가지고 있으며, 관복과 관모를 쓰고 있다. 그의 관직과 궁전알현권을 적은 홀(笏)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조국구는 모범적인 성격의 인물이어서 가끔 방탕한 동생에게 사람은 사람이 만든 법은 피할 수 있어도 하늘의 법망은 벗어날 수 없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는 국법을 지키지 않아 감옥에 갇혔는데, 천자(天子)의 명령으로 풀려나오자 개과천선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팔선에 속하는 종리권(鍾離權)과 여동빈(呂洞賓)이 산 속에 있는 그의 은신처를 찾아본 다음 그를 자신들의 동료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상자韓湘子 한상자는 한상의 존칭으로 당나라 때 사람이다. 그는 유명한 한유(韓愈)의 조카인데, 대개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괭이,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버섯을 들고 있거나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그는 한 순간에 꽃이 피게 하고 곡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맛 좋은 술을 빚을 수 있기를 원했다. 한유(韓愈)가 그러한 생각을 비웃자 그는 한유가 보는 앞에서 이 불가능한 일을 실행해 보였다. 갑자기 흙덩어리에서 꽃이 만발했던 것이다. 더욱이 잎사귀에는 14개의 황금문자로 이루어진 시 1수가 씌어 있었다. 이 시에 쓰인 예언의 내용은 후에 한유가 유배당하고 나서야 의미가 확실해졌다. 한상자은 그는 9세기경 8선 가운데 또 한 사람인 여동빈(呂洞賓)의 인도로 도교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를 도가에 들게 하려고 애썼으나 실패했다. 일설에는 한상자가 여동빈을 만났을 때, 이미 500살이 넘는 신선이었고 여동빈을 도교로 인도했다고 한다. 하선고何仙姑 이름이 경(瓊)이며 당나라 때 사람이다. 그는 팔선 가운데 남채화(藍采和)를 남성으로 볼 때 유일한 여성이고 손에 연꽃을 들었고 있다. 하선고는 10대의 소녀 때 진주조개가 영생을 주는 꿈을 꾼 뒤 바로 몇 개를 먹고 몸이 가벼워져, 마음대로 언덕을 떠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낮에 채집한 약초를 가지고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예술가들은 그녀를 연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한다. 옛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호사스러운 생일잔치 중에 그녀와 다른 신선들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와 천주(天酒)에 취했다고 한다. 하선고는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부름을 받은 후 사라져버렸지만, 50년 뒤 그녀가 구름을 타고 떠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남채화藍采和 남채화는 당나라 때 사람으로 한상자와 함께 팔선에서는 청년으로 묘사되며, 손에 피리 또는 1쌍의 박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신을 한 짝만 신고 있거나 과일 한 바구니를 더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남채화가 예쁘장한 청년에 과일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그의 성별에 관해 논란이 있다. 중국의 전통극에서는 여자옷을 입고 남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채화는 술에 취해 민요를 부르며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중국에서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남채화가 불렀다는 노래 중 가사 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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