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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해

강물처럼

작성자비기너|작성시간26.06.09|조회수34 목록 댓글 0

강물처럼

 

이일녀

 

다 비운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세상 풍파에 익숙해져서 저절로 원숙해지고 단단해지리라 믿었다. 많이 내려놓고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교만함일 분이었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점점 나약해지고 몸과 마음이 위축되고 있다는 걸 잊은 채.

처음으로 찾아온 발 저림과 허리통증은 좀처럼 낫지 않고 앉아 있는 게 힘들었다. 곧 다가올 동생들과 처음 가는 여행을 위해 빨리 나아야겠다는 조급함에 열심히 병원에 다녔지만,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화로 인한 병이니 완치는 없다는 의사의 말이 냉정하게 들렸다. 바깥 활동을 멈추고 집에만 있으니 지독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자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우울해졌다. 겨우 한 시간도 못 자고 밤 두 시에 일어나니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왔다. 우주안에 나 혼자 있는 듯 숨이 막힐 듯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참지 못해 남편의 방문 앞에 서니 꿀잠을 자는 듯 고른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깨우고 싶은 마음뿐 발걸음은 거실 소파로 향했다. 울컥 눈물이 났다. 이 시간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고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 하려 했지만 그저 입안에 맴도는 한마디뿐이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잠이 많고 공감력이 부족한 남편인 줄 알면서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다. 한 번쯤은 일어나서 괜찮은지 물을 수도 있는데 결국 아침에 깨워야 일어나는 버릇은 여전했다.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기대를 비우지 못한 나를 나무랄 수밖에.

결국 아침까지 홀로 지내며 생각했다. 다 비운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걸.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구가 떠 올랐다.

우연히 20세기 미국 리얼리즘의 대표 거장 중 하나로 여겨지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한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늦은 밤 도시의 작은 식당 안에 네 사람이 앉아 있다. 가까이 앉아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 교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 고립된 듯하다.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단절감, 침묵을 나타낸다.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의 마음, 불안과 외로움을.

어쩌면 인간은 모두 밤을 지새우는 사람인지 모른다. 각자의 불안과 기억, 후회와 희망을 품은 채 긴긴밤을 통과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불빛 하나를 보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당신은 지금 외로운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림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워서 우아하게 차려입고 수다를 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 척 즐거운 척하는 지도. 결국 혼자라는 인간존재의 한계를 잊기 위해

남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야. 뭘 더 바라고 있니?’ 내 속의 내가 말을 걸어왔다.

맞아. 그도 힘들었을 거야. 나같이 예민한 여자와 사느라.’

아파하는 아내 때문에 기가 죽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의 수척한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 한쪽에 꾹꾹 눌러 두었던 것들을 조금씩 떼어 날려 보냈다. 강물은 매 순간 물결을 흘려보낸다. 잔물결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프면서 이별하면서 외로워하면서 폭풍우 같은 바위를 지나 묵묵히 흘러간다. 어제의 영광도 상처도 흘러가는 것일 뿐 매번 새로운 물결을 만난다. 강물처럼 살아야겠다. 아픈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나고 잊고 있었던 삶의 의미와 감사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았다. 또 하나 비우고 가벼워졌다. 두 손에 머물다가 사라진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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