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는 일
조민정
아버지 기일에 친정에 갔다. 제사상에 모셔진 두 분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니 고아가 된 느낌이다. 아버지 기일인데도 자꾸 엄마 사진에 눈길이 갔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큰 탓인지 괜히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훈장 단 아버지의 모습, 정말 멋지세요.”라며 한 마디 올렸다.
제사상을 둘러보았다. 배달된 제물을 제기에 옮겨 담았을 뿐 상 어디에도 손수 준비한 음식은 없었다. 호강 한 번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온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늦은 나이까지 제사를 주관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편리함만 좇는 친정 식구들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 가던 친정 발걸음도 자꾸 머뭇거려진다. 나 역시 남의 집 며느리인데 올케들은 왜 나와 같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걸까?
그동안 늘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집안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침묵했다. 우유부단한 오빠와 배달된 제물을 무심하게 쌓는 올케들을 보며 ‘왜 딸은 지독하게 도리를 가르쳤으면서 정작 당신의 며느리들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콧줄에 의지한 채 힘겹게 연명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엄마 기일만큼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모시고 싶었다.
제삿날이 다가오자 오빠는 돌아가신 날 저녁이 아니라 그 전달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다. 이전까지 집안 제사는 늘 돌아가신 날 저녁에 지내왔기에 오빠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 말을 번번이 거슬러 속을 썩이던 예전의 오빠 모습까지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졌다. 더구나 며느리가 둘이나 있음에도 첫 제사를 주문 음식으로 올린다고 하니 속이 많이 상했다. 괜히 참사하면 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서 엄마 산소에 참배하는 것으로 그쳤다.
아버지 제삿날이 다가오자 갈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
그냥 현충원으로 다녀오면 그만이겠지만 그건 부모님이 바라시는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오빠는 고집을 꺾지 않고 삼 년만 집에서 지내다 절로 모시겠다고 했다. 올케는 여전히 무심하게 음식을 옮겨 담고 있었다. 참다못해 가슴에 쌓여있던 말을 토해냈다.
“자식들이 이렇게 멀쩡히 있는데 어떻게 손수 음식 한 번 만들어 올릴 생각을 안 해?”
“올케들도 연로하신 부모 계시고 자식들 있잖아요, 부모님 제사를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나는 일 년에 두 번, 부모님 생각하며 정성껏 상을 차려보자고 말했다. 부모님이 떠난 뒤 우리를 이어주던 끈마저 끊어질까 두려웠다. 함께 제사를 준비하며 가족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속마음을 토해내면 시원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으로 식구들을 너무 몰아세운 건 아닐까 싶었다. 부모님이 바라셨던 것은 거창한 제사상이 아니라 자식들이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었을 텐데.
시 할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상대여빈(相對如賓)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서로를 손님처럼 공경하라는 말속에는 부부뿐 아니라 서로의 가족까지 존중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만 옳다고 믿으며 친정 식구들을 원망하던 내 마음부터 내려놓아야겠다.
다가오는 엄마 기일에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