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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해

한 줄기 빛

작성자까리|작성시간26.06.10|조회수25 목록 댓글 0

한 줄기 빛

김봉희

 

어느새 내 나이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사람이 칠십 세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다"라는 말이 옛말이 되었지만 내게는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다.

 

한해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몸을 보면서 아픈 몸으로 세상을 열심히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평생을 편두통과 시력 감퇴, 그리고 정신적 붕괴라는 지독한 병마와 싸워야 했던 철학자 니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삶에 대한 절대긍정(아모르파티)을 노래했다. 가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영원회귀'를 긍정했던 그의 철학은,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을 견뎌내게 하는 묘한 힘을 주기도 한다.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 진단을 받고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던 알베르 카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부조리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직시하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방인 뫼르소를 통해 부조리에 맞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반항'이자 '자유'임을 역설했다. 카뮈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쇠약해지는 육체라는 굴레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 밖에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암흑 속에서 세상의 빛이 된 헬렌 켈러, 전신이 마비되는 루게릭병 속에서도 우주의 비밀을 파헤친 스티븐 호킹까지 많지만 유독 니체와 카뮈가 와 닿는 것은 무엇일까. 둘 다 육체적 아픔을 글로써 이겨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권정생 작가의 생가에 다녀왔다. 교사 시절 강아지 똥을 가르치며 그를 처음 알았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하찮게 여겼던 강아지 똥은 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냈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아름다운 쓸모가 있다는 희망을 준 아름다운 동화였다.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내게도 매번 뜨거운 감동과 위안을 건네준 준 책이었다.

 

빌뱅이 언덕 아래 자리한 작은 오두막 흙집을 보면서, 평생을 가난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운 동화를 빚어냈다는 사실이 내게 힘을 주고 있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이 병들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거나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훗날 그는 작가로서 막대한 인세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차디찬 흙방에서 육신의 고통을 기꺼이 껴안은 채, 소유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비워냈다. 그 비워진 자리에 차오른 것은 원망이 아닌, 세상의 모든 작고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었다.

죽을 때 10억이 넘는 전 재산을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완벽해지기를 강요받는 일상 속에서 그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

 

니체, 카뮈, 권정생의 공통점은 고통을 격렬히 거부하는 대신 도리어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집착과 욕망을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실존을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비움은 결코 나약한 포기나 삶의 결핍이 아니다. 도리어 내면의 가장 단단한 정수를 남기기 위해 불필요한 겉치레를 걷어내는 자신과의 투쟁이다. 육체의 쇠약함 역시 삶의 종착역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채우려는 삶은 화려하지만 힘들고, 비우는 삶은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비움의 삶을 추구하면서 내 영혼이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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