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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작성자정광희|작성시간26.06.10|조회수39 목록 댓글 0

쓸모

정광희

 

  “우리 막둥이 안 낳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나지막한 코가 이때만큼은 입꼬리처럼 하늘 향해 봉긋 솟아오른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나를 칭찬할 때마다 나의 생존기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읊었다. 이미 연년생 딸과 아들을 낳아 고단하게 맞벌이하던 중에 셋째가 생기자, 엄마는 낙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 가기 위해 큰이모를 불렀는데, 낳으면 대신 키워주겠다는 큰이모의 설득으로 나는 무사히 막내딸이 될 수 있었다.

  언니는 장녀의 자리매김이 확실했다. 첫째 아이였기에 언니가 입학한 초등학교의 교무실에 철제 캐비닛을 설치해 주었고, 중학생이 되자 과외선생님을 붙여 가며 K-부모의 교육열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오빠는 아들이라는 특별한 성을 달고 나온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존재,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든든한 아들이었다. 엄마는 무언가 귀한 것이 있으면 항상 오빠에게 주려고 했고, 우리 집의 기둥이라 추켜올렸다.

  반면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온 가족이 다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었고,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농담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본능이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막내의 필살기, ‘예쁜 짓을 하며 나는 끊임없이 노력했던 거 같다. 그 노력은 여전하다. 조금이라도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서운한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느라 마음은 힘들었다. 대신 뭐든 혼자서 잘하는 딸’, ‘떼 부리지 않는 착한 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부모님이 있는 창원에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자식 중에 가장 자주 얼굴을 보고 있다. 며칠 전, 레인지 후드와 공기청정기를 청소하고 아버지 이발을 마치고 나니, 엄마는 너는 분당 올라가면 안 된다. 우리 죽고 나면 가야 돼.”라고 했다. 그 말씀은 너는 꼭 필요한 중요한 사람이다.’를 의미하는 엄마의 칭찬이었다. 분당에 사는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평소에 걱정하던 남편의 얼굴이 불편해 보였다. 남편은 아들로서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까. 남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말에 나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나만 아는 혹은 내가 칭찬이라고 오해하는 말들이 나를 가두는 것 같다.

  언니는 인천에서 아이 넷을 키우느라 바쁘고, 오빠는 뉴욕에 살고 있어서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한다. 상황이 이러니, 영상통화로 애달픈 마음을 달래다가 어렵게 만나게 되면, 얼굴만 보고 있어도 아까운 시간이라 다들 손님처럼 있다가 간다. 뭐라도 만들어 먹이고 싶어서 엄마는 동분서주 얼마나 바쁜지 자리에 앉을 새가 없다. 평생 밤낮없이 고생하며 번 돈으로 자식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던 부모님은 팔순을 넘기고도 쉬는 법을 모른다.

  아직 부모님을 보면 마냥 좋다. 큰이모에게 보내지는 일 없이, 크게 부족함 없이 컸던 것도 감사하고 여전히 건강히 살아계신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아직 쓸모로 나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다. 그냥 자식이어서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데, 왜 나는 쓸모를 기준으로 칭찬받아야 하는 것일까. 가끔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부모님께 듣고 싶었나 보다. 철없는 자식의 푸념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꺼내볼 용기도 못 내고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오늘도 마음을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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