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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해

장마진 날의 깨달음

작성자고도|작성시간26.06.22|조회수22 목록 댓글 0

장마진 날의 깨달음

 
 

류  덕  현

 
 집 뒤 공터에는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였다. 사내아이들은 축구를 했다. 공터 주변에 있는 집들은 걸핏하면 공이 담을 넘었고 그때마다 공을 찾으러 오는 아이들 때문에라도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시피 했다. 지붕이나 처마가 공에 맞아 깨지고 부서져 성한 집이 없었다. 비 가림을 하려고 처마에 덧댄 물결 모양의 슬레이트나 플라스틱판이 오래되면 햇볕에 삭아 공에 맞으면 여지없이 구멍이 났다. 그때마다 어른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혼나면서도 아이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 천정에서 물이 새기라도 하면 원망이 내게로 쏟아졌다. 지붕 기와가 깨진 게 전부 또래의 공놀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떨어지는 빗물이 야속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며칠째 비가 올 때였다. 나가놀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마루를 뒹굴뒹굴하는데 천정에서 물이 떨어졌다. 방에도 물이 새는지 어머니는 세숫대야며 양동이에 걸레를 담아 물 떨어지는 곳에 갖다두었다. 그리고는 나와 동생들에게 그것들이 넘치지 않도록 지켜보게 했다.
물이 차오르면 그것들을 마당에 내다 버렸다. 처음에는 그냥 물만 “주루룩” 비웠는데 나중에는 부채모양으로 뿌렸다. “촤악!” 소리를 내며 퍼져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힘을 줘서 멀리 뿌릴수록 부채 크기도 소리도 커졌다. 그렇게 물을 뿌리며 마당에 놓인 빈 화분을 맞춰 쓰러트리기도 했다.
 비가 그치질 않는다.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물통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이게 다 뒷집 녀석 때문이다. 발목이 삐뚤어졌는지 그 녀석이 공을 차면 죄다 공중으로 날아갔다. 걸핏하면 담을 넘어 갔는데 한 번은 장고방으로 날아가서 장독을 깨트린 적도 있었다. 화가 난 그 집 어른이 공을 숨기고 내놓지 않는 바람에 한동안 축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발등으로 차지 말고 제발 발 안쪽으로 차서 공을 굴리라고 신신당부하는 데도 안된다. 다음번엔 끼워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언제나 녀석의 알랑방귀에 넘어가고 만다.
 바깥일을 마치고 온 아버지는 방과 마루를 둘러보더니 창고에서 잘라 놓은 장판과 가위 같은 것을 챙겨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가 새는 곳 근처 기와 아래에 장판을 덧대고는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를 향해 “됐어?”라고 하면 나는 엄마에게 “엄마, 됀나?”하고 물었다. 엄마가 “언지예, 기다리 보이소.” 하면 나는 지붕 위로 “기다리 보랍니더.”라고 소리쳤다. 엄마가 “돼쓰예!”를 하면 나는 “아부지 돼쓰예!”라고 소리치며 두 어른 사이에서 중계했다. 그렇게 열두 번도 더 주고받은 다음 아버지는 지붕을 내려왔다. 신기하게도 천정에서 떨어지던 빗물이 조금씩 잦아들다가 멈췄다.
 다음 날도 비가 왔다. 마루로 나가니 마당에 물이 가득하다. 슬리퍼, 대야, 빗자루, 개밥그릇이 대문 쪽에 몰려 둥둥 떠다녔다. 대문을 열어 놓았더라면 밖으로 쓸려가 버렸을 것이다. 개집도 물에 잠겼다. 사냥개 ‘해피’는 비를 맞으며 낑낑대고 있었다. 마당 한 구석에 아이 키 높이로 시멘트를 발라 흙을 채우고 겨울이면 김장독을 묻는 곳에 ‘해피’집을 올려다 놓았다. 나는 목줄을 풀어 물을 빼둔 목욕탕으로 해피를 데려갔다. 젖은 몸을 닦고 마른 헝겊을 바닥에 깔아 주었다. 녀석은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았다.
 동네 아저씨들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함께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하수구가 막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원대오거리도 어른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고 했다. 팔달교 쪽 금호강 둑이 터진 것이라고 한다. 비가 그치더라도 둑이 보수되지 않으면 물이 빠질 때까지 몇 날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며 어른들은 걱정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웃비가 걷자 구름 사이로 쪼이는 햇살이 쨍하다. 그런데도 마당의 물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주말인데도 친구랑 놀지도 못하고 심심하게 보내야 했다.
아버지가 창고에서 고무다라이를 내왔다. 그 안에 동생 둘을 앉히고는 물이 들어찬 마당 이리저리로 천천히 끌고 다녔다. 무게가 다른 두 녀석이 마주 보고 앉으니 다라이 한쪽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동생들은 처음엔 모서리를 움켜잡고 겁먹은 표정이더니 금방 익숙해졌는지 헤헤거리며 좋아했다. 내가 보기에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 대신 다라이를 끌고 다녔다. 끄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었다. 나는 다라이를 마당 가운데로 끌고 가서 천천히 회전시켰다. 균형이 맞지 않는 다라이가 울렁이며 빙그르르 도는데 동생들은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었다. 그걸 본 나는 덩달아 신이 나서 더 빠르게 돌렸다.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렇게 몇 바퀴 잘 돌아가는가 싶더니 다라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막내가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는 물속에 나동그라졌다. 그런데도 다라이는 계속 돌았고 결국 나머지 녀석도 물속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동생들을 일으켜 세웠지만 그새 물을 마시고 콜록거렸다. 목이 터지라고 울자 어머니가 달려 나와 다짜고짜 나를 나무랐다. 다행히 동생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더러운 물을 먹게 했다고 엄마에게 혼이 났다.
 어린 시절, 나의 장난기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조용하게 있겠다고 맹세를 해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장난 거리였다. 어머니가 그런 나를 혼낼 때는 “제발 차분하고 얌전하게 형답게 장난 좀 치지 말고... 어이그”를 노래 가사처럼 반복했다.
 한번은 절에 갔다 온 어머니에게 절에 가면 무슨 기도를 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우리 맏이 차분하고 얌전하게 지내고 제발 공부 좀 잘하게 해주이소.”라며 기도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그 말은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머니의 기도는 잔소리의 다른 형태일 뿐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걸 알게 된 나는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일로 흥정했다.
“엄마, 용돈 좀 도. 그라마 장난 안 치고 동생 잘 보고 있으께.”
“얼마 주꼬, 이거마 됐제?” 외출하는 엄마는 동생들 괴롭히지 말고 잘 보라며 절집 불전함에 헌금하듯 내게 용돈을 줬다. 나의 장난은 그렇게 용돈이 되었다가 내가 커가면서 미안함이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장난이 줄었다. 어머니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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