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촌들
조민정
사촌 큰 시누이네 집들이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큰집, 작은집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담 밖을 넘나든다. 집안 의례 행사인 ‘뻥’ 치는 모습에서 육십을 바라보는 시누이들과 일흔을 넘어선 남편은 그 시절의 철부지들로 돌아간 듯 즐겁고 유쾌하다. 어릴 적 한집에서 살아서인지 사촌 간의 정이 각별하다. 친정집과 사뭇 다른 그들의 모습에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 남매의 맏이셨던 부모님 덕에 나 에게는 스무 명의 사촌이 있다. 친정 가까이 사는 외사촌들은 집안 대소사로 가끔 얼굴이라도 보지만 친사촌들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사촌 간을 이어줄 어른들이 하나같이 일찍 세상을 뜨셨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교류가 거의 없다. 간혹 집안 결혼식에 가서 친척임을 확인할 뿐이다.
다행히 서울 작은집 사촌들과는 가끔 안부를 묻고 산다.
2남 1녀의 작은집 사촌들은 큰오빠를 제외한 우리 삼 남매와 나이가 같다. 따라서 사촌들과는 친구 같으면서 은근 경쟁하며 지냈다.
명절이 되면 사촌들과 시골 할아버지 집에 모여 할머니가 고운 조청에 떡을 찍어 먹으며 자치기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다. 무서운 작은아버지와 절약의 대명사인 작은어머니 밑에서 그들은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방학이 되면 작은아버지는 사촌들의 성적표를 보여주며 자식들의 공부 자랑을 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말 없는 눈빛을 교환하며 그들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초등학생이던 동생과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 작은집에 놀러 갔다. 집에 오면 맛있는 것을 해주겠다는 작은어머니 말씀에 잔뜩 기대하고 갔다. 작은어머니는 밤중에도 몇 번씩 일어나 연탄 아궁이의 공기구멍을 조절했다. 집 공기는 차가웠고 아랫목조차 미지근하던 그 겨울의 작은집. 김치에는 얼음이 서걱거렸고 따뜻한 밥조차 체증을 일으켰던 사촌들의 집. 집으로 돌아오며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평 없이 사는 사촌들 모습에서 인내를 배웠다.
5, 6년쯤 흘렀을까. 작은 어머님이 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전해졌다. 순간 연탄을 아끼려고 밤잠 설쳐가며 불 조정을 하던 작은 어머니의 피곤한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그놈의 연탄이 사람을 잡았구나.’ 사촌들은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꺽 꺽’ 소리만 냈다. 나는 행여 사촌들이 엄마 있는 우리를 부러워할까 봐 부모님과 멀찍이 떨어져 작은어머니를 애도했다.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당장 사촌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작은아버지는 지방 근무를 하셔서 자식들을 돌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언니가 동생들의 엄마가 되었다. 당시 초등 6학년, 고1이었던 동생들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많이 방황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언니도 동생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누나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픔을 참아야 했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엄마가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동생들에게 가혹하리만큼 엄하게 대했다. 동생들은 엄마보다 더 무서운 누나를 ‘데빌 우먼’이라 불렀다.
대학 1학년 때 작은 집에서 잠시 살았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는 마치 엄마 같았다. 대학생이 된 나를 시샘 할 만한데 언니는 월급을 모아 목걸이를 사주었다. 고졸 사원이 받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번 돈을 선물하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맙고 슬펐다. 언니도 작은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대학도 가고 빛나는 젊음을 만끽했을 텐데 스무 살부터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작은아버지가 재혼하셨다.
작은아버지는 돌아간 전처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 재혼한 부인에게 극진했다. 언니는 상처받고 힘들게 사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버지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동생들까지 제 가정을 꾸리자 언니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엄마 장례 때 언니가 문상 왔다. 명절 때가 되면 늘 엄마에게 안부를 묻던 언니였다. 생전의 엄마는 외딸이라는 우리 처지를 걱정하며 둘 다 외로우니 서로 챙기며 친하게 지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가끔 전화로 안부는 묻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서인지 늘 마음만 앞선다.
시누이네 집들이에서 들려오던 유쾌한 웃음소리가 다시 귓가를 스친다. 어릴 적 함께 자라 정이 각별한 그들의 모습 위로,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조청에 떡을 찍어 먹으며 뛰놀던 사촌들과 우리 형제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다만 세월에 밀려 잠시 멈추었을 뿐. 서로를 향한 그 마음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닐 거다. 언젠가 사촌들과 다시 한자리에 둘러앉아 옛이야기 나누며 천진하게 웃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날에는 언니가 사주었던 목걸이를 꼭 하고 나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