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덕분이다
김은주
‘오, 깔쌈한데. 우리 동네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적당히 큰 키에 청남방을 걸친, 귀공자 같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본인도 뜨거운 시선을 의식한 듯 풍성한 머리카락을 멋지게 쓸어올렸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워낙 시력이 나쁜 탓에 미간을 찌푸린 채 그에게 다가갔다.
“누나야, 어디 가는데?”
아뿔싸. 그 남자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대충 얼버무리고는 줄행랑을 쳤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친구들도 자주 목격담을 전해왔다. 괜찮은 남자를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내 동생이었다는 것이다.
한 살 터울인 동생은 소위 말하는 ‘육각형 남자’였다. 외모, 지능, 예체능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어릴 적엔 동생이 자랑스러웠지만, 머리가 굵어질수록 화가 났다. 동생의 완벽함이 나의 열등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아 그를 때리고 못살게 굴었다.
동생을 이기고 싶었다. 내가 승부를 겨뤄볼 수 있는 분야는 공부와 독서뿐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가 하루 종일 야구를 볼 때, 나는 악착같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만남도, 즐거운 TV 시청도 끊었다. 재미있는 것을 멀리한 채 공부만 했더니 주위를 놀라게 할 성적을 받았다. 진짜 절망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으니 매일 놀던 동생과 성적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억지로 한 공부는 학력고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나의 대입 실패와는 달리 고등학교 때도 공부하지 않던 동생은 명문대에 합격했다. 겉으론 웃었지만, 내 마음은 비뚤어지고 있었다.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동생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난치성 희귀병이었다. 병원을 찾았을 때 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삼십 대 초반의 청년은 간데없고, 소말리아 난민처럼 뼈만 남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몸무게는 고작 39킬로그램. 의사는 몇 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동생은 삶을 포기한 듯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남편의 사업 실패와 고단한 직장 생활,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현실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동생마저 무너지니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무력감을 더했다.
몇 년째 입·퇴원을 반복하던 어느 날, 동생은 병실에서 부모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리를 피해 도망가던 엄마는 나에게도 나가자고 했다. 발길을 돌리려던 그 순간, 그의 비명이 다르게 들렸다. 그건 나 좀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동생의 눈을 응시하며 그 앞에 주저앉았다. 내게도 집에 가라며 소리치던 동생은 점차 부모와 세상을 향한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너 시간 분노를 뱉어내고서야 동생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고맙다는 듯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당시 직장에서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게 늘 두려웠다. 매일 그들을 대하다 보니 그 마음속엔 두려움과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본인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게다. 그가 말할 때,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집중했다. 함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깊은 한숨을 짓기도 했다. 영혼이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늘 조심해야 하지만, 기적처럼 동생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테니스와 골프를 치고, 재산을 증식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무뚝뚝하고 인정머리 없는 이 녀석은 일 년에 한 번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누나야, 이렇게 많은 것을 성취했는데도 와 이리 안 행복하노.”
“야, 성취와 행복은 상관없는 거 몰랐디나?”
일단은 동생을 약 올린다. 그리고 삶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혜를 아낌없이 말한다. 두세 시간이 넘는 통화가 끝나면 동생은 만족스러운 듯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동생은 내게 고백했다. 힘든 시절,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그때 생각난 한 명의 사람이 ‘누나’였다고 했다. 울컥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질투심과 열등감 덩어리인 내가 그를 도왔다니.
동생 덕분에 더 열심히 살았고, 치열하게 자기 성찰을 했으니 이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OO야, 누나가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