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냇동생
이일녀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운동장 한쪽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그늘을 향해 자그마하고 마른 열 살짜리 누나가 아직 첫돌이 지나지 않은 어린 동생을 업고 걸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누나의 등에 업힌 채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누나는 동생이 깰까 봐 업은 채로 조심스레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동생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보며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던 누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 후 잠이 깬 동생이 누나의 머리를 당기자, 감짝 놀란 누나는 동생을 조심스레 다시 업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부모님은 한 달이 넘게 병원으로 가시고 외할머니가 오 남매를 돌보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막냇동생에게 누나는 엄마가 되었다. 잘 때에도 손을 꼭 잡고 안겨서 잤다. 숙제할 때도 친구와 놀 때에도 늘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투병은 몇 년이나 계속되고 어머니가 퇴원해서 오시는 날 철없는 막내는‘늴리리 맘보’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었다. 모처럼 부모님의 얼굴엔 웃음이 깃들고 오 남매는 부모님이 사 오신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는 누나를 막내가 울며 따라왔다. 그러다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쳤다.
“아이고 아가야가 우째 학교를 다 오노 누나 옆에 앉아라.”
선생님의 배려로 한 시간만 있기로 하고 옆에 앉은 동생은 책을 보며 아는 글자를 소리 내 읽었다. 누나와 형들이 넷이나 되니 어깨너머로 한글을 빨리 익혔던 것이다.
“아이고 놀래라. 이거 신문에 날일이네. 우리 반에는 아직도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있는데 대단하네. 야 천재 아니가!”
선생님의 말씀에 누나는 동생이 자랑스럽고 미안함이 덜해졌다. 동생을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에 간 누나는 자꾸 동생이 생각나고 마음이 한쪽이 아팠다.
얼마 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누나는 집을 떠나 진학했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막내는 어머니의 기억보다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새어머니와 갈등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고3이던 어느 날 4학년이 된 동생이 찾아왔다. 시골 학교에는 가정실습 기간이라 아버지를 졸라 온 것이었다. 마침, 봄 소풍을 가야 했던 누나는 망설이다가 동생을 데리고 갔다. 걸어가야 하는 먼 길이었지만 동생은 잘 따라왔다. 친구들은 모두 동생을 귀여워해 주고 사진도 같이 찍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보냈다. 훗날 동생은 철이 없었노라며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했지만, 누나에게는 뿌듯한 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동생도 누나 곁으로 와서 진학하게 되었다. 삼 남매가 함께 모인 것이다. 교사가 된 누나는 동생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당부했다. 아기 때 한글을 익힌 동생을 믿고 기대했다.
“이게 뭐니? 우리 집엔 너 같은 사람은 없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시면 어떻겠노. 성적이 이게 뭐고! 정말 실망이다.”
동생의 성적이 하위권임을 안 누나는 매정하게 몰아쳤고 처음 누나에게 혼난 동생은 훌쩍훌쩍 울었다. 마음이 아픈 누나는 동생을 데리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M 제과의 햄버거를 두 개 사 주며 달래주었다. 훌쩍이면서도 맛있게 먹던 동생은 열심히 공부했고, 바르게 자라 무사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누나의 여덟 살 아들이 치는 웨딩마치에 맞추어 동생은 결혼했다. 동생과 누나는 서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았다. 때로는 가깝게 더러는 멀리서 각자의 삶에 열중했다. 어느덧 시간은 한 장의 책갈피를 넘기듯 빠르게 멀어져갔다.
이제 인생의 산을 같이 내려가고 있는 막내와 나는 60년도 넘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자주 한다. 가끔 만나 속에 있는 말을 내놓고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한다.
“난 지금도 누나가 엄마 같아. 엄마 얼굴은 기억도 안 나니까.”
“그래 나도 우리 막내가 아들 같아. 우리 남은 시간도 자주 만나고 행복하게 지내자.”
우리는 시골 카페에 앉아 함께 햇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