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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해

막냇동생

작성자비기너|작성시간26.06.23|조회수29 목록 댓글 0

 막냇동생

이일녀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운동장 한쪽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그늘을 향해 자그마하고 마른 열 살짜리 누나가 아직 첫돌이 지나지 않은 어린 동생을 업고 걸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누나의 등에 업힌 채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누나는 동생이 깰까 봐 업은 채로 조심스레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동생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보며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던 누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 후 잠이 깬 동생이 누나의 머리를 당기자, 감짝 놀란 누나는 동생을 조심스레 다시 업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부모님은 한 달이 넘게 병원으로 가시고 외할머니가 오 남매를 돌보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막냇동생에게 누나는 엄마가 되었다. 잘 때에도 손을 꼭 잡고 안겨서 잤다. 숙제할 때도 친구와 놀 때에도 늘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투병은 몇 년이나 계속되고 어머니가 퇴원해서 오시는 날 철없는 막내는늴리리 맘보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었다. 모처럼 부모님의 얼굴엔 웃음이 깃들고 오 남매는 부모님이 사 오신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는 누나를 막내가 울며 따라왔다. 그러다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쳤다.

아이고 아가야가 우째 학교를 다 오노 누나 옆에 앉아라.”

선생님의 배려로 한 시간만 있기로 하고 옆에 앉은 동생은 책을 보며 아는 글자를 소리 내 읽었다. 누나와 형들이 넷이나 되니 어깨너머로 한글을 빨리 익혔던 것이다.

아이고 놀래라. 이거 신문에 날일이네. 우리 반에는 아직도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있는데 대단하네. 야 천재 아니가!”

선생님의 말씀에 누나는 동생이 자랑스럽고 미안함이 덜해졌다. 동생을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에 간 누나는 자꾸 동생이 생각나고 마음이 한쪽이 아팠다.

얼마 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누나는 집을 떠나 진학했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막내는 어머니의 기억보다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새어머니와 갈등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고3이던 어느 날 4학년이 된 동생이 찾아왔다. 시골 학교에는 가정실습 기간이라 아버지를 졸라 온 것이었다. 마침, 봄 소풍을 가야 했던 누나는 망설이다가 동생을 데리고 갔다. 걸어가야 하는 먼 길이었지만 동생은 잘 따라왔다. 친구들은 모두 동생을 귀여워해 주고 사진도 같이 찍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보냈다. 훗날 동생은 철이 없었노라며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했지만, 누나에게는 뿌듯한 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동생도 누나 곁으로 와서 진학하게 되었다. 삼 남매가 함께 모인 것이다. 교사가 된 누나는 동생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당부했다. 아기 때 한글을 익힌 동생을 믿고 기대했다.

이게 뭐니? 우리 집엔 너 같은 사람은 없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시면 어떻겠노. 성적이 이게 뭐고! 정말 실망이다.”

동생의 성적이 하위권임을 안 누나는 매정하게 몰아쳤고 처음 누나에게 혼난 동생은 훌쩍훌쩍 울었다. 마음이 아픈 누나는 동생을 데리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M 제과의 햄버거를 두 개 사 주며 달래주었다. 훌쩍이면서도 맛있게 먹던 동생은 열심히 공부했고, 바르게 자라 무사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누나의 여덟 살 아들이 치는 웨딩마치에 맞추어 동생은 결혼했다. 동생과 누나는 서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았다. 때로는 가깝게 더러는 멀리서 각자의 삶에 열중했다. 어느덧 시간은 한 장의 책갈피를 넘기듯 빠르게 멀어져갔다.

이제 인생의 산을 같이 내려가고 있는 막내와 나는 60년도 넘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자주 한다. 가끔 만나 속에 있는 말을 내놓고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한다.

난 지금도 누나가 엄마 같아. 엄마 얼굴은 기억도 안 나니까.”

그래 나도 우리 막내가 아들 같아. 우리 남은 시간도 자주 만나고 행복하게 지내자.”

우리는 시골 카페에 앉아 함께 햇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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