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촛불이 필요해 —‘파일럿 시민의회’를>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꺼져가는 불 앞에서
촛불은 위대했다. 2016년의 겨울, 그리고 2024년 비상계엄의 밤을 밝힌 그 불빛은 광장을 가득 메웠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주권자의 힘을 증명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 이번 선거를 끝으로, 그 촛불은 수명을 다해 가고 있다. 광장은 비었고, 함성은 잦아들었다. 우리는 또 한 번, 타오르던 불을 대리인의 손에 넘겨주고 흩어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내란에 부역한 세력이 요처(要處)를 도리어 되찾아 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 많던 촛불은 어디로 갔는가.
왜 빼앗겼는가 — 촛불의 구조적 한계
답은 저들이 강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불을 제도로 굳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은 권력을 감시하고 교체했다. 그러나 권력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분노로 정권을 끌어내렸지만, 끌어내린 그 자리에 또 다른 대리권력을 앉히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광장의 주권은 투표소의 한 표로 환산되어 대리인에게 위임되었고, 그 순간 주인은 다시 구경꾼이 되었다.
정치권은 촛불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했다. 계승은커녕 일방적으로 소모하고 소진했다. 촛불의 에너지를 제 권력의 연료로만 태웠을 뿐, 그 불을 떠받친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제도는 끝내 만들지 않았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이다. 주인이 빌려준 힘으로 손님이 안방을 차지하고, 정작 주인은 마당에 서 있다.
대리에 맡긴 죄 —셀프입법이라는 자물쇠
문제의 뿌리는 대리민주제 그 자체에 있다. 우리는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표를 던지고는 입을 다문다. 나머지 기간 권력은 온전히 대리인의 것이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병폐가 셀프입법(self-legislation)이다.
대리인이 제 권한의 규칙을 스스로 정한다. 세비도, 특권도, 심지어 자신을 뽑는 선거제도까지 의원들이 직접 만든다. 심판이 경기 규칙을 정하고, 선수가 그 심판을 겸하는 격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 그들이 제 손으로 제 특권을 내려놓을 리 없다. 거대 양당이 사표를 양산하는 소선거구제를 고수하고, 비례성을 가로막는 장벽을 좀처럼 허물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촛불이 아무리 뜨거워도, 이 자물쇠를 열지 못하면 권력은 끝내 대리인의 것이다.
제3의 촛불은 광장이 아니라 제도에 켠다
그러므로 이제 제3의 촛불이 필요하다. 단, 이 촛불은 광장에 켜는 불이 아니다. 제도에 켜는 불이다.
분명히 하자. 이것은 점잖은 시민운동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이다. 대리인이 독점한 권력의 일부를 주권자가 도로 빼앗아 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빼앗는 일에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항이 따른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투쟁다운 스탠스가 필요하다.
다만 그 투쟁의 무기는 화염병도, 분노의 함성도 아니다. 숙의(熟議)와 제도다. 거리의 동원이 권력을 '흔드는' 데 그친다면, 시민이 직접 법을 숙의하고 발의하는 기구를 세우는 것은 권력을 '대체하는' 일이다. 광장의 분노를 제도의 거점으로 ‘점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권력투쟁이다.
대리민주제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곁에 직접민치제(直接民治制)를 나란히 세워, 둘이 병행하게 하자는 것이다.
파일럿 시민의회 —첫 거점을 세우자
그 첫 거점이 ‘파일럿 시민의회’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모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숙의하고, 그 결론으로 법안을 발의한다. 첫 과제는 분명하다. 셀프입법을 주권자가 바로잡는 것이다. 의원들이 결코 손대지 않을 의제 — 의원 특권의 해체, 사표 없는 선거제(가령 순위투표제·STV) 로의 전환 —을 이해당사자인 의원이 아니라 추첨 시민이 다룬다. 중이 못 깎는 머리를, 시민이라는 이발사가 깎는 것이다.
작아도 좋다. 한 곳에서라도 “시민이 직접 법을 만들어 작동시켰다”는 사실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작동하는 대안’의 깃발이 된다. 아테네가 2,500년 전 추첨으로 시민을 공직에 세웠듯, 아일랜드와 캐나다의 시민의회가 헌법 의제를 숙의했듯, 우리도 할 수 있다. 한 번 켜진 이 불은, 광장의 촛불과 달리 선거가 끝나도 꺼지지 않는다. 제도는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불을 옮겨라
촛불은 한 번 타고 꺼지지만, 그 불씨를 제도라는 화로에 옮겨 담으면 꺼지지 않는 불이 된다. 우리가 광장에서 증명한 그 주권을, 이제 일상의 제도 속에서 행사할 차례다.
대리에만 맡긴 민주주의는 절반의 민주주의다. 주권자가 직접 다스리는 민치(民治)가 그 나머지 절반을 채울 때, 비로소 촛불은 완성된다. 빼앗긴 요처를 되찾는 길도, 다시는 빼앗기지 않는 길도 거기에 있다.
제3의 촛불을 켜자. 광장이 아니라 제도에, 분노가 아니라 숙의로,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
국민주권의 시대, 이제 ‘파일럿 시민의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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