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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일요반

잠자리들의 11월 텃밭풍경

작성자버들|작성시간13.11.28|조회수67 목록 댓글 2

 11월의 끝자락에 선 심학산 텃밭

모든 작물들을 갈무리한 텃밭은 주름진 앙상한 모습으로 시골집을 지키는 늙은 부모님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봄의 설렘과 여름의 싱그러움, 가을의 풍요로움을 안겨준 밭은 이제 맨 몸이 되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 때문이지요. 숲도 마찬 가지로 잎을 다 떨어뜨려  몸을 간소하게 만들어 겨울 날 준비를 하고요. 떨어진 잎은 따뜻한 이불이 되어 땅속 생명들을 보호해 주기도하면서.

이렇게 겨울준비로 분주한 자연의 모습이 우리 눈에는 스산한 초겨울로 다가오지요.

 

 스산한 밭에 재원이가 나타나 활기를 불어 넣습니다. 오랜만에 온 재원이 밭이 왜 이렇게 됐냐고 하네요. 9월에 오고 이제 오니 초록빛이 사라진 밭이 황량해보였나 봅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지요. 그래도 기특하게 잠자리반의 무밭과 배추밭을 기억하고 있네요.

잠자리들, 하나 둘 모여들어 시끌벅적 밭을 초록으로 물들입니다.

 

 무 밭으로 갑니다.

무에 씌어 놓은 비닐을 정준이와 맞잡고 걷어냅니다.

지난해 일찍 찾아온 추위에 놀란 기억 때문에 무가 얼까봐 미리 덮어 놓았더니 비닐 안에서  힘들었나 봅니다. 잎이 누렇게 변한 것이….

변화무쌍하면서도 제 길을 가는 자연 앞에서 사람의 예측은 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 잎은 누렇게 변했어도 크기만큼은 잠자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내가 뿌린 작은 점만 한 씨앗에서 커다란 무가 나왔으니 신기할 수밖에요.

지호, 자기 머리만한 무를 뽑아 들고 선생님을 부르며 씩 웃습니다. 뿌듯한 모양입니다.

유성이 이리 겅중 저리 겅중 무를 뽑느라 바쁩니다.

어! 오늘은 준희도 숲으로 놀러 가지 않고 무를 뽑고 있네요.

‘도윤아? 너도 이제 무를 스스로 잘 뽑는구나. 도윤이 많이 자랐네.’

‘호연아? 무 잎이 누렇게 변해서 잡고 뽑는 것이 거북하니?’, 호연이 떫은 감 씹은 표정을 지으며 엄지와 검지로 무 잎을 잡고 뽑습니다.

잠자리들, 무 뽑는 모습은 다르지만 다들 뿌듯함을 느꼈겠지요?

 

 뽑은 무를 외발 수레에 한 가득 싣고 집으로 향합니다. 우리들의 집 하우스로….

어! 밀고 가는 수레가 무거워서 움직이질 않네요. “얘들아 도와줘."  잠자리들 수레에 빙 둘러서서 앞에서 끌고 옆에서 밀고 뒤에서 운전합니다. 코앞에 집을 두고 무를 싫은 수레, 길을 잃고 밭둑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겨우 집에 도착했습니다.

‘야! 우리가 같이 해 냈다.’는 뿌듯함이 활짝 웃는 잠자리들 얼굴에서 배어나옵니다.

작은 힘도 모으니 무거운 수레를 움직여서 무를 옮길 수 있네요. 잠자리들, 오늘 마음속에 함께하는 기쁨의 싹도 틔었을 것입니다.

수레에서 무를 내려놓자고 하자 잠자리들 하나 둘 밭으로 숲으로 사라집니다. 수레를 끄느라 힘들었나봅니다. 세영이와 수빈이, 재원이, 정준이가 남아서 무를 내린 다음  잎을 뗀 무를 한 쪽에 놓습니다. 무 잎도 점잖게 따는 재원이, 입 꼬리가 살짝살짝 올라갑니다. 세영이, 장갑 낀 손이 불편했던지 벗어 던지고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서 무 잎을 땁니다. 입 꼬리가 길게 올라가는 모습에 제 입도 따라 올라갑니다. 수빈이 얼굴, 함박웃음에 입만 보이네요.

떼어낸 무 잎이 작은 산이 되었습니다. 정준이 뜯어낸 시든 무 잎을 수레에 싣고 다시 밭으로 끌고 가 두둑 위에 부립니다. 수레 운전하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정준이가 부려놓은 시든 무 잎이 내년에 거름이 되어 밭을 튼튼하게 해 주겠지요.

 

 “배추 뽑으러 가자, 잠자리들.”

정준이 수레를 끌고 앞장섭니다.

뽕뽕 구멍이 난 배추들, 동그란 그믈을 씌워 놓은 것 같습니다. 배추를 뽑던 수빈이 배추에 잔뜩 들러 붙어 있는 진딧물을 가리키며 뭐냐고 묻더니 배추를 못 뽑겠답니다.

진딧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태연이 달려옵니다. 몇 마리를 손에 묻혀 보여 주니 한참을 바라보며 조그맣다고 혼잣말을 하네요.

배추를 뽑고 있는데 땅강아지반 호준이가 옵니다.

아쉽게도 무는 뽑지 못했지만 배추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려봅니다.

한 포기 두 포기 뽑은 배추가 수레에 쌓인 만큼 배추 밭 잠자리들의 날개 짓도 빨라지고 소리도 윙윙윙 온 밭에 크게 울려 퍼집니다.

운전하지 않아도 감으로 아는 큰형 대현이, 배추가 수레에 가득 쌓이니 너무 무거우면 운전하기 힘들다며 그만 넣으라고 하네요.

‘그런데 대현아 너 어디로 가니? 운전 한 번 해 보지.’

정준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에고! 꼼짝을 않네요. 들어 보니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무를 나른 경험이 있는 잠자리들, 알아서 수레로 모여듭니다. 정준이는 앞에서 끌고 세영이와 수빈이, 태연이, 도윤이, 재원이는 옆에서 밀고 호준이와 유성이는 손잡이를 붙잡고 뒤에서 밀고 집으로 갑니다. 준희와 지호, 자기들도 밀고 싶다며 따라오네요.

집까지 거리가 너무 멉니다. 사공이 많으니 수레가 길을 잃고 밭둑으로 올라갑니다.

정준이 왈 “앞으로 밀지 말고 후진해야지.”라고 하네요. 운전을 많이 해 본 경험에서 나온 선배님 말씀에 모두 후진을 합니다. 후진을 해서 제 길을 찾아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잠자리들 먼 길 오느라 힘들었는지 배추 다듬자고 하니 역시나 모두 달아납니다. 정준이와 세영이 유성이, 재원이 만이 남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정준이, 배추를 한 통 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세영이와 유성이도 내리기 시작합니다. 몇 통 내리던 재원이 힘들다며 의자에 가서 앉습니다.

‘유성아? 너는 언제 사라졌니?’

 

 잠자리들 밖에서 뭐 하나 살펴봅니다.

지난주에 땅강아지들이 파다가 만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잠자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민수,호준이, 유성이, 지호, 도윤, 호연 언제 삽을 꺼내 왔는지 땅을 파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쉬지 않고 삽질을 하는 잠자리들, 구덩이 속 다리가 보이지 않네요.

‘여섯 잠자리들? 땅 파는 것 재미있니? 그것도 즐거운 놀이지.’

‘어라! 삽으로 스카이 콩콩 까지 하네.’

 

 다른 잠자리들은 또 뭐하나 보니, 대현이와 준희는 하우스 오른 쪽 위 밭에서 갈퀴로 상수리 잎을 긁어모으고 있네요.

 

 책 먹는 태연이와 수빈이, 의자에 앉아 얼굴을 책에 묻고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 궁금해서 보니 식물도감을 보고 있네요. 두 잠자리 숲에 가서도 나무껍질과 잎을 관찰하며 무슨 나무인지 찾아보았답니다.

 

  여전히 정준이와 세영이는 쭈그리고 앉아서 배추 겉잎을 다듬고 있네요. 그 사이 준희도 와서 한 통을 다듬더니 총총히 사라집니다.

‘준희야? 배추 다듬는 것이 궁금하긴 한 모양이구나.’

‘세영아? 곤충을 좋아하는 것 못지않게 배추 다듬는 것도 즐기는 구나.’

‘정준아? 농사일을 정말 즐기네.’

구멍이 워낙 많이 뚫려서 뜯어 낸 겉잎이 다듬어 놓은 배추보다 많습니다. 정준이 겉잎을 실은 수레를 끌고 세영이는 밀고 밭으로 가는 그림이 왠지 낮이 익네요.

정준이 수레를 옆으로 뉘어 배추 잎을 부리는 자세가 어른의 기세입니다.

배추 다듬기를 끝으로 올 한 해 농사의 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제 뭐할까?”

“불 한 번 피워볼까?”라고 하니 모두 대찬성입니다.

갈무리도 다 했겠다 이제 불을 피워 불놀이를 한 판 해보려 합니다.

불을 피우는 것은 얘나 어른이나 좋아하는 놀이이지요.

오죽하면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는 속담이 생겼을까요.

바람이 불어서 불씨가 날아 갈까봐 여섯 잠자리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 불을 피우자고 하니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네요. 자기들이 힘들게 팠는데 거기다 불 피워서 메워버리기 싫답니다.

하우스 입구, 상수리 잎을 긁어모아 놓은 곳 옆에 구덩이를 파기로 했습니다.

삽질하는 모습이 다들 예사롭지 않습니다.  계절이 세번 바뀐 사이에 진짜 어린 농부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조금은 서툴지만 거침없이 자신감이 넘친 삽질, 그것은 단순한 삽질이 아니라 흙을 파는 행위를 통해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흐흐! 삽질하는 모습을 보니 아기곰 선생님도 농부 다 되셨습니다.

구덩이 아래, 신문지에 불을 붙여 넣고 상수리 잎을 올려 불을 피우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릅니다. 두 잠자리가 긁어모아 놓은 상수리 잎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잠자리들, 나뭇가지를 주우러 숲과 밭을 오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

 

 불놀이도 시들할 즈음 ,숲으로 가니 낙엽이 온 산을 뒤 덮어 마치 두툼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합니다. 낙엽을 긁어모아 커다란 새 둥지를 만들어 잠자리들, 새가 되어 그 안에 들어가 누워 하늘도 보고 책도 보고 뒹굴며 놀았습니다.

.“이리 오너라! 잠자리들, 이 할미랑 우리 다 같이 가족사진 찍자.”

아기곰 선생님과 저는 할머니가 되고 잠자리들은 아빠, 엄마, 아들, 딸이 되어 가족사진도 찍고 즐거운 숲 나들이도 했습니다.

 

 

 신나게 놀고 나니 배가 슬슬 고파 옵니다.

보리선생님이 끓이고 계실 호박죽 생각을 하니 꼬르륵 신호가 울립니다.

“잠자리들, 호박죽 먹으로 가자.”

하우스로 오니 벌써 몇몇 잠자리들, 노란 호박죽을 맛나게 먹고 있네요.

땅을 파느라 호박죽을 안 먹겠다는 도윤이와 지호, 준희를 데리고 옵니다. 도윤이 맛있다며 자꾸자꾸 먹고 웬일로 지호도 맛있다며 두 번이나 먹습니다. 준희는 호박죽을 싫어한다면서도 한 입만 먹어보라고 하니 맛있다며 한 그릇을 더 먹습니다.

 

 봄, 여름, 가을을 함께 한 잠자리들, 처음 시작할 때는 따로 놀던 모습이 이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밭과 숲이 친구가 되고 아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어 같이하는 모습을요. 같이 하는 모습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때로는 갈등과 다툼도 있지요. 이 모든 것이 성장하는 과정이겠지요. 사랑과 인내로 지켜보며 지지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겠고요.

 

잠자리들,

12월 22일, 잔칫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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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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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ppy girl | 작성시간 13.11.29 잠자리들 아주 재미나게 놀았네요... 손수레 운전대를 놓지않고 계속 끌고 다니는 정준이 모습에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욕심쟁이로 보여 이 점을 고쳐줘야 겠구나 싶었습니다. 호박죽 메뉴 듣고 김치 챙겨가더니 역시나 김치와 맛나게 먹었다고 의기양양... 수빈이는 엄마말대로 쪼금만 맛보고 말았다고 혼내라는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더군요.
    그래도 직접 키우고 수확한 배추라는 생각때문인지 집으로 가져온 배추를 쌈싸서 맛나게 먹는 멋진 모습을 수빈이가 보여 주었습니다. 농부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수빈이의 음식에 대한 이런 변화가 커다란 수확입니다... ^^
  • 작성자정유진 | 작성시간 13.12.19 우리 아이들 세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느끼고...엄마의 생각보다 훨~~~씬 알찬 시간 이였음을 알것 같습니다~~뽑아온 배추랑 무를 아빠한테 자랑하고집에 놀러온 친구에게도 나눠주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었습니다. 형들하고 노는게 넘 재미있었다고...논다고 표현할 만큼 이곳은 아이에서 기쁨 가득한 곳이랍니다.
    저는 유치원에 갈때도 잘 놀다와~~~라고 얘기합니다.
    아이의 반응은 유치원에서 놀 시간 없어~~라고 얘기합니다.ㅜㅜ
    농부학교가 노는 곳이랍니다.온전히 온 몸으로 노는 곳...
    농부학교 이름을 꼬마농부 놀이터로 바꿔도 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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