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교회(普遍的 敎會) 또는 보편교회(普遍敎會)는 사도신조에서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신학 용어이다.
라틴어로는 Ecclesia Universalis,Ecclesia Catholica,Ecclesia Catholicam,
영어로는 Catholic Church, Catholic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Catholic Church와 Catholic은
천주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보편교회를 말한다.
사도신경에서의 언급
보편교회라는 신학용어의 뚜렷한 사용은 “거룩한 보편교회(Holy Catholic Church)와 성도의
상통(communion)을 믿는다”라는 사도신조의 신앙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보편교회를 뜻하는
신학용어는 라틴어사도신조의 Ecclesia Catholica와 영어 사도신조의 Catholic Church인데,
이를 한국교회에서는 "보편된 교회"(천주교), "공회" (개신교), "공교회(公敎會)", "보편교회",
"보편적 교회"(성공회),"공교"(公敎) 등으로 옮겼다.
교부들의 교회론
보편교회(Catholic Church)라는 신학용어가 교회사에서 처음 쓰인 때는 2세기 교부들에 의해서이다.
107년 안티오키아교회의 주교였던 이그나티우스(익나시오, 익냐시오)성인은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는
보편교회가 있다."며 보편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인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4세기 예루살렘 교회의
주교였던 키릴성인도 "보편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라면서 보편교회를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 분과 상통하는 공동체로 이해했다. 신학자들에 따라서는 보편교회를 직제와 믿음이 통일된
2세기이후의 교회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 문헌에서의 표기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회)에서는 자신들을 가톨릭, 가톨릭교회라고 부르기 때문에,개신교회,
정교회, 성공회처럼 로마 가톨릭 교회이외의 교회에서 만든 기독교서적에서는 교회사나 교회론을
다룰때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은 천주교회로,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는
보편적 교회로 이해한다.
교파별 보편교회에 대한 설명
기독교 종파별로 보편교회에 대한 설명과 정의가 상이하다. 신학적으로 보편교회를 눈에 보이는
측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을 구분하는 시각 또한 있다.
(이를 가리켜 보이는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칭한다.)
눈에 보이는 측면에 관해서 과연 어디까지를 보편교회에 속한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학 사상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개혁주의 교회
장 칼뱅의 종교개혁사상을 신학의 바탕으로 삼는 개혁교회에서는 참된 믿음을 가진 기독교 신자는
누구나 보편교회에 속했다고 주장한다.[9] 그리고 보이는 교회나 보이지 않는 교회에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권을 발휘하신다고 믿으며, 이 때문에 교황이라는 지상 대리자를 거부한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천주교)은 제도적이고 물리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보편적 교회가
신약 시대에 설립된 것으로 이야기 하나,[10] 개혁주의자들은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주장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교회의 본래의 뜻과 시공간을 넘은 "보편성"의 본래의 뜻에 충실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 말 그대로 하느님의 백성과의 예전 언약 아래의 교회의 역사이고,
신약은 하느님의 백성과의 새 언약 아래의 교회의 역사로 이해한다. 이러한 시각의 근거로 종종
인용되는 것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1장이다:
“ 올리브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 몇 개가 잘리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접붙인 가지들은 올리브 나무 원 뿌리에서 양분을 같이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들입니다.그러니 여러분은 잘려 나간 가지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럴 생각이 날 때에는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1장 17-18절
보통 위 내용에 대해 바울로는 위 설교를 통해 로마교회의 이방 기독교인(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들에게
유대인(올리브나무 가지)들을 구원받지 못한 백성이라며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공회
성공회(聖公會, Anglican Church, Episcopal church)에서는 성공회를 개혁하는
보편교회(The Reforming Catholic Church)로 이해한다.
또한 성공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를 가톨릭교회 즉, 보편교회로 이해하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와 천주교회는 다른 말이라고 이해한다.
정교회
정교회에서는 스스로를 정통 보편교회(The Orthodox Catholic church)라는 의미에서
정교회(The Orthodox Church)라고 부른다.[13]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 성공회등의
서방교회에서는 정교회를 동방교회로 부르기 때문에, 중용적인 의미에서 동방정교회라고도 부른다.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회)에서는 교회는 기원상 하나로 본다. 로마 가톨릭 교회 교리에 따르면
교회 단일성의 기원은 삼위일체 하느님이며, 교회는 그 설립자로 보아 하나이다. 즉, 강생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과 한 몸인 교회를 세웠다고 본다. 로마 가톨릭의 교회에 대한 설명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이라고 묘사된다. 교회는 영혼으로 하나이며, 성령이 교회 일치의
원리가 되며 또한 교회는 풍부한 은사, 직무, 민족, 문화 등의 다양성을 교회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을 교회 안에서 일치시키는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며 구체적인 일치의 유대는 사도들에게서
이어받은 하나의 신앙 고백, 하느님 예배와 성사의 공통 거행, 성품성사를 통한 사도적 계승으로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교회를 보편된 교회 곧 '가톨릭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가 보편된 이유는
교회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온 인류에게 파견하셨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온 인류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령으로 하나되어 보편적 구원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정의되는 가톨릭교회는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교회이다.
보이는 교회 / 보이지 않는 교회
보편적 교회의 보이는 속성과 보이지 않는 속성을 특별히 강조해서 교회를 이야기 할 때
용하는 신학 용어가 보이는 교회(Church Visible)와 보이지 않는 교회(Church Invisible)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초기 기독교의 이단인 도나투스파를 반박할 때
처음 소개하였다.[8]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신학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가 종교개혁
이후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보편적 교회를
제도적이고 물리적인 것에 중점을 두어 이해한 반면, 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성령으로
신비한 일체(unio mystica)를 이루고 있다는 영적인 속성을 교회의 본질로 이해했다.
그러면서 보편적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와 로마 가톨릭 신학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보편적 교회의 보이지 않는 속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보이는
속성 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15] 그리고 교황과 연합되어 있는 교회만이 곧 보편적
교회라고 주장한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수장이라고 주장한다.
개혁주의는 교회의 보이는 면에서나 보이지 않는 면에서나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대리자 없이
성령을 통해 직접 통치하신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교회의 보이지 않는 속성의 예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 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서 영혼이 천당에 가 있는 신자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신자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면모가 보편적 교회의 보이지 않는 속성이다. 이 외에도
다른 보이지 않는 속성들이 있는데, 그러한 속성을 집어서 교회를 서술 할 때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상은 이처럼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하나의
보편적 교회의 두 가지 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념을 서로 다른 집합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자들도 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하는 이론: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하는
시각에서는 보이는 교회를 지상에 있는 제도적인 교회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교회는
오로지 구원 받은 신자들로만 구성 되어 있지만, 보이는 교회에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도 들어와
있다고 본다. 루터교에서 발생한 피에티즘(Pietism)의 경우 '교회 안의 작은 교회'
(Ecclesiolae in ecclesia, little churches within the church)로 이러한 생각이 확대되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동일시 하는 이론: 위에서 서술했듯이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하려는 시각에서는 보이는 교회의 구성원이 누구인가를 판별하려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하나의 보편적 교회의 두 가지 다른 속성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는 보이는 교회를, 그 구성원이 누구냐로써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가
이 땅에서 나타내 보이는 실증으로서 파악하려고 한다.
“ 우리가 참된 교회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구성원의 파악이 아니라 그 현존을 파악함으로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택정함을 입은 사람들로 구성된 그의 몸)는 그 스스로를 나타내는데,
누가 그 택정함을 입었느냐를 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참된 신자들이 (위선자들과 섞여 있는 가운데서도)
하는 행사를 통해서이다. 그들은 참된 종교를 고백하고, 말씀에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며,
성례전과 권징을 시행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참된 보이는 교회에 요구되는 일이다. 택함 받은
백성들이 행하는 이러한 일들이 나타남으로 그리스도의 몸은 명백해지는 것이다. ”
— 윌리암슨(G. I. Williamson), [16]
개혁주의에서 지적되는 참된 교회의 보이는 징표는 다음과 같다:
말씀: 하느님의 말씀 곧 성경이 성실하게 선포 된다.
권징: 성경이 가르침에 따른 권면과 징계이다.
성례전: 세례와 성찬이 거룩하게 시행 된다.
보이지 않는 속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됨: 모든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
거룩함: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
보편적: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백성은 한 몸을 이룬다.
사도적: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