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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만나다

김근태

작성자공동선|작성시간12.05.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김근태

 

김근태가 참혹한 고문의 날들을 빠져나왔을 때

살아 나와 왼팔로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을 때 김근태가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을 때

나는 내 시의 언어로 그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두렵거나 주저하거나 황망하였다

그의 영가(靈駕) 옆에서

잊었던 혁명가요 몇 소절을 부르다 돌아오는 길

눈발이 몰아쳐 국밥집을 찾아들어갔다

영하의 날씨처럼 찬 소주를 털어 넣으며

김근태가 없는 여백을 헐렁한 이야기로 채웠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의 바다 위에서 최후까지

우리를 끌고 가야 할 명료한 선장인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기울고 그가 사용하는 동사가 어눌하며

발걸음이 느려지는 게 우리는 불만이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에 예민한 살과 뼈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칠성판 위에 알몸으로 꽁꽁 묶어놓고

전기로 지져대던 이십여 일의 낮과 밤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욕조에 머리를 처박고 항복을 강요하던 날들을

뼈를 부러뜨리고 저항하는 조직과

민주주의의 실핏줄을 짓이기던 가을밤을

남영동 그 죽음의 방을 구둣발을 붙잡고

짐승처럼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했던 피맺힌 목청을

창문도 창틀을 부여잡고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그 외딴곳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문을 참다 발뒤꿈치가 벗겨져 피가 흐르고

검푸르게 살들이 죽던 순간들을 증언하지 않는다면

시는 무엇을 노래한단 말인가

이렇게 처절하게 한 시대를 살아내다

늘 다니던 곳에서도 길을 잃고 집 근처에서 길을 묻다

마른 옥수숫대처럼 스러져간 영혼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고문을 이겼어도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를

한 생애를 다 던져도 역류하기만 하는 시대의 격랑을

김근태를

김근태의 필생의 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있으랴

이렇게 쓰러진 김근태를 보고도

내 시가 흐느끼지 않는다면                

                                                                  (도종환)

 

               * 25-26행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바치는 송가>중에서 인용 

 

 

                  횡성에 있는 횡성도서관에 아내가 볼일 보러가는데

운전사로 따라 갔다가 펼쳐본 어느 문학지에는 도종환님의

시 몇 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 정신을 퍼뜩 일깨우고 제 맘을

돌아보게 만든 시는 '김근태'였습니다.

  시의 길을 가던 도종환 님은 이번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지요. 김근태를 아프게 노래하는 시를 쓰던 손으로 무엇을 잡고, 세워

나갈지 궁금합니다. 시심을 잃지 않고 서서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국민의 

대리인이 되길 두손 모읍니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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