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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꾸는 글쓰기

김조년 선생님께

작성자공동선|작성시간11.11.07|조회수17 목록 댓글 0

김조년 선생님께

 

  오랜 만에 선생님께 안부를 묻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늘 제 삶에 동행이 되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걸어온 발자국마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 가운데 선생님은 처음 만난 뒤로 내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제 삶을 지탱해 주는 기둥으로 함께 계십니다. 선생님은 늘 ‘스스로 함’을 말씀하셨지요.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드러나지 않게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 편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게으른 저는 이번 편지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다신 한번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선생님께서 너그러이 받아주실 줄 믿기에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 갑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와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사회학 개론>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치러 들어오셨습니다. 남색 바바리코트를 입으시고 한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낡은 가죽 책가방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오셔서 우리 앞에 서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그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선생님은 강의와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강의는 조용하면서도 확신을 담고 있어서 무언가를 주입시키려는 듯 큰 소리로 외치는 설교만 주로 듣던 저에게는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강의 시간에 세 시간이 넘는 <간 디> 영화를 함께 보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하기도 하셨습니다. 신학교 안에서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또 한 번은 지금은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이 한남대학교에 강연하러 오셨을 때였는데, 그 강연을 듣고 소감을 적어내는 것으로 선생님의 그날 강의를 대신한다는 전갈을 받고 강연장으로 가서 리영희 선생님의 명 강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속에서 얼핏 선생님의 자유로움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꼭 본인의 강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선생님의 여유로움에서 우러나는 자유의 맛은 아주 시원하고 달았습니다.

 

  선생님, 1980년대인 그 때는 어둠의 시대였지요. 그래서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민족과 사회의 어둠 때문에 괴로워하고 방황하며 길을 찾고자 길거리로 나가며 다치고 때론 목숨을 잃기도 했을 때 선생님은 일상 속에서 사람이 주인 되는 길을 고민하시며 스스로 찾아 나가심으로 우리들에게 현실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더욱 알차게 세울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학생인 저희들에게는 ‘신앙생활’을 넘어서는 ‘생활신앙’을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소소한 일상에 신앙이 배어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생활에 방점을 찍는 신앙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몇 해 쯤 뒤에 선생님에게 사회학 강의를 한 학기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여러 책들을 학생들이 나눠 맡아서 발제를 하고 선생님이 질문을 하시는 형태로 강의를 진행해 나가셨습니다. 아마도 학생들의 독서하는 능력과 글쓰는 힘을 배양하시려는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때 제가 맡은 책이 이진경 님이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이란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보수적인 신앙풍토에서 자라나 신학교에 다니고 있던 제게는 제목부터가 만만치 않은 책이었지요. 본래는 제가 발제를 맡은 것이 아닌데 발제를 맡은 동료가 못하겠다고 해서 겁도 없이 내가 읽고 해 보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를 해서 앞에 나가 그럭저럭 발제를 했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가 발제한 내용 가운데 무엇인가를 질문하셨습니다. 그 질문은 기억나지 않는데 제가 대답을 잘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만 갸우뚱 하고 가타부타 말씀은 없으셨지요. 그리고 한 동안 생각에만 잠겨 계셨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 지요. 얼굴은 또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뒤로 그 책을 여러 번 읽어 어렴풋이 그 내용을 이해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사회학을 넘어 인문학 전반에 걸쳐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책을 읽으며 사람살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목회의 길이 신의 뜻을 헤아려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일진대 사람살이를 모르고서야 어찌 제대로 신의 뜻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저한테는 꼭 필요한 공부를 조금씩이나마 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지요. 잘 몰랐기 때문에 더욱 여러 번 읽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깊게 공부하는 법을 나름대로 갖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참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과 저를 이어준 끈은 단연 <표주박 통신>입니다. 늘 내용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관심 있는 부분을 찾아 읽는 노력을 하며 선생님의 삶과 생각 그리고 학문을 꾸준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표주박 통신>은 말 그대로 답답한 현실에서 찬물 한잔을 떠서 마시는 시원함을 제게 주었습니다.

 

  제가 졸업하고도 선생님을 찾아가고 아주 가끔은 편지도 드리고, 제가 속한 교회나 모임에 강의도 부탁드리고, 밥도 함께 먹는 만남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졸업 후 만남의 시작은 스승을 만난 선생님의 경험담을 제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스승을 만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전화 한 통화하는 용기, 엽서 한 장 쓰는 용기면 충분하다고. 그러면서 함석헌 선생님을 만나게 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숫기가 없는 편이지만 그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숨을 고르고 선생님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습니다. 그 때부터 선생님은 사회학을 가르쳐주시는 교수에서 개인적인 가르침을 주시고 사귐을 나누는 제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그 때 선생님 연구실에는 직접 쓰신 ‘지금을 떠서 마셔’ 란 붓글씨가 표구되어 걸려있었는데, 아직도 가끔 그 글귀가 제 맘을 울립니다. 그날 연구실에서 선생님과 만난 것은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선생님 비슷하게는 가야할 텐데 영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특히 쓰신 글을 읽을 때 제가 느끼는 것은 참으로 생각을 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글은 속일 수가 없지요. 가만히 읽어보면 그 마음과 생각의 깊이가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그런데 저는 늘 가벼운 글만 씁니다. 제가 쓴 글을 읽을 때마다 그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글이 좀 더 깊어졌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 때 뿐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그 타령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것은 진솔한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글은 못써도 거짓 글은 쓰지 말자는 생각을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제 삶도 큰일은 못해도 거짓된 말과 행동을 좀 덜 하면서 살았으면 싶습니다.

 

  선생님, 정년을 맞이하시는 마음이 어떠신가요? 선생님은 무엇을 억지로 끌고 간다는 느낌을 한 번도 제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드리면 ‘좋습니다.’라고 응대하시기를 즐겨하셨고, 제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도 ‘괜찮습니다.’라고 너그러이 받아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자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편지 앞머리에서도 잠간 말씀드렸지만 ‘스스로 함’이라고 봅니다. 자율성이라고도 부르는 이 말은 성숙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자 자유로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노예처럼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그 굴레를 벗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함‘이라는 삶의 자세를 바라셨기에 교육의 길을 빠르게 달음박질하지 않고 천천히 산책하듯 그러나 흐트러지지 않고 또박또박 걸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뒤로 처지는 제자에게도 같이 가자는 듯 산책의 자세로, 바른길 걸으셔서 제자들의 이정표를 세우시려는 듯 또박또박 똑바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못난 제자에게는 선생님이 걸으신 배려 깊은 교육의 길이 더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생님의 배려를 받다보니 어느새 제 속에서는 혼자만 조용히 선생님을 큰 형님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불경스런 것은 아니겠지요. 하긴 선생님은 저를 언제나 벗처럼 대해주셨으니까 제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이 품을 벌려주시지 않는데 제가 어찌 선생님에게 비집고 들어가 그런 생각을 혼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선생님, 몇 해 전부턴가 선생님은 수염을 기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늘 깔끔한 얼굴로 뵙다가 어느 날 수염을 기른 선생님의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조금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수염을 기르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선생님의 자유이니까 기꺼이 선생님의 말투처럼 ‘좋습니다.’로 응대합니다. 그리고 제 멋대로 수염을 기르시는 의미를 새겨봅니다. 저는 선생님이 수염을 기르시는 것을 늙음을 받아들이신다고 보았습니다. 늙음이 받아들인다고 오고 거부한다고 안 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우리나라처럼 한사코 늙음을 안 받아들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지요. ‘젊음은 아름답지만 늙음은 고귀하다.’고요. 진정한 늙은이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선생님은 수염을 기르시므로 스스로 고귀한 늙은이가 되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임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정년을 맞아 학교에서 물러나시지만 선생님의 교육의 길은 또 다른 형태로 계속될 것을 믿습니다. 저도 잰 걸음으로나마 놓치지 않고 뒤를 따를 것이니 선생님께서는 그 길을 부디 고귀한 걸음으로 걸어가시길 비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2011년, 한낮 더위가 뜨거운 늦봄에 홍승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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