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화구곡을 찾아서
옥화구곡은 다음과 같다. 제1곡은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의 만경대(萬景臺)다. 제2곡은 청주시 미원면 계원리의 후운정(後雲亭)이다. 제3곡은 청주시 미원면 어암리의 어암(漁巖)이다. 제4곡은 미원면 월용리의 호산(壺山)이다. 제5곡은 미원면 옥화리의 옥화대(玉華臺)다. 제6곡은 미원면 옥화리의 천경대(千景臺)다 제7곡은 미원면 옥화리의 오담(鰲潭)이다. 제8곡은 미원면 운암리의 인풍정(引風亭)이다. 제9곡은 보은군 내북면 봉황리의 봉황대(鳳凰臺)다.
이를 통해 미원면 옥화리에 있는 옥화대, 천경대, 오담이 옥화구곡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옥화대를 가기 전 미원면 금관리에 있는 금관숲을 찾았다. 금관숲은 금관1리 점말(寬洞) 앞 달천가에 조성한 2,400여 평의 숲으로 유원지 겸 피서지다. 금관숲 상류쪽으로 금관교가 있다. 과거 청원군에서 설정한 옥화구경 중 제6경이다. 금관숲에서 달래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옥화구곡 중 제4곡 호산이 나온다. 하천이 병목처럼 좁게 돌아 흐르고, 그 안에 산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월용1리 마을회관에서 하천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이 잘 나 있지 않아 접근에 어려움이 있다. 월용리를 지나 옥화리에 이르면 달래강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진다. 옥화리 경로당에서 150m쯤 가면 옥화1교가 나오고, 다리 아래로 강이 흘러간다. 옥화1교의 상류 쪽 건너편에 제6곡 천경대가 있고, 하류 쪽 마을 뒤 언덕 위에 제5곡 옥화대가 있다.
천경대의 한자 표기는 천 가지 경치를 뜻하는 천경(千景)이다. 만 가지 경치를 뜻하는 제1곡 만경(萬景)과 대비된다. 그러나 현장을 답사해 보면 한자를 하늘 거울을 뜻하는 천경(天鏡)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강변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과 하늘이 맑은 물에 반영되어 멋진 경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가에서 바위 절벽을 올려다볼 때 천경대의 모습은 더 웅장하다.
옥화대로 가려면 마을 입구에 있는 주일재(主一齋)와 옥화서원(玉華書院)을 지나야 한다. 주일재는 윤승임(尹承任)의 호이기도 하고, 그가 공부하던 서재이기도 하다. 주일재 안에는 우암 송시열이 윤승임을 위해 지어준 주일재잠((主一齋箴)이 걸려 있다. 성현이 되는 길에 한 가지 꼭 필요한 것(一貫之要)이 경(敬)이라고 쓰여 있다.
그 한 가지가 대체 어떤 것인가? 其一維何
셋도 아니고 둘도 아니어서 不參不貳
고요할 때 양심을 유지하고 靜而存心
움직일 때 일에 맞게 응하는 것이다. 動而應事
엎어지고 자빠지는 위급한 때도 造次顚沛
바로 이것에 주력하게 되면 一主於此
사람의 욕심이 날로 사라지고 人欲日消
천리 아닌 것이 없게 된다. 罔非天理
옥화서원이 처음 건립된 것은 1717년(숙종 42)이다. 처음에 서계 이득윤을 배향했고, 후에 주일재 윤승임, 옥계(玉溪) 박곤원(朴坤元), 돈암(遯庵) 윤사석(尹師晳)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9년에 복원되었다. 현재는 사당인 숭현사(崇賢祠)만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왼쪽에 있는 경모사(景慕祠)가 있는데, 돈암 윤사석을 기리는 사당이다. 돈암은 사헌부 집의를 그만두고 1501년 옥화리로 낙향해 만경정(萬景亭)을 짓고 살았다. 명리를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주자학을 가르쳐 7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90년대 경모사와 만경정을 새롭게 짓고, 선생의 경의주정(敬義主靜)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리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두 개의 정자가 있는데, 왼쪽에 추월정(秋月亭)이 있고 오른쪽에 세심정(洗心亭)이 있다. 추월정은 서계 이득윤이 지은 추월헌을 모방해 후대에 지어졌다. 추월정에는 1883년(癸未) 송근수(宋近洙)가 찬한 중수기가 있다. ‘옥화구곡 중 제5곡에 정사를 짓고 당호를 춘풍(春風)이라 하고 옥호를 추월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이 건물은 1898년(戊戌) 윤3월에 서계의 9세손 이두영(李斗榮)이 중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추월정에서는 달래강이 내려다보인다.
세심정은 주일재가 심법을 논하며 지은 정자다. 세심정에는 을축(乙丑: 1865)년 송근수가 찬한 중건기가 있는데, 이곳에서 세심정을 ‘주일재 윤공의 옛집(舊居)’이라고 표현했다. 무진(戊辰: 1868) 윤 4월 김술현(金述鉉)이 찬한 중건기도 함께 있다. 이곳에 보면 ‘마음은 본래 비어 있고 형태가 없는 것(心本虛而無形)이어서 어떻게 하면 더럽고 오염된 것(垢汚)을 깨끗이 씻어낼까(滌濯)’를 생각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송근수의 중건기에 비해 철학적이다. 현재 건물은 1966년(단기 4299) 3월 상량을 거쳐 중수되었다.
추월정과 세심정이 있는 곳이 옥화대다.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달래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주변에 소나무가 심어져 운치가 있었지만, 현재는 활엽수가 많이 침범한 상태다. 그 때문에 강쪽 전망이 옛날만 못 하다. 이필영은 제5곡 옥화대 추월정을 주자가 설정한 무이구곡의 5곡에 있는 무이정사(武夷精舍)와 비교했다.
오곡에 황량한 누대 있어 옥화라 부르니
五曲荒臺是玉華
춘풍정과 추월헌이라는 도인의 집이라오.
春風秋月道人家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그 누가 무너뜨리랴
瞻前忽後誰能罷
산위 선령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겠네 그려.
山上仙靈認不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