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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묵상.강론훈화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작성자뿌리깊은나무|작성시간26.06.22|조회수142 목록 댓글 0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 창세 12,1 -

신성근 신부(성사전담사제)

 

떠남은 늘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사람의 만남에는 시작이 있지만, 이별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합니다. 함께 걸어온 시간이 깊을수록 떠남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보내며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남는 아쉬움과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청주교구가 느끼는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4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하고, 주교님께서 새로운 직무를 받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이기에, 놀라움은 더 크고 아쉬움도 더 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직 함께해야 할 시간이 남아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사건의 끝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한 사람의 떠남을 이야기합니다. 아브람은 어느 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주님께서는 목적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이시지도 않으셨고, 앞으로의 여정을 미리 알려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그저 길을 떠났습니다. 신앙의 위대함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마침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교회의 역사는 크고 작은 아브라함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때로 사제를 부르시고, 때로 주교를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 인간의 계획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가장 알맞을 때, 가장 필요한 곳으로 이끄십니다. 이번 전임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청주교구라는 개별교회를 위한 봉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개별교회를 향한 새로운 파견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눈에는 이동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파견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사람이 아니라 부르시는 주님의 뜻 안에서 길을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성경 속 하느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익숙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고, 모세는 미디안을 떠났으며, 사도들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끝으로 파견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떠나는 이들의 순명 위에 세워져 왔습니다. 주교님의 떠남도 그 긴 순명의 역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대구 대교구라는 새로운 땅은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 낯선 땅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은총이 숨 쉬고, 새로운 사명 안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 그루 나무가 자리를 옮겨 심길 때 처음에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넓은 그늘을 드리웁니다. 청주교구에서의 시간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누신 기도와 사랑, 사목의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교회 안에서 또 다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대주교님,

청주교구에서의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땅에서 걸으실 모든 길 위에 성령의 빛이 함께하시고, 목자의 지팡이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표지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이 떠남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그 떠남은 이별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더 큰 사랑의 파견이었다고.

 

주님께서 부르시는 길에는 언제나 은총이 있고, 주님께서 보내시는 땅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매가 있습니다. 떠나는 이는 순명으로, 남는 이는 기도로. 그렇게 교회는 오늘도 하느님의 역사 안을 걸어갑니다. 끝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이 약속은 변함없이 주어진 교회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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