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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축일

[스크랩] 7월 3일 축일 맞으신 성인

작성자김영철 베드로|작성시간24.07.03|조회수9 목록 댓글 0
        ♡7월 3일 오늘의 성인♡ ============= 성 다토(Dathus) 축일 7월 3일 성 다투스(또는 다토)는 그의 머리 위에서 계속 날고 있는 한 비둘기의 기적적인 출현으로 인해 이탈리아 라벤나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콤모두스 황제의 통치 중에 자신의 교구를 다스렸다. 그는 또한 다투스(Datus)로도 불린다. ================================ 성 레오 2세(Leo II) 축일 7월 3일 시칠리아(Sicilia) 출신인 성 레오 2세는 681년에 성 아가토(Agatho) 교황을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그는 비록 짧은 재임기간을 보냈으나 일신교 이단을 단죄하는데 성공하였고, 카타콤바로부터 많은 순교자의 유해를 자신이 세운 성당으로 옮겨 공경하여, 성인 공경에 대한 선풍을 일으켰다. 그는 웅변에 능하였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라틴어와 꼭 같이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 성 루몰드, 순교자(775년경 순교) 축일: 7월 3일 테오도릭 원장의 기록에 따르면, 성 루몰드는 그의 고향에서 오랫동안 하느님만 충실히 섬기던 수도자였는데, 영혼들을 구하려는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인근의 우상숭배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 그는 로마까지 여행하는데, 그곳에서 선교사 칭호와 주교로 축성되어 브라반트족에게 파견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리기를 고대하던 중에 마침내 야만인들에게 살해되어 거룩히 순교할 수 있었다. ================================ 성 마르코(Mark) 성 무키아누스(Mucianus) 성 바오로(Paulus) 축일 7월 3일 로마 순교록의 목록에 따르면 거룩한 순교자 성 마르코(Marcus)와 성 무키아누스(Mucianus)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칼을 맞고 살해되었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소년은 그들을 향해 결코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다가 채찍형을 받았고, 더욱 큰 소리로 그리스도를 고백하자 그들과 마찬가지로 살해되었다. 이 때 그들의 순교를 격려하던 성 바오로(Paulus)라는 사람도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 연대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 성 아론(aaron) 성 율리오(julius) 축일 : 7월 3일 이 두 로마-브리톤 사람들은 3세기 중엽에 몬마우스셔의 체를레온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교한 듯하다. 이 분들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304년경, 디오클레씨아노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 오지만, 크리스챤에게 대한 디오클레씨아노의 칙령이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또 다른 두 사람의 무명 순교자는 소크라테스(socrates)와 스테파노(stephen)인데, 이들은 어떤 순교록에 보면 영국(britain)에서 순교했다고 전하여 진다. 그러나 이것은 소아시아의 비티니아(bithynia)의 오기일 것이다. ================================ 성 이레네우스(Irenaeus) 성녀 무스티올라(Mustiola) 축일 7월 3일 성 이레네우스(Irenaeus)는 수트리 교회의 사제이던 성 펠릭스(Felix)의 유해를 장사지낸 부제였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박해자 투르키우스는 그를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이리하여 그와 다른 동료 신자들이 투옥되자, 귀부인인 성녀 무스티올라가 그들의 뒤를 보살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 예뻤으므로 투르키우스는 그녀의 환심을 사려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리하여 성 이레네우스와 성녀 무스티올라는 모진 고문 끝에 순교하였는데, 특히 무스티올라는 동정 순교자로서 이탈리아 페자로(Pesaro) 지방에서 공경을 받는다. ================================ 성 아나톨리오(Anatolius) 축일 7월 3일 성 아나톨리우스(또는 아나톨리오)는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단죄한 에페수스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정통교리 수호 문제로 인하여 크고 작은 수난을 많이 당하였다. 또 그리스도의 단성설과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재차 단죄한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에서 큰 활약을 한만큼 수난도 많았다. 동방 교회에서는 아나톨리우스를 성인으로서 크게 공경하고 있다. ================================ 성 아나톨리오(Anatolius) 축일 7월 3일 알렉산드리아 사람인 성 아나톨리우스 (또는 아나톨리오)는 그 당시에 고향의 아리스토텔레스 학교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그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로마 군인들이 난폭하게 처리해서 그가 사는 지역 주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당시 부제이던 친구 에우세비우스 (Eusebius)와 더불어 장군과 협상하여 주민들이 그곳을 떠나게끔 하여 위기를 벗어났다. 그 후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가서 카이사레아(Caesarea)의 주교관에서 일하던 중 라오디케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물리학과 수학 및 철학의 대가였다. 로마 순교록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주교로서 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였다.’ ================================ 성 에울로지오(Eulogius) 축일 7월 3일 성 에울로기우스(또는 에울로지오)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아리우스파의 발렌스 황제 때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순교하였다.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 성 토마스(Thomas) 축일 7월 3일 사도 성 토마스는 아마도 갈릴래아 출신인 듯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성 토마스는 12사도 중의 한 명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는 라자루스(Lazarus)가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예수와 함께 있었고(요한 11,16),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께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여쭈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해답을 들었다(요한 14,5-7).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발현하셨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0,24-27). 이 때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 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다. 또 예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셨을 때에도 그 현장에 있었다(요한 21,1 이하).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토마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도망간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가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은 충동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불성실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그런 뜻을 밝힌 것은 라자로가 죽고 난 뒤, 예수께서 베다니아로 갈 것을 제의했을 때였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의는 바로 그들이 적 한가운데를 통과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 때 토마는 다른 사도들에게 "주님을 따르자, 그리고 그와 함께 죽자." 라고 말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토마스는 나중에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 에서 설교하였고, 또 다른 옛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순교하여 마드라스(Madras) 교외 밀라포르(Mylapore)에 묻혔다고 한다. 성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성인이고, 1972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인도의 사도로 선언되었다. 설명 ; 토마는 성급한 사람이고 여러 면에서 베드로와 비슷하며 '천둥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그의 어리석은 질문은 모든 사도들의 연약함과 이해 부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과장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치 없는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인 허약함은 "은총은 인간의 창의가 아니라 신의선물이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은총은 허약함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허약한 인간을 용기있고, 신심 깊고,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모상대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느님 자신이다. 인용 ; 성덕에 나아가기 위해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것과 똑같은, 가난과 순명과 죽음에 이르는 자기 희생과 봉사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도들이 희망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는 그들 자신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만으로 부족했던 것을 보충했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5항 참조) ================================ 성 트리폰(Tryphon) 축일 7월 3일 성 트리폰을 포함해서 모두 13명의 순교자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희생되었다. 다른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이나 순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 성 헬리오도로(Heliodorus) 축일 7월 3일 달마티아(Dalmatia) 태생의 성 헬리오도루스 (또는 헬리오도로)는 원래 군인이었는데, 372년경에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를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만나 삶을 바꾸었다. 그는 히에로니무스와 함께 동방으로 갔지만, 사막의 은수생활은 반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베네치아(Venezia) 근교의 작은 마을인 알티눔의 주교로 임명되자, 성 크로마티우스 (Cromatius)와 함께 성 히에로니무스의 성서 번역사업을 위한 기금을 조달하는 등 큰 힘이 되어주었다. ================================ 성 히야친토(Hyacinth) 축일 7월 3일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트라야누스 황제의 시종으로 있던 성 히야킨투스 (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신앙 때문에 투옥되어 굶주림으로 사망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주인이 그에게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만을 허용하였고, 그는 결코 그러한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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