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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축일

[스크랩] 6월 6일 축일 맞으신 성인

작성자김영철 베드로|작성시간26.06.06|조회수5 목록 댓글 0

 

♡6월 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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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구드발(Gudwal) 
 
축일 6월 6일  
 
구르발이라고도 불리는 성 구드발은 
웨일스(Wales) 사람으로서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로 갔던 초기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로코알 근교에 플레싯 
수도원을 세웠고, 브르타뉴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주교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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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르베르토(Norbert) 
 
축일 6월 6일  
 
독일 산튼(Xante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또는 노르베르토)는 
하인리히 5세 황제의 궁전에서 하사품을 관리하는
차부제로 지내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식에 참석하고자 말을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아 땅에 떨어졌다. 
얼마 후 의식이 회복되자 방탕했던 지난 생활에 
대해 깊이 통회하며 
“주님,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옛날의 사도 바오로(Paulus)처럼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는 쾰른 근처 지그부르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단식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결국 주님의 뜻을 확신한 그는 
쾰른 시로 나와 사제 서품을 준비하고 
111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는 과거의 죄의 보속으로 이러한 모욕과 냉대를 
참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후 그는 주임 사제직을 사임하고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보속의 길을
떠났다. 그가 북부 프랑스를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큰 효과를 내게 되어 그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이윽고 포세스(Fosses)의 성 후고(Hugo, 2월 10일)가
동반자가 됨으로써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1120년 1월 25일 그는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프레몽트레(Premontre)에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율수 수도회를 개혁하여 새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 수효는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프레몽트레 수도회’이다. 
그는 생전에 8개의 대수도원과 2곳의 수도원을 세웠고,
교황 호노리우스 2세(Honorius II)로부터 1125년에 
공식 인가를 받았다. 
그 후 테오발드(Theobald) 백작이 입회를 요청하자 
그는 입회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 
살도록 제3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에 갔다가 황제와 교황 사절의 
간청에 굴복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될 것을 
승낙하였다. 그 교구에는 개혁할 일, 정리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 그가 임지에 갔을 때 주교관의 
문지기는 그의 너무나 남루한 모습을 보고 
거지로 착각하여 주교관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새 주교와 그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된 이들도 많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하며 심지어 그를 처치해 버리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덕행과 온화하고 용맹한 마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였다.

1132년 그는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로마에 
갔다가 중병에 걸려 4개월 간 병상에 눕게 
되었으나 그 후 교구로 돌아와 2년 간 직무를 
수행하다가 1134년 54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캉브레(Cambrai)에서 이단과 싸우는 친구 
성 발트만(Waltman, 4월 11일)을 도와주었으며, 
성체 현존에 관한 이단을 배격하는데 공로가 컸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Gregori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672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는 
전세계 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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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프란치스코회(O.F.M)를 농담으로 
'돈에 빠진 사람' (Out For Money)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프레몽스트라텐시안 
(Premons tratensions) 수도회를 
'괴물같은 허세'(Monstrous Pretensions)라는 말로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그 이름은 사실 노르베르토가 
12세기에 수도원을 세운 장소인 프랑스의 
프레몽트레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별명을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노르베르토가 
수도원을 세운 것은 사실 괴물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특별히 성체 성사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는 
이단과 맞서 싸우며 무관심과 방탕 속에 자라 온 
많은 신자들에게 다시 활력을 주고 이단들과도 
화해와 평화를 이룬 것이다.
노르베르토는 그 많은 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아무런 허세도 
부리지 않았다. 그의 수도원에 들어온 수많은 
착한 사람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느님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성체 성사에 대한 신심에서 특별히 이러한 도움을 
발견하며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이단자들을 회개시키고 
수많은 원수들을 화해시키며 무관심한 신자들에게 
신앙을 일깨워 주는 데 성공하게 해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노르베르토는 마지못해 반은 이방인이고 반은 
그리스도인인 남독일에 있는 막드부르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이 직위에서 1134년 
6월 6일 그가 죽을 때까지 교회를 위해 
용감하고도 열성적으로 그의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582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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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시오, 설교가(1535년 순교)

축일 : 6월 6일

마스꼴리가의 후손으로서 아브루찌의 
빌라마냐 태생인 그는 오르또나에 있던 
프란치스꼬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당대의 최고 설교자 중의 
한분으로 꼽히는데, 설교하기 전에는 
항상 자신을 엄히 책하고, 청중들은 
거의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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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첼리노 샴파냐(Marcellinus Champagnat) 
 
축일 6월 6일  
 
프랑스의 르 로지(Le Rosey)에서 물방앗간 집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는 
리옹(Lyon) 신학교에서 공부하여 181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라 발라 본당의 보좌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신학교 생활 이후 늘 소년들을
교육하는 수도회 설립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마침내 1817년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를 설립하여 1836년에 
공식 승인을 받았다. 그는 마리스타의 교육 이념인
학교 지침을 발간하였고, 교육 분야에서 
기여하다가 노트르담 에르미타주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955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999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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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만시오(Amantius) 
 
축일 6월 6일  
 
성 아만티우스(또는 아만시오)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프랑스 남동쪽 칸(Cannes) 지역의 
성당에서 사목하였고, 후에 누아용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신앙 때문에 다섯 명의 사제들과 함께 
순교했는데, 그 중 세 명의 사제는 그의 형제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순교한 다섯 명의 
사제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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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테미오, 성녀 칸디다, 성녀 바울리나

축일: 6월 6일

성 아르테미오는 베드로와 마르첼리노가 
갇혀있던 감옥의 경비병이었다. 
아르테미오는 바울리나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마귀에 걸려 있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경비병에게 그리스도교로 회개하면 마귀들린 
딸을 마귀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경비병인 아르테미오는 이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치광이로 조롱하였다. 그러나 
기적을 체험하고서 아르테미오는 자신의 
아내(칸디다)와 딸(바울리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해 
붙잡히게 되었다. 두 모녀는 큰 화롯불에 
던져져 죽었고 이어서 큰 돌덩어리 밑에 묻혔다. 
그리고 아르테미오는 칼로 참수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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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축일 6월 6일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피에졸레의 
주교였던 성 알렉산데르는 교회의 일에 대한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귀족들의 부당한 
간섭과 침해에 대항하여 교회의 신앙을 지킨 
맹렬한 옹호자였다. 그는 볼로냐(Bologna) 
부근에서 매복한 반대자들에 의해 레노(Reno) 
강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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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스토르지오 2세(Eustorgius II) 
 
축일 6월 6일  
 
성 에우스토르기우스 2세(또는 에우스토르지오 2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512년에 밀라노의 
주교로 승품되었고 약 7년 동안 교구를 다스린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는 높은 성덕의 소유자로서 
신자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목자였고, 
교회의 정통성을 수호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베리(Berry) 지방에 복음을 선포하러 
다녔다. 그는 밀라노의 성 라우렌티우스(Laulentius)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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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6월 6일  
 
성 요한(Joannes)은 성 마우루스(Maurus, 11월 21일)를 
계승하여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구 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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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윌리발드(Willibald)

축일 : 6월 6일

웨스트 색손의 리차드 왕의 아들인 
성 윌리발드는 에섹스에서 태어나 월트햄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721년에 부친과 
형제들을 따라 로마 순례길에 올랐다. 
그의 부친은 이탈리아의 루까에서 운명했지만, 
그는 예루살렘까지 순례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에메싸에서 스파이 혐의로 사라센인들에게 
투옥되었으나, 무혐의로 석방되어 순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몬떼 까시노에서 
10년을 살았고, 740년경에 로마에서 
성 그레고리오 3세를 만나 선교사의 자격을 얻고 
파견되었다. 그가 투린지아로 가니 성 보니파시오가 
그를 사제로 서품하였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선교사의 자질을 보였고, 그의 업적 또한 대단한 
성공이었으므로, 아이크슈탯트 주교로 임명되었다. 
약 40년간 교구를 다스리다가 운명했는데, 
그는 성지를 순례한 최초의 잉글랜드 사람으로 꼽히며, 
"오도에포리콘"이란 순례기는 잉글랜드 최초의 
여행 안내서로 인정받는다. 그는 938년에 
레오 7세로부터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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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자를라트(Jarlath) 
 
축일 6월 6일  
 
성 자를라트는 성 엔다(Enda)의 제자로서 투엠 교외의
클루인 포이스(Cluain Fois)에 수도원을 세웠고, 
그 지방의 교구를 설정한 초대 주교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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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라르도(Gerard) 
 
축일 6월 6일

제라르도는 '세게 창 던짐'이란 뜻이다.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옛 수도인 몬차(Monza)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에 양친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산으로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직접 나환자의 손발을 씻겨주어 주위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고, 이러한 그의 훌륭한 봉사로 인하여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또 그에게 애긍을 청한 
사람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없었다.
한번은 이 지방에 기근이 들어 그 자신도 거의 
아사지경에 이르렀지만, 그의 기도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주민들을 살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에 대한 공경은 1582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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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체라시오(Ceratius) 
 
축일 6월 6일  
 
성 케라티우스(또는 체라시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5세기 중엽에 프랑스 그르노블의 주교로 
활약하였고, 뛰어난 덕행으로 당대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라는 사실만 확인된다. 
그는 441년의 오랑주 공의회(Council of Orange)에 
참석하였고 오슈(Auch) 교구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성인의 유해는 롱베스 근교의 시모르 수도원에 
안장되어 있다. 세라스(Serase)로도 불리는 성인에 
대한 공경은 1903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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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라우디오(Claudius) 
 
축일 6월 6일  
 
성 클라우디우스(또는 클라우디오)는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Franche-Comte) 태생으로 원로원 집안 
출신이며, 사제로 서품된 후 브장송 교구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그는 12년 동안 봉직하다가 
스스로 은퇴하여 콩다트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그는 여생을 거룩하고도 엄격한 생활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후일 그의 이름을 
따서 생클로드(Saint-Claude)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된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칙을 채택하고 
건물을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685년에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브장송의 
주교로 선임되었으나,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7년 동안이나 교구를 발전시켰다. 
그 후 그는 또다시 주교직을 사임하고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성 클라우디우스의 축일은 12세기에 와서 널리 
전파되었고, 그의 유해도 발견되어 큰 공경을 
받았는데, 그의 무덤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그는 클로드(Claud)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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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필립보(Philip) 
 
축일 6월 6일  

필립보는 '말(馬)의 친구'란 뜻이다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보조자(부제) 중의 한 명이고(사도 6,5),
처음으로 사마리아에서 설교하였으며(사도 8,5-13), 
마술사 시몬의 개종을 비롯하여 에티오피아(Ethiopia)의
내시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사도 8,26-40). 
그는 주로 카이사레아(Caesarea)의 자기 집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했는데 결혼하지 않은 딸 넷을 
데리고 살았다(사도 21,8-9). 그리스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 서부 리디아(Lydia)의 트랄레스
(Tralles) 교구의 주교였다고 한다. 
그의 설교가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가끔은 그를 ‘복음사가’라고도 불렀고, 
그로 인해서 사도 성 필리푸스와 때때로 
혼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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