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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축일

[스크랩] 6월 13일 축일 맞으신 성인

작성자김영철 베드로|작성시간26.06.13|조회수3 목록 댓글 0

♡6월 1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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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성 루치아노(Lucian) 
 
축일 6월 13일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와 
성 루키아누스(Lucianus, 또는 루치아노)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그들의 순교 행전은 망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교록들은 그들과 함께 순교한 
적어도 6명의 다른 순교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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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퀼리나(Aquilina) 
 
축일 6월 13일  
 
성녀 아퀼리나는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해안지대의 고대 지명)의 비블로스(Byblos)에서
태어났으며 태중 교우로서 에우탈리우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총독 볼루티아누스 앞에 끌려갔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2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성녀 아퀼리나가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자, 온갖 감언이설과 위협을 
가하여 설득하려 하였으나 끝내는 실패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모진 매를 맞고 참수치명을 하였다. 
그런데 그리스의 어느 전설에 따르면, 빨갛게 달군 
쇠꼬챙이로 그녀의 귀를 찔렀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참수당할 때 피 대신에 우유 같은 
흰 액체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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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Anthony) 
 
축일 6월 13일  
안토니오는 희랍어로 '대면하다'란 뜻이다.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기사의 아들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121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220년 1월 16일 모르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 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 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르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
(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코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타리파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운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
(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46년에는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 교회의 전설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정도로 높이
평가해왔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
라고 하였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이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를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팔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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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라르도(Gerard) 
 
축일 6월 13일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동생인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형이 
시토회에 들어갔을 때에는 군인이었다. 
그는 그랑시의 포위 공격에서 부상한 채로 
포로생활을 하다가 석방되면서부터 형을 따라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성 베르나르두스를 따라 
클레르보로 가서 그곳의 관리를 맡는 한편 
베르나르두스의 오른팔 역할을 하였다. 
그는 특히 열성과 성덕으로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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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 반델리(Stephen bandelli)

축일 : 6월 13일

성 스테파노 반델리는 북부 이탈리아 출신으로서 
피아첸짜에 있는 도미니꼬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신심과 순종은 많은 회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빠비아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 및 
교수직을 임명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특히 빛을 발한 곳은 학생들과 
고해소였다. 그는 주로 리구리아 전역을 
다니면서 설교했는데, 가는 곳마다 대군중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회개자들이 개과천선하였던 
것이다. 그는 토리노 교구의 살푸쪼에서 
81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는데, 그의 사후 
37년 되던 해, 살푸쪼가 외세의 침략으로 
전운이 감돌 때, 하늘에서 이상한 형체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시민들은 이 기이한 형상이 곧 성모 마리아와 
성 스테파노임을 알고 즉시 경배하여 
도시의 파괴를 모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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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피리디온(Spiridion)

성 트리필리오(Triphyllius) 
 
축일 6월 13일  

4세기의 키프로스(Cyprus) 교회에는 
성 스피리디온(Spiridion)과 성 트리필리우스
(또는 트리필리오)가 가장 유명하다. 
성 스피리디온은 원래 목동이었고, 
성 트리필리우스는 법률가를 지망하여 시리아의 
베이루트(Beirut)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트리필리우스는 나이가 많은 스피리디온의 
매력에 이끌려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들은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꼭 격퇴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347년의 세르디카 공의회에 참석했다. 

확실한 연대는 모르지만 트리필리우스는 니코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박식하던 그는 곧 능력 있는 
설교가이자 뛰어난 저술가로 교계에 등장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도 그의 높은 성서 지식을
찬미하였을 정도이다. 이 착한 목자는 또 아름다운 
시를 썼으며 자기 스승인 성 스피리디온의 기적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의 유해는 니코시아의 호디기트리아(Hodigitria)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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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판딜라(Fandilas) 
 
축일 6월 13일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에서 태어난 
성 판딜라 신부는 코르도바(Curdoba) 근처 
페냐멜라리아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어족의 족장에 의해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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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레그리노(Peregrine) 
 
축일 6월 13일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이탈리아 남동부 라퀼라의 주교였다. 
그는 아리우스파의 롬바르드족에게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구하다가 그들에 의해 아테르노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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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펠리쿨라(Felicula) 

성녀 베드로닐라(Petronilla)
 
축일 6월 13일  
 
성녀 펠리쿨라는 성녀 베드로닐라(Petronilla)와 
인연이 깊다. 두 분의 순교자들은 1세기 말경에 
로마에서 살았고 함께 고난을 받았다. 
성녀 베드로닐라가 먼저 순교한 뒤에 박해자인 
플라쿠스 백작은 펠리쿨라에게 자신과 결혼을 하든지 
아니면 이교도의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명하였다. 그녀가 이를 모두 
거부하자 7일 동안 음식과 물을 주지 않고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의 아사 
직전에 이르렀다. 형리들은 그녀를 끌어내어 고문대 
위에 눕히고 수차례나 고문을 가하다가 목숨이 
끊어지자 하수도에 내다버렸다. 
성 니코메데(Nicomedes)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아르데아티나 가도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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