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4일 오늘의 성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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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
성 펠릭스(Felix)
성녀 디냐(Digna)
축일 6월 14일
성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는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에 있는 성 아키스클루스(Acisclus)
성당의 부제였다.
그는 후에 근처 타바노스(Tabanos)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성 펠릭스(Felix)는 알칼라(Alcala)에서 베르베르
(Berber, 북아프리카 원주민의 한 종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서
서원을 한 후 성 아나스타시우스와 같은 수도원으로
옮겼다. 성녀 디냐 역시 같은 수도회의 수녀였다.
이들 세 명은 코르도바 최초의 순교자들로서
칼리프의 명령에 의해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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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레리우스(Valerius)
성 루피노(Rufinus)
축일 6월 14일
발레리오는 라틴어로 '강한'이란 뜻이다.
루피노는 '노란색'이란 뜻이다.
성 발레리우스(Valerius)와 루피누스(또는 루피노)는
로마(Rome)에서 파견되어 프랑스 지방을 선교하기
위한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수아송(Soissons) 지방에서
선교하던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일단의 주요 인물 중의 지도자였으므로
가까운 숲 속의 어느 동굴에 숨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수색대가 도착하여 체포되었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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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르도(Richard)
축일 6월 14일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늘 사용하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베르됭(Verdun)의 생반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기 전에는 랭스(Reims)의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리카르두스는 클뤼니(Cluny)의 성 오딜로
(Odilo, 1월 1일)와 그에게 수도생활을 권유했던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황제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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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치아노(Marcian)
축일 6월 14일
시칠리아(Sicilia) 섬의 전설에 의하면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서방의 첫 번째 주교로서
시라쿠사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문서들을 보면 그가 3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그는 교황에 의해 3세기에 시칠리아 섬으로
파견되었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에 의해 탑에서 던져져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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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토디오(Methodius)
축일 6월 14일
시칠리아(Sicilia) 섬의 시라쿠사(Siracusa) 출신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고향에서
공부한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궁중 관리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을 인정한 황제 미카엘 2세가
강력히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년을 봉직한 그는 수도자가 되었고,
키오스(Chios) 섬에 수도원을 세웠으나 총대주교
니케포루스(Nicephorus)의 요청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성상과 성물 공경의 합법성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자 그의 선임자인 니케포루스(Nicephorus)와
테오필루스 황제는 그를 고문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7년 동안 옥살이 하는 동안 황제가 죽고 그의 아내인
성녀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가 섭정에 오르자
이번에는 정세가 일변하였다.
성녀 테오도라는 성상 공경을 반대한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 메토디우스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즉시 콘스탄티노플 시노드를
소집하고 성상에 관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칙령을 재확인함으로써, 이번에는 성 테오도루스
(Theodorus, 11월 11일)와의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종증으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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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annes),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
축일 6월 14일
성 요한(Joannes),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는
모두 젊은 관리들로서 그 당시 리투아니아를
통치하던 올지에르드 공작의 휘하에 있었다.
그들은 고향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교도들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그리스도교를 알고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새로 받아들인 이 신앙에 너무나 충실하였고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단식일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결국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 요한은 1342년 4월 14일에 교수형을
받았고, 성 안토니우스는 그 해 6월 14일에,
성 에우스타키우스는 12월 13일에 각각 처형되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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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테리오(Etherius)
축일 6월 14일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또는 에테리오)는
프랑스 비엔의 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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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사(Elisha)
축일 6월 14일
엘리세오(엘리사)는
'하느님은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
성 엘리사(Eliseus)는 엘리야(Elias)의 계승자로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라는 뜻이다.
엘리사는 대략 기원전 850-80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지야, 요람, 그리고 여호아스 재위 기간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구약성서에는 그에 관한 대목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신명기계 역사서인 열왕기 상하권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큰 단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엘리야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19장과 21장,
열왕기 하권 1-2장에, 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2-9장에 나타나며 그의 죽음 이야기가
13장 14-21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엘리사 개인에 관한 설화적인 이야기들과
사마리아의 역사적인 격동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아벨 므홀라 출신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1열왕 19,16-21).
열왕기에 등장하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적에 대한 것이다. 또 각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립된 이야기로 나타나며,
엘리사의 생애에서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일어났는지 등의 시간적인 연계성도
표현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다만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타나며 이 기적들은 특별하게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또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엘리사는 ‘예언자’라는 명칭과 함께 자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칭되었다.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들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엘리사가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엘리야와 함께 예언자로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엘리사는 야훼 신앙을 저버린 오므리 왕조를 거슬러
계속해서 투쟁을 하며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예후를 세우고,
다마스쿠스의 하자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후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엘리사의 사회적
역할의 장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바뀌어 나타나며,
그는 왕궁과 밀접히 연결되어 특별히 국방 부분에
많이 연계된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온전한 성실로 야훼 신앙을 지킨
하느님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가 행한 것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은
그의 확신 있는 행동의 능력을 보여 준다.
거칠고 단호한 몇 개의 설화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스라엘 역시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주 힘든 시기에 그를 휩싸고 있던
신념과 확신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명기계 역사 속에서 민간설화에서 기억하는 대로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초기 이스라엘에서 혼합주의
경신례의 위협을 거슬러 야훼 신앙을 고수하며
오로지 야훼만을 신봉하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엘리사는 죽었을 때도 살아 있을 때처럼
야훼의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묘사되었다.
신약에서도 구약의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던 엘리사가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낳게 한 이야기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이야기와 함께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명하였다(루가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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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카스토라 가브리엘리(Castora Gabrieli)
축일 6월 14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구비오(Gubbio)
태생인 카스토라 가브리엘리는 매우 아름답고
귀여운 여성으로 뭇사람의 사랑을 받는 귀족 가문의
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신분에 맞는 어느
법률학자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의 성격이 의외로
포악하였으므로 많은 세월을 눈물로 지내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인내로 참고 지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가정에서 늘 기도와 묵상으로
신심을 단련하였고, 가까운 곳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성인에 대한 묵상으로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그 후 남편이 죽자 카스토라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의
수도복을 입고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자신은
기도와 고독 가운데서 여생을 보내면서 평수도자의
삶을 아름답게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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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또는 퀸시아노)
축일 6월 14일
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또는 퀸시아노)는
프랑스의 확인되지 않는 어느 교구의 주교였다.
1970년 이전의 로마 순교록은 그를 프랑스 남부
로데즈(Rodez)의 주교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