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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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귀도(Guy)
축일 6월 16일
귀 또는 귀도(Guido)로 불리는 그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 일행이 1211년에
코르토나(Cortona)를 방문하였을 때, 그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제자로 삼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성인은 그에게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자마자 즉시 실천에 옮겼다.
그 다음날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가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의 높은 덕을 인정하고 또 높이
치하하였다. 그는 수많은 치유 기적을 하였고,
또 기근 때에는 빵을 많게 하였다고도 한다.
그는 60세 때에 성 프란치스코의 환시를 보았다.
그토록 그의 덕은 출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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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루트가르디스 또는 루갈다(Lutgardis)
축일 6월 16일
성녀 루트가르디스(또는 루갈다)는 1182년 네덜란드
브라반트(Brabant, 오늘날에는 벨기에의 주) 지방의
통그레(Tongres)에서 부유한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하기로 하였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자 파혼을 당하였다.
그래서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살의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생트롱(Saint Trond) 부근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검은 베네딕토 수도회
(Black Benedictine convent of Saint Catherine)로
보내졌다. 수도생활에 특별한 성소가 있지 않았지만,
지참금이 없다는 사실은 적당한 남편을 찾는
희망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옷과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좋아하던 아리따운
소녀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경험한 뒤 자신의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안 나타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처를 그녀에게 보여주시고 당신만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그녀는 즉시 예수님을 자신의 신랑으로 맞이했고
20살이 되는 해에 베네딕토회의 수녀가 되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많은 자매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열정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지기만 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현존은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면 육신의
눈으로 보듯이 예수님을 보았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주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일을 끝내자마자 다시 돌아올게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 후 12년 동안 다수의 환상을 경험하였고,
그 환상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다수의
성인들을 뵙게 되었다.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였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때엔 이마와 머리에서
피가 맺혀 흐르기도 했다.
성녀 카타리나 수도회의 수녀들이 그녀를
수녀원장으로 추대하고 싶었지만,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08년 그 수도회를 떠나
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곳을 찾아 브뤼셀(Brussel)
근처 에비에르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을 선호했을 법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해사제와 당시
성 카타리나 수도원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의 권고를 받아들여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훗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서
그녀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수녀원장직을 피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곳에서 오직 빵과 물로만 지내며 극기 생활을
하던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알비파 이단을 위한 보속으로 7년 동안 3번이나
대재를 지켰다. 또 그녀는 에비에르 수도원에서
30년을 살며 영적 슬기로움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치유와 예언의 은사를
주셨으며 성서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주입시켜
주셨다. 불완전한 프랑스어에도 불구하고 영적
지도에 있어서 크나큰 업적을 이뤘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특히 기도에 열중하였는데,
그녀의 기도는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중의 한 예가 동정심이 없던 한 수도원 원장이
죽자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그가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수도원장이 나타나 그녀의
기도 덕분으로 연옥의 고통을 크게 덜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자주 루트가르디스 성녀에게 발현하였는데,
예수님의 수난은 성녀의 수도 생활의 핵심이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35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어 생애의 마지막 11년을 맹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가시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떼어놓고자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하며 고통을 참아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나타나셔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그렇게 받은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죄인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을 영원히 마주 뵈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자신이 예언한대로
1246년 6월 16일 삼위일체 대축일 저녁기도가
끝나고 대축일 끝기도가 시작되려는 시간에 64세로
선종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일생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큰 징표를
남겨 주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음을
기뻐하며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웁니다”
(골로 1,24). 그녀는 12-13세기의 뛰어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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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벤노(Benno)
축일 6월 16일
성 벤노는 1066년에 마이센의 주교로 착좌하였으나,
하인리히 4세에게 반기를 든 어느 색슨 귀족과
한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1년 동안이나 투옥되었다.
또 그가 석방된 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Gregorius)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독일 성직자단에
의하여 주교직을 박탈당하였다. 이처럼 그는
격동기의 주교로서 많은 고통을 받으며 선교활동에
성공을 거둔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프레데릭 백작의 아들로서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나 성 베른와드 주교 밑에서 공부하고,
쾰른(Koln)의 성 안노에 의하여 마이센의 주교로
착좌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한 성격이었고,
성직자들에게 규율 엄수를 강요하였으며,
거룩한 삶의 표본을 보여준 거룩한 주교였다.
그는 또 성무일도에서 성가로 시편을 바치는 전례를
부활시켰고, 교회 예식에 성가를 도입하였다.
그의 시성은 1523년에 있었는데, 이 시성식이
마르틴 루터의 격렬한 성명을 발표케 하였으니, 소위
“마이센에서 일어난 새로운 우상과 묵은 악마를
반대하여”라는 성명이다. 50년 후 이곳은
프로테스탄트 도시가 됨으로써 성 벤노의 유해는
뮌헨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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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밀리아노(Similian)
축일 6월 16일
프랑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11월 17일) 주교는 낭트의 제3대
주교인 성 시밀리아누스(Similianus, 또는 시밀리아노)
주교의 거룩함에 대해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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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레오(Aureus)
성녀 유스티나(Justina)
축일 6월 16일
훈족의 침략 동안 독일 남서부 마인츠의 주교였던
성 아우레우스(또는 아우레오)는 그의 주교좌에서
쫓겨나 유배를 갔고, 이때 그의 누이인
성녀 유스티나(Justina)와 다른 신자들도 그를
뒤따랐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서 마인츠의 주교좌
성당에서 주교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중 성당
안에서 살해되었다. 성 아우레우스 주교는 교회
미술에서 훈족에 의해 제대 위에서 살해된 주교로서
그려진다. 그리고 때때로 함께 순교한
성녀 유스티나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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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렐리아노(Aurelian)
축일 6월 16일
546년에 아를의 주교좌에 착좌한 성 아우렐리아누스
(Aurelianus, 또는 아우렐리아노)는 교황 비길리우스
(Vigilius)로부터 팔리움을 받고 프랑스 지방의
교황 대사가 되었다. 그는 수도원들을 여러 곳에
세우고 귀중한 유물들을 보관하게 하였다.
또한 확고한 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교황께
서신을 보내곤 하였다. 그는 리옹(Lyon)에서
서거했는데, 그의 무덤이 1308년에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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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프란치스꼬 레지스(John Regis)
축일 : 6월 16일
요한 프란치스꼬 레지스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10여 년 동안만
선교사로 활동하였지만, 17세기의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활동 영역은
주로 오베르뉴와 랑그독에 한정되었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였다.
그는 몸으로 그들과 함께 살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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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퀴리쿠스(Quiricus)
성녀 율리타(Julitta)
축일 6월 16일
성 퀴리쿠스(Quiricus)의 어머니 성녀 율리타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타르수스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퀴리쿠스는 불과 3살 된
어린아이였다. 총독 알렉산데르(Alexander)가
그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놓고 달랬지만
그는 발버둥 치며 총독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화가 치민 총독은 이 어린이마저 죽이려 하였다.
얼마 후 이 소식을 듣게 된 율리타는 기쁨에
넘쳐 순교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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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콘(Tychon)
축일 6월 16일
아마투스(키프로스의 리마솔 지방)의 초대 주교로
간주되는 성 티콘은 이 섬의 포도 경작자들의
수호성인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빵 굽는 사람의 아들이던 그는 빵을 팔아
오라고 하면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다 주곤
했으므로 부친의 노여움이 대단했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이 창고를 열어보니 그 속에
온갖 물품이 가득하여 자식을 달리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주교가 된 뒤에도 이런 사랑은 끊이질 않았다.
그는 조그마한 포도원을 손수 가꾸었는데 한번은
어느 농부의 포도원에서 모든 묘목이 다 죽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는 이 가련한 농부를 측은히 여겨
기도와 단식을 하여 그 포도나무가 크게 하였음은 물론
어느 해보다도 열매가 풍성했고 또 맛도 좋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의 축일은 포도 수확기가
시작되는 6월 16일이다. 키프로스(Cyprus) 전역에서
이 축일을 굉장한 축제로 거행하며 성 티콘의
큰 사랑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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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레올로(Ferreolus)
성 페루티오(Ferrutio)
축일 6월 16일
프랑스 리옹(Lyon)의 주교 성 이레네우스
(Irenaeus, 6월 28일)는 성 페레올루스
(또는 페레올로)를사제로, 성 페루티오(Ferrutio)를
부제로 서품하고 브장송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원래 그리스 사람이지만
소아시아 지방에서 태어나고 수학하였다.
약 30년 동안의 선교활동은 성공적이었으나
212년경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카라칼라(Caracalla)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변을 당한 듯하다.
370년에 브장송에서 발견된 이들의 유해는
아니아누스(Anianus) 주교에 의하여 잘 모셔졌고,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시대에
와서 큰 공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