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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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우덴시오(Gaudentius)
성 쿨마티우스(Culmatius)
축일 6월 19일
성 가우덴티우스(또는 가우덴시오) 주교와
그의 부제인 성 쿨마티우스(Culmatius)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Arezzo)에서
순교하였다. 이 때 안드레아(Andreas)라 불리는
평신도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른 동료
신자 등 모두 5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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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오다토(Deodatus)
축일 6월 19일
고향에서는 디에(Die) 혹은 디디에르(Didier)로
알려져 있는 성 데오다투스(또는 데오다토)는
프랑스 전역에서 널리 공경을 받는 성인이지만
기록상으로는 전무한 상태이다.
그는 655년경에 느베르의 주교가 되었고,
657년에는 성 아만두스(Amandus)와
성 엘리기우스(Eligius), 성 우앙(Ouen),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그리고 성 파로(Faro)와
함께 상스 시노드(Synod of Sens)에 참석하였다.
7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그는 스스로 사임하고
보주(Vosges)로 가서 고적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불확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여러 명의 성인들과 유대를
맺었고, 그의 성덕은 매우 빛났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성화를 이기다 못해 이곳을 떠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갔으며, 여기서 이미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은수자들과 합류하였다.
성 데오다투스는 곧 그들의 지도자로 뽑혔고,
국왕 킬데릭의 도움으로 성당을 짓기도 하였다.
이 공동체가 점점 커지자 이곳은 에벨샴 수도원이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다.
자신의 관상생활과 현실적인 직무에 조화를 기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그는 또 그곳을 떠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의 생디에(Saint-Die)에 정착하자
곧 제자들이 몰려들어 또 다시 수도원을 세워야만
했다. 이때의 규칙은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것을 채택했다.
그는 성인이 되신 히둘푸스(Hidulphus)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서로 방문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등
두 성인의 일치를 심화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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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무알도(Romuald)
축일 6월 19일
로무알도는 '영광과 권세'란 뜻이다.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오스티네 귀족 출신인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또는 로무알도)는
부친의 살인 사건 때문에 클라세의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가, 20여세 때에 그곳의
수도자로 변신하였다. 그 후 그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하려고 수도원을 떠나 베네치아(Venezia)
교외에 살던 마리누스(Marinus)라 부르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었다. 978년경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
베드로 오르세올로는 마리누스와 로무알두스를
쿡사로 데리고 와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게 하자,
이들은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그는 부친이 회개하여 수도자가 되었음을 알고
부친을 만나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갔으며,
이때 오토 3세 황제는 그를 산 아폴리나레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2년 뒤에
사임하고는 페레움 교외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 헝가리의 마자르인(Magyars)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다가 강제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고령에 따른 질병으로 인하여 운명하고 말았다.
그가 세운 다섯 개의 은둔소들 가운데 카마돌리에
세운 곳은 후일 카말돌리회의 모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1027년 6월 19일 파비아노 교외의
발 디 카스트로(Val di Castro)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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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니파시오(Boniface)
축일 6월 19일
보니파시오는 라틴어로 '선행 실천'이란 뜻이다.
색슨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보니파티우스
(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독일의
켈푸르트에서 태어나 브루노(Brun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서 공부하여
오토 3세의 궁중으로 들어가 궁중 사제가 되었으며,
998년에는 황제의 수행원으로서 로마(Rome)로 갔다.
여기서 그는 카말돌리 수도자가 되었으며,
이때 그의 이름을 보니파티우스로 정하였다.
다음 해에 그는 오토가 세운 페레움 수도원에 갔는데,
그곳의 두 수도자인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요한(Joannes) 그리고 3명의 동료들이 1003년에
순교하자, 그는 독일 선교 길에 올랐다.
후일 그는 선교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마가르족들에게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키예프(Kiev)까지 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프러시아인들을 복음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수행하다가, 18명의 동료들과 함께
폴란드의 브라운스베르그 근교에서 러시아인들로부터
학살당하였다. 그는 '켈푸르트의 브루노(Bruno)'
또는 '프러시아 제2의 사도'라고 흔히 불리며,
6월 19일과 10월 15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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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도(Odo)
축일 6월 19일
오도는 독일의 많은 황제들의 명칭으로
'유산'이란 뜻이다.
오도는 프랑스 오를레앙(Orleans) 출신이다.
그는 젊어서 트로이 전쟁에 대한 시를 썼는데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툴(Toul)의 대성당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육 업무에 종사함으로써 그의 탁월한 능력을
평가받아 인근 마을뿐만 아니라
노르망디(Normandie)에서 이탈리아까지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보에티우스(Boethius)의
추종자이며 실존철학을 신봉하던 그는
릴(Lille)의 렝베르가 가르친 유명론(唯名論)을
반박하는데 성공하여 더욱 인기가 높았다.
세속 학문에 심취해 있던 그는 신학이나 교부들의
저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으나,
그가 투르네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보에티우스
강의를 하던 중에 최초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의 저서 중에서 자유 의지에 관한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그는
지난날의 모든 학문적 업적을 팽개치고 갑자기
그리고 완전히 개종하였다.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에
장시간 동안 성당에서 지내면서 스스로 고행을
실시하였다. 그 후 그는 친구의 권고를 받고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가 1105년에 캉브레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헨리 4세와의 문제
때문에 추방령을 받았을 때에는 친구이던
에메리쿠스(Emericus)와 더불어 안친에 은둔소를
만들고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주로 원죄와
재림에 관한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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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우르시치노(Ursicinus)
축일 6월 19일
성 우르시키누스(또는 우르시치노)는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은 그의 순교 행전에 의하면
이탈리아 라벤나의 의사였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성 비탈리스(Vitalis)에 의해
다시 용기를 내어 순교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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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Juliana Falconeria)
축일 6월 19일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는 성모의 종
수도회 설립자 중 한 명인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
(Alexius Falconieri)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피렌체에서
안눈시아타로 불릴 정도로 교회 일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그녀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15세 때
성모의 종 수녀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자기 집에서
재속 수도자로서 기도와 자선활동을 하며 살았는데,
1304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34세의 율리아나는
기도와 자선활동에 헌신할 수 있는 일단의
부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성모의 종 수녀회와 비슷한 복장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망토 수녀회’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수도회가 정식으로 승인을
받은 것은 120년 후의 일이다.
그녀는 71세의 일기로 선종하였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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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 또는 제르바시오)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축일 6월 19일
제르바시오는 '강하게 던짐'이란 뜻이다.
프로타시오는 '첫째'란 뜻이다.
386년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명에 따라
밀라노에서는 순교자들의 무덤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때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
또는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의
무덤도 발견되었다.
순교자인 아버지 성 비탈리스(Vitalis, 4월 28일)와
어머니 성녀 발레리아(Valeria, 4월 28일)의
쌍둥이 아들로 밝혀진 이 두 형제는 신앙 때문에
어린 나이에 태형을 받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게르바시우스는 납이 매달린 채찍으로 맞아
죽었고, 성 프로타시우스는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이들은 밀라노의 첫 순교자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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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시모(Zosimus)
축일 6월 19일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 때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
스폴레토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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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우드하우스(Thomas Woodhouse)
축일 6월 19일
엘리사벳 여왕 치하의 두 번째 순교 사제가 곧
토마스 우드하우스이다.
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중동부 링컨셔
(Lincolnshire)의 어느 작은 본당 주임사제로
봉직하던 중 1561년에 체포되었다.
그는 그 후 12년 동안이나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성무일도를 비롯하여 미사를 봉헌했던
뛰어난 성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옥중에 있는
다른 죄수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고, 1572년경에 서신을 통하여 예수회에
가입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는 길드홀(Guildhall)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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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리제로(calogerrus)
축일 : 6월 19일
성인은 침묵을 좋아하는 은수자였다.
그는 시실리아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에울리에 섬에 자리한 동굴에서
백년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마귀들린 사람들을 위해 성인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