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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축일

[스크랩] 6월 21일 축일 맞으신 성인

작성자김영철 베드로|작성시간26.06.21|조회수3 목록 댓글 0

 

♡6월 2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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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메트리아(Demetria) 
 
축일 6월 21일  
 
5세기 때 로마(Rome)에 성녀 비비아나
(Bibiana, 12월 2일)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콰팡당트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지사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12월 22일)의 딸이었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죽은 뒤에 그의 아내 성녀 다프로사도
참수를 당했고, 그들의 딸인 성녀 비비아나와 동생 
성녀 데메트리아 역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다시 
체포되었다. 성녀 데메트리아는 이때 바로 죽었고, 
성녀 비비아나는 후에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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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자로(Lazarus) 
 
축일 6월 21일  

라자로는 '하느님은 나의 구원자'란 뜻이다.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루가 복음 16장 19-31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졌는데, 
대개는 라자레토(병원), 라자로네(걸인) 그리고 
성 라자로 수도회(나환자를 돌보는 수도회) 등의 
명칭이 그에게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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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랄프(Ralph) 
 
축일 6월 21일  
 
라울(Raoul) 또는 라둘프(Radulf)로도 불리는 
성 랄프는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Cahors)의 
라울 백작의 아들로서, 솔리냑(Solignac)의 
베르트란드(Bertrand)로부터 교육을 받고 
여러 수도원의 원장들을 도왔다. 
그러나 수도자가 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던 중 840년에 부르주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845년의 모 시노드(Synod of Meaux)를 비롯하여 
수차례나 시노드를 개최하여 교회와 수도회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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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우프리도(Leufried) 
 
축일 6월 21일  
 
성 레우프리두스(Leufridus, 또는 레우프리도)는
프랑스의 에브뢰(Evreux)에서 태어나 그곳의 
성 타우리노 성당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잠시 고향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자기 부정의 생활을 시도하였다. 어느 날 밤에 그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입고서 
카일리 수도원으로 갔다. 그 후 그는 
루앙(Rouen)으로 가서 성 시도니우스(Sidonius)의 
지도를 받으며 은수생활을 하였는데, 루앙(Rouen)의 
대주교인 성 안스베르투스(Ansbertus)는 그를 
위대한 인물로 간주하여 크게 존경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성 십자가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이 지금의 라 크로와-생-뢰프로이다. 
뢰프로이(Leufroy)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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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피노(Rufinus) 

성녀 마르티아(Martia)
 
축일 6월 21일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와 성녀 마르티아(Martia)는
교회에 대한 초기 박해 중 시칠리아(Sicilia) 섬 
시라쿠사(Siracus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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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Martin) 
 
축일 6월 21일  
 
성 마르티누스(또는 마르티노)는 
통그레(오늘날 벨기에의 림부르흐, Limburg)의 
제7대 주교로서 브라반트(Brabant) 지역 
헤스바예(Hesbaye) 사람들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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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엥(Meen) 
 
축일 6월 21일  
 
메엥, 마인, 메완 혹은 메벤누스(Mevennus)로 알려진 
성 메엥은 각종 피부질환의 치유자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는 주로 성인께 봉헌한 우물이나 
개울물로 치유했으나, 특히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Bretagne)의 가엘에 있던 자기 수도원과 이웃한 샘물로
치유하였다. 그 당시에 5천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는데,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브르타뉴 상부에 있는 체꽃류의 식물들은 
성 마인의 풀이라고 부른다. 

그는 원래 남 웨일스(Wales)의 그웬트 태생으로 
성 삼손(Sampson)과 관련이 있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가엘에 수도원을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대자 가운데 성 아우스텔(Austell)이 있으며, 
브르타뉴의 여러 지방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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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축일 6월 21일  
 
성 키리아쿠스(Cyriacus)와 성 아폴리나리스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초기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의 순교 행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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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축일 6월 21일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
(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
(Pierfrancesco del Turco)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
(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
(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e)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벨라르미누스
(R.F.R. Bellarminus, 1542-1621)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
(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시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
(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
(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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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바노(Alban) 

성 우르수스(Ursus)

축일 6월 21일  
알비노는 "하얀 또는 깨끗한"이란 뜻이다.
 
성 알바누스(Albanus, 또는 알바노)는 그리스인 
사제로서 성 우르수스(Ursus)와 함께 그리스 남부
낙소스 섬에서 이탈리아 밀라노(Milano)로 여행을 
하였는데, 이때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아리우스파(Arianism)와 격렬한 싸움을 하던 때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두 사람을 환대하고 정통교회 
수호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알프스 건너편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그들은 쾌히 승낙하였으나 성 우르수스는 
발레다오스타(Valle d'Aosta)에서 순교하고, 
알바누스는 마인츠로 가서 이단들을 상대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후눔에서 아리우스파의 자객들에 의해 
목이 잘려 숨졌다. 마인츠 시민들은 성 알바누스를 
위하여 성당을 세웠고, 그의 유해가 처음 묻혔던 곳의 
지명을 알반스베르그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그는 알비누스(Albinus) 또는 알반(Alba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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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세비오(Eusebius) 
 
축일 6월 21일  
에우세비오는 '경건한, 신심 깊은'이란 뜻이다.

정통 교리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사모사타의 주교이던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61년의 
안티오키아 시노드(Synod of Antiochia)에 참석하여 
멜레티우스(Meletius)를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멜레티우스가 선출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멜레티우스가 정통파임이 명백해지자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는 에우세비우스에게 
시노드(Synod)의 선거권 행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였다.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오른손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끝내 그가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용기에 크게 감동하여 그를 석방하였다. 

그 후 에우세비우스는 약 2년 동안 정통파(가톨릭)와 
아리우스파간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372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교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를
선출하는데 큰 몫을 하였고,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에우세비우스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발렌스 황제에게 
항거하라고 격려하다가 마침내 374년 황제에 의하여 
트라스로 유배를 갔다. 378년 발렌스 황제가 죽자 
그는 사모사타로 돌아왔고, 다음 해에 돌리카에서 
운명하여 풍운아의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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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엔젤문도(Engelmund) 
 
축일 6월 21일  
 
성 엔겔문두스(Engelmundus, 또는 엔젤문도)는 
영국 사람으로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의 성덕과 학덕으로 인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생활하고 있던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었으나, 선교사에 대한 열망을 이기지 못하여 
사임하고 북 네덜란드와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 후에는 벨젠에 근거지를 두고 시민들에게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성인 또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나 그 도시에서 유행하던 
열병에 걸려 거룩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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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릭비(John Rigby) 
 
축일 6월 21일  
 
성 요한 릭비(Joannes Rigby)는 영국 잉글랜드
(England) 랭커셔(Lancashire)의 명문가 출신이지만,
집안에서 일어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 때문에 많은 고민과 고통을 당하다가 클린크 
감옥에 갇힌 어느 사제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때부터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또한 그는 수명의 배교자들을 회개시키는 
활동을 하였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자기 부친도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여왕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가톨릭을 믿고 있음이 탄로나 뉴게이트(Newgate)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처형되는 날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처럼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의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
(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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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우르치세노(Urciscenus) 
 
축일 6월 21일  
 
성 우르키스케누스(또는 우르치세노)는 
183년부터 이탈리아 파비아 교구의 주교로서 
험난한 박해의 시대에 교구를 이끌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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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렌시오(Terence) 
 
축일 6월 21일  
 
이코니움(오늘날 터키의 코니아, Konya)의 주교인 
성 테렌티우스(Terentius, 또는 테렌시오)는 
교회의 초기 주교 중 한 명이다. 
일부 현대 학자나 성인전 작가들은 그를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6장 22절에서
언급한 필기자 '데르디오'(Tertius, 또는 테르티우스)와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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