咄咄怪事(돌돌괴사)
咄:꾸짖을 돌, 怪;기이할 괴, 事:일 사.
어의: 일이 이상하리만치 기괴하게 벌어져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뜻밖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진(晉)나라 때 은호(殷浩)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어 오부홍교(誤付洪喬)에 등장하는
홍교의 아들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성품이 호협(豪俠)하여 벼슬에 뜻이 없고 부귀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세설신어 문학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호(殷浩)에게 물었다.
“듣건대 꿈에 송장을 보면 벼슬을 하게 되고 똥을 보면 재물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가 있는 말인가?”
이 물음에 그는 즉시 대답하였다.
“벼슬 자체가 썩은 것이고 재물 자체가 분토(糞土)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의 대답이 묘하다면서 명통지론(名通之論)이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은호가 전혀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진무제 때 정서장군 유량의 막하에서 기실
참군(記室參軍) 등의 관직을 맡아보다가 10여 년 뒤에 은퇴한 일이 있다. 그리고 강제(康帝) 때는 양주자사로
있었고, 북정(北征) 이후에는 한때 중군장군이 되어 양주, 예주, 서주, 연주, 천주 등지의 군사들을 통솔한 적도
있었지만, 관직으로 말해도 그리 낮은 직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진왕조 내부가 몹시 어지러웠고 관료들 사이에 반목과 질투가 심한데다가 서로 화합보다는 자기
주장만 옳다고 큰소리치는 세상인지라 결국 은호는 파직당하고 동양군(東陽郡) 신안이라는 곳으로 쫓겨 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은호는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런 일 등에서 받은 자극이 너무 커서 마음을
크게 상했기 때문에 나중엔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다고 한다.
진서 은호전에 따르면 은호는 파직 당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평 한 마디 없었다고 한다.
집사람들도 누구하나 은호가 추방된 뒤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늘
손가락 하나를 들고 공중에 돌돌괴사 네 글자를 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은호의 입에서는
비록 불평이 나오지 않았으나 심중에는 많은 비분과 불평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