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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근 목사 칼럼

20061112 주일낮설교 - 눅 15:1-32 / 눅 15장의 세가지 비유

작성자민창근|작성시간06.11.17|조회수178 목록 댓글 0
20061112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눅 15:1-32 / 눅 15장의 세가지 비유

(01 모든 세리(稅吏)와 죄인(罪人)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0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怨望)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迎接)하고 음식(飮食)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0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譬喩)로 이르시되 0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0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0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0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悔改)하면 하늘에서는 회개 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0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0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悔改)하면 하나님의 사자 (使者)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財産)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虛浪放蕩)하여 그 재산(財産)을 허비(虛費)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凶年)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窮乏)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糧食)이 풍족(豊足)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相距)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惻隱)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風流)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健康)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命)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눅 15장의 세 가지 비유는 잃은 양 비유(3-7절), 잃은 드라크마 비유(8-10절), 잃은 아들(탕자)의 비유(11-32절)인데, 이 비유는 각각 잃어버린 것의 비율에 따라 1/100, 1/10, 1/2의 비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흐름으로 보면, 13,14장의 회개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 중에 결론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인데, 이 세 가지 비유는 회개에 대한 비유이면서, 구원에 대한 비유이다.
왜 예수님은 세 가지를 얘기하셨을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다. 잃은 양의 비유는 양치기가 잃은 양(죄인)을 찾아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양치기의 마음(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했고,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는 왜 드라크마(죄인)를 찾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표현했고, 잃은 아들에 관한 비유는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둘째 아들을 환영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잘 표현한 것이었다.
이미 지난주에 잃은 양의 비유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이 세 가지 비유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자.

1.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은 죄인을 상징한다.

1) 잃은 양 비유
양의 속성을 보면, 양은 사랑스럽고, 비공격적이며, 무방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는 보호와 관리를 필요로 한다.
마 10:6절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마 18:14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 눅15:4절의 '하나를 잃으면'이란 헬라어 단어는 '아폴뤼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파멸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죄인인 양이 길을 잃은 것은 주인의 보호와 관리의 잘못이 아니라, 죄인인 양 자신이 연약하고, 무지하며, 미련하여 방황하는 것을 말한다. → 죄인들은 무지, 미련하여 방황하며 파멸의 길을 간다.
다른 말씀들에는 잃어진 표현에 플라나오(planavw)란 말을 쓰는데, 이것도 '비난받아 마땅하기까지 (방황하여) 길을 잃는 것(to go astray in a culpable sense)(벧전 2:25). 즉 주인의 보호와 관리를 고의적 악의적으로 거부한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주인을, 말씀을 거부하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인의 관리와 보호를 거부하고 양이 떠나게 되면 양의 시력은 5미터밖에 안되기에 양은 쉽게 길을 잃고 위기에 처하거나, 맹수에게 잡혀먹게 된다.

- 죄인인 양은 주인인 하나님의 보호와 관리를 떠나 방황하며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버렸고, 사단의 먹이가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2) 잃은 드라크마 비유
(1) 여인이 잃어버린 동전 드라크마는 생명있는 양과 달리 생명이 없다.
여기 8절의 '하나를 잃으면'이란 헬라어 단어도 4절과 똑같이 '아폴뤼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파멸하다'라는 뜻이다. 이 동전도 연약하고, 무지하며, 미련하여 여인의 손에서 떨어져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말한다.
- 주인을 거부하고 나가 사단에게 생명을 빼앗기게 되는 양과 같이, 드라크마같은 죄인은 주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이 없어졌고, 생명이 없어졌기에 구원에 대해서 전적으로 무능력하다(엡 2:1, 골 2:13).

(2) 한 드라크마는 가치로 따지면 한 데나리온과 동일한 가치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그런데 열 드라크마는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결혼 기념 증표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사랑의 증표로 드라크마 열 개를 줄에 꿰어 주는데, 여인은 그것을 머리띠로서 남에게 보이도록 이마에 둘렀다. 따라서 여자가 드라크마 하나라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남편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이고, 사랑과 약속에 대한 중대한 위기를 말한다.

- 여자의 손(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한 드라크마는 하나님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무시하여 참 생명과 영원한 복을 잃어버렸다.

(3) 떨어진 한 드라크마의 위치는 원래 이마라는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 것인데, 떨어져서 방바닥에 뒹굴게 되었다.
팔레스틴 서민의 집의 방바닥은 대개가 진흙이나 돌로 되어 있고, 진흙이나 돌의 차가움과 습기를 막기 위해 짚을 바닥에 쌓아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크마를 떨어뜨리게 되면 짚을 걷고 자세히 살펴봐야 하고, 때로는 방바닥을 쓸기까지 해야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죄인은 그 영광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흙과 짚속에 뒤엉켜 초라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3) 잃은 아들의 비유
둘째 아들은 죄를 지었다. ①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음에도 자기에 돌아올 1/3의 유산(장자는 2/3 유산받음)을 미리 달라고 한 죄를 지었다. 상속은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할 때 하는 것이고, 그전에는 적당한 선물을 주는 것인데, 돌아가시기전에 달라고 하는 것은 문제이다. ②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헬, 쉬나고 / 거두어 들이고, 현금으로 바꿈) 먼 나라로 떠나감으로 아버지의 영향력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였다는 죄를 지었다. ③ 또한 그 귀한 재산을 허랑방탕하여(거친 삶을 사는 것/NIV) 다 허비한 죄를 지었다. ④ 둘째 아들은 아마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 그 재산가지고 무엇을 할려고 하는지 묻고 귀하게 사용하라는 형의 충고도 듣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⑤ 또한 허랑방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죄를 저질렀을 수 있다.
재산이 있을 때는 그 나라(세상 나라, 사탄의 나라)가 잘되는 듯이 보였다. 이 나라는 아들에게 어떤 이의 간섭도 받지 말고 맘껏 그의 인생을 즐기라고 한다. 방탕한 자유, 방임된 자유를 부축인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자마자 그 나라(사탄의 나라)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때를 기다린 듯이 큰 흉년이 들게 되었다. 방탕한 아들의 삶을 철저하게 망가지게 하고 코너로 몰아간다.
재산이 다 떨어진 둘째 아들은 더욱 비참하게 변하였다. 돈이 떨어지니 일자리를 찾아야했고, 그래서 찾은 일자리가 하필이면 돼지를 치는 일이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붙여 사니'(15절)는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과 죄악의 종이 되어 고통받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에게 돼지를 치거나 그 고기를 먹는 일은 너무나 욕된 일이었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이 비참한 일자리 외에는 그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지중해 연안의 구주 콩나무/ 8-30cm 크기 / 5-15개의 열매가 들어있음 - 기근 때 먹기도 함)로도 그 배를 채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의 생명은 이제 촌각을 다투게 되었다. 그의 삶은 마지막 코너에 몰려있게 되었다.
둘째 아들의 생명의 가치, 삶의 가치는 돼지보다도 못한 가치로 하락하였다. 그가 죽어도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 비슷한 이야기 : (예) 아브라함의 조카 롯 - 세상의 성공을 찾아 소돔으로 들어갔으나,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나오게 되지 않는가...
; 죄인은 아버지가 주신 귀한 인생과 달란트를 허비하며 그 생명의 가치를 돼지 보다 못한 가치로 하락하는 것이다.

→ 이렇듯 죄인은 하나님을 떠나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버렸고, 사단의 먹이가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생명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죄인이며, 사랑과 약속을 무시하여 참 생명과 영원한 복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그 영광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흙과 짚속에 뒤엉켜 초라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들의 위치에서 돼지보다 못한 가치로 전락되는 것이다.

찬양 - 주여 이죄인이(A) - 찬794
1.세상에서 방황할때 나주님을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죄인도 용서받을수있나요 벌레만도못한내가 용서받을수있나요

2. 잃은 양을 찾는 양치기, 드라크마를 찾는 여자, 탕자를 기쁘게 맞이하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말한다.

1) 잃은 양을 찾는 양치기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양치기는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닐 만큼 생명에 대한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양치기는 양이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을 찾아 계속 추적하고, 양의 울음소리를 찾는다. 양이 내는 공포(恐怖 - 무서움과 두려움)의 음성, 불안의 음성, 낙망의 음성, 외로움의 음성을 주의 깊게 듣고자 하며, 그 어려운 상황에 있는 양을 생각하며 악착같이, 끝까지 찾아간다.
찬양 -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또한 찾아갈 때 양치기는 이미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갖고 있다. 양을 구하려 하다가 사나운 짐승을 만날 수도 있고, 큰 계곡을 만날 수도 있다. 먼 거리를 가야할 수도 있다. 며칠을 찾아야할 수도 있다. 양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는 위험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치기는 그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양치기는 양을 찾아서 너무 즐거워(헬, 카이론 / 계속적 의미 - 영원한 기쁨) 어깨에 메고(친밀성), 집에 와서 친구와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며 잃은 양 찾은 것을 즐기자고 한다.
아마 양보다 잔치 값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양치기는 생명의 가치가 돈의 가치보다 더 귀하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힘을 들여서라도 잃어져 상처받고 죽어가는 양을 구해야 하며, 어떤 사랑을 들여서라도 양을 찾아야 하며, 어떤 돈을 들여서라도 찾은 그의 생명을 축하해야하는 것이다.

2)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자
드라크마를 잃은 여자도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드라크마는 중대한 사랑의 의미가 있기에 반드시 찾아야할 대상이며, 찾는 것을 뒤로 미뤄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리면 나머지 9개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는데, 부지런히 찾는 것이다. 부지런히(헬, 에피멜로스)는 '주의하여, 조심하여'라는 뜻으로 혹시 잃어버릴까봐 주의를 기울이며 찾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찾았을 때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잔치 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잔치하는 것보다 한 드라크마의 가치는 더 귀중한 것이다.

3) 잃은 아들을 찾는 아버지
탕자의 비유에는 탕자가 3명이 나온다. 멀리 나간 둘째 아들은 첫째 탕자요(외적탕자), 그 동생을 받아주지 못하는 첫째 아들은 둘째 탕자(내적 탕자), 아버지는 제3의 탕자이다.

인생의 코너에 몰려 돼지보다 못한 생명임을 깨닫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이렇게 망하게 되었는가....아버지에게로 돌아가자....아버지는 부유하며, "양식이 풍족한"(빵으로 둘러싸인) 품군이 얼마나 많은가....거기에 가서 품군으로라도 받아달라고 부탁하자."
- 그는 스스로 돌이키게 되었다. 회개이다. 자신의 교만과 허랑방탕의 삶을 뉘우치고, 이제 돌아가서 아버지의 판단과 처분에 온전히 나를 맡기겠다는 순종의 자세를 가지고 돌아온다.

"상거(相距)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惻隱)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 다 탕진하고, 부정한 짐승인 돼지와 접촉하고, 알아보기 힘든 비참한 꼴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① 아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늘 기다리며 시간을 탕진하였다(매일 기다리는 것이다). ② 측은히 여기었다. (헬, 스플랑크니조마이) 이 말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 상태이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와서 회개하며 용서해달라고 하기 전에 이미 아버지는 불쌍히 여기었다(용서행위가 회개행위보다 우선). 죄를 지은 아들을 거리가 먼데도 먼저 알아보고 달려나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단 한번의 인사가 아닌 많은 입맞춤) 그의 죄를 용서하는 사랑을 탕진하고 있다. ③ 제일 좋은 옷(문자적으로 '첫번째 겉옷'으로, 발까지 드리워지는 아름답고 위엄있게 보이는 옷으로 왕이나 부자들이 입는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자신의 권한을 아들에게 위임), 발에 신을 신김(자유인의 권리 회복)으로서 아들로서의 권위를 다시 세워주며,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여주면서 또 물질을 탕진하고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일지라도, 얼마만큼의 사랑이 든다 할지라도, 얼마만큼의 물질이 든다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소중한 아들로 여전히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고, 우리를 구하려는 큰사랑인 것이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또한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죄인)을 기쁘게 맞이하지 못하는 첫째 아들에 대해서도 좋게 설명하면서 두 아들을 모두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율법적으로 나누고, 죄인과 세리들은 함께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로 취급하였고, 자신들의 특권을 강조하였지만,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고,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과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말씀해주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로 알고 반응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2절)는 말씀은 첫째아들인 유대인들도 이 기쁨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라는 것이다.

(예) 감동적인 사랑 - 전에 티비에 소개된 이야기

자기 자녀가 없는 덴마크의 어느 중학교 교사가 한국의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 셋을 데려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키우라고 명령 하셨으니 나는 순종할 뿐이다.'라고 다짐하면서 자신의 친자녀처럼 키웠습니다.
그 중의 한 어린이는 강원도의 어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잠시 출타한 틈에 혼자 기어다니며 놀다가 구공탄 불이 피어 있는 화덕에 굴러 떨어져 얼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아이를 업고 나가면 모두 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저 아이의 얼굴을 꿈에 보면 어떡하나?'할 정도로 모두다 피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어린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내버리다시피 홀트아동복지회에 보냈습니다.
이 어린아이를 덴마크의 어느 중학교 교사가 데려다가 세 번 성형수술을 해주고, 그 흉악한 얼굴에 입을 맞추며 학교에 보내어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어머니와 동네사람들은 첫째 아들 같고, 덴마크의 중학교 교사는 아버지 같고....

⇒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 큰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십시다.
하나님이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기억하고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기를 힘쓰자.
믿음으로 먼저된 우리는 믿음으로 나중되는 이들을 기쁨으로 맞아주며, 사랑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주여 이죄인이(A) - 찬794
A D A B E7 A D A E7 A
1.세상에서 방황할때 나주님을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죄를 저질렀네
E7 A D B E7 A A7 D A E7 A
예수여 이죄인도 용서받을수있나요 벌레만도못한내가 용서받을수있나요
2.많은사람 찾아와서 나의친구가되어도 병든몸과 상한마음 위로받지못했다오
예수여 이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의지할것 없는이몸 위로받기 원합니다
3.이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들으셨네 못자국난 사랑의손 나를어루 만지셨네
내주여 이죄인이 다시눈물흘립니다 오내주여 나이제는 아무걱정없습니다
4.내모든죄 무거운짐 이젠모두 다벗었네 우리주님예수께서 나와함께계신다오
내주여이죄인이 무한 감사합니다 나의몸과 영혼까지 주를위해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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