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잇몸이 아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선교지에서 몸이 아프게 되면
더욱 더 불안해진다 소금으로 양치질을 해 보고 잇몸 약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치과를 이리 저리 알아보고 중국인이 진료하는 가정집 치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으라고 해서 엑스레이만 찍는 병원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다음날 다시 치과를 찾아갔다. 얼굴 형태가 다 나오는 엑스레이…….
의사는 잇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고, 진통제와 가그린 만 처방 해주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자는 것도 힘들고 음식을 잘게 부수는 것도 힘들어 밥도 천천히 먹어야 했다. 체중도 줄어들었다.
“ 하나님?”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신 것처럼 제가 잠들 때도 아픈 잇몸을 치료해주세요” 밤마다 잠이 들기 전 기도를 했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니 낮에는 일이 더 많아져 밤이 되면 잇몸이 더 아팠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마다 턱에 힘이 들어 가다보니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던 중 자카르타 치과를 다녀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을 봐 줄 사람이 없어 함께 다녀와야 했는데 오랜만의 외출이라 아이들은 너무 좋아 싱글벙글 마음이 부풀어있었다. 사실 자카르타를 간다 해도 구경을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닌데, 교회의 선교관에만 머물러 있다가 오는데도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
치과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찍어 보시고 이빨 뿌리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며 적어도 3주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선교관과 2시간 거리에 치과가 있고 차가 막히면 왕복 3시간을 잡아야 하고 길도 모르기에 택시를 타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선교관에 민폐를 끼치니 더 죄송한 마음이다. 돌아가서 해야 할 사역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치과 선생님이 주신 진통제 항생제만 들고 돌아와야 했는데…….
6월말이 되면 4년째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조금 만 참으면 되는데 잇몸이 아프니 어떡해야 하나.
남들에게 민폐 끼치길 싫어하는 우리,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치료를 포기하고 폰티아낙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계속 잇몸은 아프고 양치질은 하루에 여섯 번씩에 가그린으로 하루에 세 번씩 세척했다.
6월 달까지 참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 어떻게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까?
분명 하나님은 못 하시는 게 없는 분이심을 믿는다. 나를 치료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지금 당장은 아닌가?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왠지 전화를 하고 싶었다.
만약 한국을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기에 …….
모든 사정과 상황들을 이야기 하니 친구는 서슴없이 도와주겠다며 내가 나오길 더욱 원했다.
이튿날 밤 친구랑 다시 통화를 했는데 친구가 다니는 교회 집사님이 치과에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고 치과 원장님이 장로님이시고 의료 선교협의회 총무를 맡으시고 계신다며 이 번 구정에 인도네시아로 의료 선교를 오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로님이 어디로 의료선교를 다니실 지 알 수가 없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보루네오섬이기에 막연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보루네오 섬은 자카르타에서 국내 비행기로 바꿔 타고 들어 와야 하는 곳이다.
친구가 다시 장로님의 의료 선교 지역들은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그 날 저녁에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8시쯤, 한국 시간으론 10시, 친구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장로님의 의료 선교 지역을 물어보니 우연치 않게도 보루네오 섬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루네오 섬은 한국의 아홉 배나 되는 큰 섬이고 도시들도 많은 곳이기에 어떤 도시로 오시는지 …….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폰티아낙으로 오실까?
내심 궁금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선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신다.
나의 기도와 일치 되는 응답을 항상 보여주신 하나님 !
순 간 순 간 하나님의 귀와 눈과 그 분의 모습을 잊어버리며 내 생각 내 판단 되로 했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손 짓, 입으로 행하는 말들을 다 보시고 작은 고통에도 외면치 않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느껴질 때 마다 부끄러운 내 모습이 드러나 마음속으로 숙연케 하신다.
그 사랑 때문에…….
친구가 다시 전화를 걸어 주었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 하느라 통화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애타는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친구가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애기 했다.
“연회야 장로님께서 가시는 곳이 바로 폰티아낙 이래! 네가 살고 있는 곳 맞지?”
설마 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선 이미 예스라고 응답하고 계셨다.
한국으로 나가기 전까지 이 아픔을 참을 수만 있다면 …….장로님께서 약품들을 가지고 오신다니 아픈 증상들을 상담하고 처방 해 주시는 약으로 6월까지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하나님께 간구 해 본다.
이 연회 선교사 글입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