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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옥천신문 게제된 『소꿉동무들과의 백두산 여행기』 (1)

작성자전대식|작성시간26.06.22|조회수38 목록 댓글 0

 

[기고] 소꿉동무들과의 백두산 여행기(1)

 

‘민족의 기상과 숨결이 살아있는 현장’
청산 고향친구들의 백두산·고구려 유적지 중국여행

  • 옥천신문인터넷 입력 2026.06.19 11:17 호수 1847 댓글 0

            ▼전대식(청산면 출향인)

소꿉동무친구들이 우리민족의 기상이 서린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5월16일부터 20일까지 4박5일간 함께한 16명은 청산면에서 중학교(청산중학교 22회) 시절을 함께 보냈다.

 

이들이 소속된 청경회(서울, 수도권), 청우회(대전, 옥천, 청주), 오이회(청산, 청성)는 고향 사랑하는 마음으로 40년 전 부터 향우회 모임을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를 해왔는데 이젠 해외로 발걸음을 옮겨 우리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되새겨보기로 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북파와 서파를 통해 이틀에 걸쳐 볼 수 있는 행운도 따랐다, 그러나 우리역사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고구려 광대토대왕의 묘가 잡초가 무성한 채 형체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곤 오열을 금치 못했다.

중국 대련~단동에서 통화~송강하~백두산~집안의 압록강을 오르내리면서는 강 건너 북한주민들에 손짓하며 통일을 염원했고 독립투사들의 얼이 서린 만주벌판 2천여km를 내달리며 또다시 민족의 수난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했다. ㈜세연투어가 주관하고 옥천신문이 후원한 소꿉동무들의 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소개 한다,

▲전국각지에 흩어진 옥천 고향친구들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고향의 발전과 민족의 화합을 기원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 해발 2천m이상 16개의 백두산 연봉들 상공엔 멋진 뭉개구름이 흘러가고 그 아래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심 373m 천지가 1m 두께로 꽁꽁 얼어있다.

새벽 4시 새벽별 보며 옥천고향서 출발,

청산면의용소방대장, 청산면민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오며 고향발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김석환(청산신협이사장) 친구가 인천국제공항 길잡이 역할을 맡았다. 친구는 혹시나 “충청도 산골서 인천공항까지 항공편을 놓치는 불상사가 생기면 어떡하나? 차라리 공항인근서 하루전날 와서 자고 출발하자” 는 주최 측의 배려에도 “어렵게 휴가를 내어가는데 사무실을 하루라도 덜 비워야하기 때문,” 이라며 사양했다.

새벽 4시 새벽별을 보고 청산을 출발한 충청권 일행은 사전예약한 인천공항리무진 편으로 오전10시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서울, 수도권 등지서 출발한 일행과 무사히 합류 했다. 

 

▲5월 16일이른새벽 고향을 출발해 각지에서 모인 옥천 고향친구들이 인천국제공항에 합류에 장도 무사히 다녀올것을 다짐하고 있다.
▲아열대나라 캄보디아서 국위 선양하는 장옥성(오른쪽, 한국해외기술공사 부사장)친구도 인천국제공항서 60년 만에 그리운 친구들과 재회했다.

 인천국제공항(ICN)은 2025년 세계 공항 순위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규모가 커서 친구들도 놀랐는데 비행기도 별로 없고 썰렁한 공항 분위기에 일행을 안내한 최중섭(73세, 세연투어) 이사는 이란전쟁으로 유류할증료가 크게 올라 항공편 취소가 잇달으며 여행사들이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출국장서 대기하는 동안 전춘수(대전 유천2동) 친구는 마음이 들떠 잠 못 이룬 친구들에게 준비해온 사탕봉지를 전하며 마사지로 피로를 풀어준다, 4년간 교육을 받아 마사지사 자격증도 있는 친구는 어르신을 위해 봉사도 하고 있는데 이번여행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듯하다, 특히 중국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일상적 대화내용을 적은 A4지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우정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실은 대한항공 KE873편은 이륙한지 한 시간만에 대련국제공항에 사뿐히 착륙했다.

독립투사들의 기백이 서린 만주벌판 1,000km 내달리며 비싼 고속도로비, 차량 없는 중국 고속도로

대련공항서 합류한 세연투어 왕정우(중국 심양) 과장은 3백여 명의 중국인 백두산 전문가이드 중 빨간 모자를 유일하게 쓰는 가이드 반장이라고 한다.  

왕 과장은 백두산은 물론 중국의 광대한 역사를 꽤 차고 있음에도 놀랐는데, 사회, 경제, 한, 중 문화에 얽힌 에피소드 까지 실감 있게 들려줬다.

교포 2세냐고 묻자 자신은 정통 한족인데 외할머니가 한국인(함경도)이어서 한국이 좋아 대학도 전남 광주(廣州)와 지역명이 같은 중국 광주(廣州)에서 나왔고 한국에는 80번을 오갈정도로 인연이 깊다고 했다,

출국 전 여행사 일정을 보니 대련~단동을 거쳐 백두산 가는 길 통화까지 788km 10시간거리를 어떻게 갈까 걱정이 많았는데 기우였다, 왕 과장의 입담으로 광활한 만주벌판을 횡단하면서도 독립투사들의 함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실감 있게 전해졌다. 

 

▲ 독립투사들의 얼이 서린 만주벌판을 달리며~ 일정을 이틀 앞당겨 백두산 여행에 행운을 안겨준 김석환, 안정무 친구  

대련서 단동~압록강을 거슬러 통화 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의외로 한산했다. 비싼 통행료로 때문이란다. 가끔씩 보이는 차량들은 중산층 이상이고 서민들은 유류비보다 비싼 통행료를 피해 국도를 달린다고 한다. 

오후 2시 대련을 출발한 고속버스는 자정 무렵 첫날 숙소인 통화시 오즈크라운 호텔에 도착했다. 시 외곽 산중에 있는 리조트는 의외로 깔끔하고 백두산 자락 숲속인지로 창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종일 여행객들의 심신을 풀어주었다. 여행 둘째 날인 17일, 오늘은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보는 날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 더욱 몸과 마음을 정화시켰다. 새벽이 밝아오고 날씨가 무척이나 쾌청하다, 

중국령에 있는 백두산은 창바이산으로 2024년 유네스코에 등재 됐지만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그것은 민족의 기상이 서린 대표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비록 북한 땅을 통해 가진 못해도 언젠가 평양을 거쳐 오를 수 있길 국민들은 소망한다.

이번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일정은 17일, 18일 두 번의 기회가 있다. 17일은 북파로 18일은 북한 측 접경지역인 남파로 오른다. 오늘 오르는 북파는 찝차를 이용 거의 정상까지 오르기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들 모두 오를 수 있다. 필자가 2008년 5월 18일 중국 동북쪽에 있는 동북삼성(길림성(吉林省),요녕성(辽宁省), 흑룡강성(黑龍江省)) 한 달여 취재를 마치고 백두산 올랐을 때는 엄청 추웠다. 산 아래는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다녔는데 천지정상에는 영하18도의 매서운 추위와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에 주막만한 돌덩어리들이 날아다녔다,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천지를 울리는 바람소리를 평생 잊지 못한다. 

새벽이 밝아오고 날씨가 쾌청하다, 가이드 왕 과장이 오전 7시 백두산 천문봉기상대에서 통보가 왔다고 한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아 통제가 되질 않는다고 한다. 

 

백두산 가는 길은 역시 멀고 험하다. 통화시에서도 3시간여 만에 도착한 3관문을 지나 다시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면서 인화물질 등 철저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인들이 아끼는 백두산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되어 자손만대 물려주어야 한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일행은 다시 찝차로 편승해 정상 가까이 도착했다. 휴게소와 화장실도 있는 이곳에서 천지까지는 불과 2백 미터 밖에 안 된다.

산 정상까지 굴을 뚫어 에스컬레이터 수백 개를 설치한 중국 장가게도 그렇지만 중국정부는 남녀노소 장애인 모든 관광객들이 찾아오도록 배려하고 있다. 여행사에서는 필자를 한국기자 출신이라고 백두산 가는 차량 맨 앞자리를 확보해주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숲길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유명한 홍송림 숲길과 자작나무 숲 광활한 수목군들이 마치 지상낙원에 들어선 듯 하다.

▲ 북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찝차를 이용 정상까지 올라 다리가 불편한 친구들도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천지가 가까이오자 갑자기 바람소리가 거세지더니 몸 전체가 들썩인다, 옆에 친구소리를 들을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 천지는 5월 중순인데도 눈에 뒤덮인 채 웅장한 멋을 품고 있다. 
장군봉(2천750m), 백운봉(2천691m), 천문봉(2천670m), 청석봉(2천682m), 차일봉(2천603m) 백두산 천지 주변엔 2천미터가 넘는 16개의 큰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병풍처럼 둘러 서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깊다는 백두산 천지(373m) 얼음두께는 평균 60cm~1m라니 한여름이 다가오는데도 꽁꽁 얼어 녹을 줄을 모른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들은 가슴을 펴고 깊은 호흡을 하곤 “이 민족에 통일을 내려주소서” 염원했다. 고개를 돌려 천지아래 광활한 만주벌판이 펼쳐진다. 만주벌판은 중국 최대평야지대이자 전 세계에서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둥베이 평원에 위치해 있는데 19세기 후반 만주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묻힌 곳이 기도하다. 

 

▲ 백두산 천지를 연이틀 본 옥천고향 친구들이 신이나 중국인들과 각설이 춤을 추고 있다.  

열심히 살아 온 친구들 덕에 두 번 연이어 천지를 만나다

 백두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지만 “천지는 정작 못보고 사람만 천지”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지일기는 변화무쌍하다, 16일 오후2시 우리일행이 백두산을 하산하면서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더니 다음날엔 태풍급의 강한 바람에 아예 입산통제가 되었다, 또 다음날에도 비가 쏟아져 오르지 못한 채 일정을 변경한 한국인 관광객들을 집안 고구려 유적지에서 만났다. 우리 일행도 예정대로라면 안개 자욱한 천지도 못보고 입산통제가 되어 입구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칠순에도 현역인 두 친구의 성실함으로 즉 휴일을 낀 일정으로 이틀 앞당겨 변경하는 바람에 연이어 두 번이나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소꿉친구들은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차안에서나 여행 내내 옛 고향의 추억을 되살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초등시절 가난으로 도시락도 못 챙긴 친구는 점심시간 수도가로 가서 물만 먹고 왔다는 가슴 아픈 얘기를 듣고 시대의 아픔을 끈기와 성실함으로 이겨낸 고향친구들에게 백두산 천지신령께서 큰 선물을 주셨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감성이 메마르기 전에 떠나라 하는데 인생에 연륜이 농익은 칠순 넘어 맞이한 백두산은 우리들 삶의 전환점도 이루었다. 백두산 하산 하는 길 고향발전위해 어쩔 수 없이 술자리가 많은 석환 친구는, 이제 부터 그 좋아하는 ‘술을 끊겠다’ 며 다짐해보이기도 했다. 또 안정무(대전 서구 가정동) 친구는 “나이를 늘려 15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혼 힘 다해 세 자녀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는데 정작 아내는 해외여행 한번 시켜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면서 “그동안 아내에게 미안해 여행 한 번 떠나지 못했는데 이제 아내 몫까지 남은 여생 행복하게 살련다” 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위대한 대자연은 내 인생길에 스승이요 나침판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 전대식은 충북 옥천 청산 출생, 1975년 한국경제신문 언론계 입문, 코리아 헤럴드, 평화신문 기자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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