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5) 크리스토프 쇤보른 (상)
「가톨릭교회 교리서」편집 이끈 최고 신학자이자 사목자
크리스토프 쇤보른(Christoph Maria Michael Hugo Damian Peter Adalbert Graf von Scho"nborn)은 누구인가? 20세기의 다른 위대한 신학자들에 비해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그는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이다. 바로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그의 손을 거쳐 최종 편집됐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에서 요청한 교리서를 편찬하기 위해 이듬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책임을 당시 신앙교리성장관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추기경에게 맡긴다. 교리서편찬위원회는 세계 각국의 주교와 전문가들과 협의해 작업을 진행했고, 마침내 1992년 교회의 신앙 진리를 제시하는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승인, 공포된다. 이어 1993년부터 다양한 제안 사항을 수렴하고 통합해 1997년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라틴어 표준판이 출간됐다. 이 교리서는 "가톨릭 교리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설명함으로써 교회가 일상생활에서 고백하고 거행하며 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라틴어 표준판 승인과 공포에 관한 교황교서 '큰 기쁨'). 쇤보른은 라칭거 추기경에게 교리서 편집인로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그의 신학과 사목과 영성이 교회 정신에 매우 부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생애와 사목활동
쇤보른은 1945년 1월 22일 보헤미아 리톰녜리체 서부 스칼겐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공직자와 가톨릭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무수히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그는 1963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해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보른하임과 빈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후 소르본대학교에서 동방 그리스도교를 연구했다. 1970년 12월 27일 빈에서 사제품을 받고,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의 요제프 라칭거 문하에서 신학을 심화 연구하고 파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스위스 프리부르대학교에서 교의신학과 동방그리스도교신학을 가르쳤다. 1980년 그는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이 됐고, 1987년 가톨릭교회 교리서 편집자로 위촉됐다. 1991년 빈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그는 1995년 교구장 주교가 됐다.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고,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가톨릭교육성, 교황청 문화평의회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현재 2011년 새로 설립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사목자와 신학자로서 가톨릭교회와 세계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쇤보른의 뛰어난 사목적 역량과 신학 활동, 영적 가르침에 매혹을 느낀 많은 이들은 최근 두 차례 교황 선거에서 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2005년 선거에서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의 쇤보른은 주요 교황 후보로 꼽혔고, 2013년 선거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업적을 효과적으로 계승하며 보편교회의 일치를 증진할 이로 그의 교황 즉위를 예상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라칭거는 신학 교수 시절 많은 신학자와 사목자를 배출했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룹을 형성해 매년 시의적절한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2013년의 토론 주제는 '세속화의 상황에서 하느님 물음'이었으며, 쇤보른은 이 그룹을 이끌어 가는 대표로서 현대 신학의 심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빈대교구장, 복잡한 사목 환경
빈대교구장이 된 후 그는 어렵고 복잡한 사목 환경에 처한다. 오스트리아교회는 극단적 전통주의자와 급진주의자들이 공존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가 교회다'(Wir sind Kirche) 운동이 이곳에서 출범했는데 현재 여성사제 허용과 결혼한 사제의 직무 복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쇤보른은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사제 발의'로 알려진 급진적 성직자 운동과 마주했다. 2005년 시작한 이 운동은 오스트리아 성직자 10% 이상이 참여, 여성도 사제직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사제 독신제는 개인의 자유에 맡기도록 하고, 이혼 후 재혼한 가톨릭인과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2011년 '사제 발의'는 교황청에 대한 '불순종 운동'을 전개했고, 쇤보른 추기경은 이들을 만나 대화하고 경청하면서도 그들의 주장 자체를 공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2년 9월 그는 "사제 독신제를 지지하며 사제직을 남성에게 국한한다"고 재확인하며, 사제서약에 위배되는 불순종 운동을 계속하는 이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쇤보른의 이러한 자세는 교황청에서는 환영받았지만 급진주의자들에게는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는 교황청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아끼지 않으며, 동시에 전통주의자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2009년 린츠교구 보좌주교로 게르하르트 바그너 몬시뇰이 임명됐는데, 그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동성애와 낙태에 대해 하느님이 내린 형벌이라고까지 발언하는 극단적 인물이었다. 그의 주교 임명은 교구 사제들이 반대하고 오스트리아 주교회의에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쇤보른은 긴급히 로마에 우려 의견을 표명했고 이후 바그너 몬시뇰은 스스로 사임했다. 쇤보른과 주교단은 이 사건에 대해 교황청의 일방적인 주교 임명을 비판하며 교회의 성사적 본질을 강조했다.
같은 해 교황청은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르페브르 추종 주교들의 파문을 철회했는데, 그중에는 나치의 유다인 학살을 부인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도 포함돼 있었다. 교황청 의도와는 달리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교회는 큰 충격을 받고 가톨릭 신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쇤보른 추기경은 교황청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신자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사목적 노력을 기울였다.
사제의 유아 성추행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름하던 때, 2010년 교황청 전임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공적 자리에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은 '쓸모없는 잡담'이라고 발언했다. 쇤보른은 그가 이 위기에 대해 아무런 이해나 감각도 없다고 몹시 질타했다. 후에 교황청은 소다노 추기경과 쇤보른을 함께 불러 모았고, 소다노는 그 사건에 대해 큰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도였다고 해명한다. 과거 교황청은 사제 추문에 대해 진상규명보다는 은닉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빈대교구도 유아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는데 쇤보른은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려 했지만, 교황청 국무원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현재 교황청은 '불관용' 원칙으로 그러한 사건에 대처하고 있다.
사목적 관심사
쇤보른의 주된 사목적 관심사는 교회의 세속화와 교회 구성원의 교회 이탈 문제다. 그는 "우리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사람들이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인식하고 수용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청년들이 교회를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전통주의자들 반대를 무릅쓰고 전례 중에 조명을 설치하고 풍선을 띄우고 록 음악을 허용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또 성 스테파노주교좌성당에서 월 1회 교리강좌를 실시한다.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직접 대중에게 전달해 하느님 신비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도록 초대하는 자리다. 2005~2006년에는 창조와 진화에 관한 강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진화 과학이론과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은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으로, 창조 신앙은 진화 과학을 습득하면서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는 2007년 「목적인가 우연인가? 성찰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조와 진화」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목적인가 우연인가? 성찰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조와 진화」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서 출발해 그리스도의 생애 신비를 다룬 2000년 대희년 강의도 활자화돼 중요한 영성서적으로 손꼽힌다(「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하기, 신앙을 심화하기 위한 자극」, 2002). 그밖에도 2008년 하느님 자비주간의 강연 역시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2011)라는 책으로 출간, 자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제공했다. 「행복한 생활」(2011)에서는 세상의 척도에 따른 행복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참 행복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책임편집인으로서 교리서를 주제별로 간략하고 명료하게 해설해 일반 신자들이 신앙 진리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해설」(김정우 옮김, 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3)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쇤보른은 청년들 사정에 귀 기울이며 청년을 위한 교리서도 편찬했다. 오스트리아 주교회의는 2011년 세계청년대회를 맞이해 「유캣」(YOUCAT, Youth Cath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교리서를 출간,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청년들의 문화와 정서에 알맞게 전달했는데, 쇤보른이 총책임자였다. 이 교리서는 교회의 주요 가르침을 친근한 방식으로 풀이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애독하고 있다.
빈대교구는 유럽의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사제와 신자들이 급감하는 추세다. 하지만 쇤보른은 여기에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초대교회 공동체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기존의 방대하고 비대한 교회 조직과 건물을 재편성해 본당을 통합ㆍ소규모화하며, 비어 있는 본당 건물은 평신도단체에 넘겨주고 가정과 직장이 신앙공동체가 돼 새로운 복음화에 이바지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빈대교구장이자 추기경으로서 쇤보른의 뛰어난 사목적 역량은 분명 자신의 영성과 신학에 바탕을 둔다. 그에게 사목과 영성과 신학은 통합적으로 작용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6) 크리스토프 쇤보른 (중)
하느님 나라로 순례하는 교회, 끊임없이 정화 · 쇄신돼야
쇤보른의 영성 강좌
하느님의 인간 창조, 그리고 교회
교황청은 해마다 재의 수요일 직후 일주일간 영성수련을 가진다. 당연히 영성과 사목과 신학에서 깊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 피정 지도자로 선정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추기경 시절 바오로 6세 교황 앞에서 피정을 인도했는데 이때 피정은 「반대받는 표적」으로 출판됐다.
쇤보른은 1996년 대주교 시절 피정 강사로 초빙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교황청 위원들 앞에서 교회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역시 책으로 나왔는데(「교회를 위한 삶, 교황님을 위한 사순절 피정 강의」)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책임편집인답게 교리서를 십분 인용하고 해설하며 강연했는데, 피정을 시작하는 첫 마디 역시 교리서 제1항이었다. "스스로 한없이 완전하고 복되신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호의로 계획을 세우시고, 자유로이 인간을 창조하시어 당신의 복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항).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전달하시기 위함이다. 인간 편에서 보자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부여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순종과 세상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십자가 죽음을 맞으셨고, 그리하여 십자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빛을 내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됐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창조됐듯 이제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생명과 사랑으로 교회가 탄생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생명을 받아 완성되도록 모든 이를 불러 모은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창조의 목적이 되고, 교회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질서 안에서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죄와 악에 대한 성찰을 꺼린다. 하느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악의 세력에 승리를 거두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 죄는 이미 용서받았고 세상 일은 모두 선으로 정향돼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말도 아니다. 죄는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사랑을 기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과 사랑의 일치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고 당신의 자유를 부여하셨다. 여기서 사랑은 강제나 억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유로이 사랑하고 자유로이 사랑받고 자유로이 응답할 때만 사랑이 실현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기에 인간의 자유를 끝까지 존중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하느님과 일치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거나 배척할 수도 있다. 인간의 위대한 자유의 능력이다.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서 연유한다. 죄는 이 자유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다. 그래서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40항)고 교리서는 말한다. 원죄를 의식하고 죄를 인식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구원이 필요하다고 절감하게 된다. 십자가 위에서 전달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마음 깊이 수용하며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며 인류와 세상을 섬기는 구원의 성사다. 쇤보른은 교회를 사랑하기를 촉구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불완전하고 죄로 얼룩져 있지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에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동시에 교회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사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화되고 쇄신돼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부활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듯,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고 일하고 고난받으며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간다. 우리는 교회의 품 안에서 사랑이 되어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하느님 사랑의 품 안으로 귀향할 교회의 사람이다.
사제의 해에 사제의 직분 되새기며
2009년 6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제의 해를 선포, 사제들이 내적 쇄신을 통해 현대세계에서 더욱 힘차고 분명하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격려했다. 이어 9월 프랑스 아르스에서 일주일간 국제 사제피정이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제 1000명 이상이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고장에서 사제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숙고했는데, 이때 피정을 인도한 이가 쇤보른이었다. 그의 피정 강연은 「사제로 존재하는 기쁨, 아르스 성자의 발자취를 따라서」로 활자화됐다. 아르스의 성자는 "사제직은 예수님 사랑의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바치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기원이 있다.
사실 초대교회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사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 당시 유다교와 로마 제국 종교의 사제는 권력자이자 재력가였는데, 예수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해석학적 전환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섬기시고자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셨다는 점에서 다른 사제들과 확연히 다른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히브 5,10)라고 호칭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은 다른 종교의 사제직과 달리 겸손과 사랑으로 낮추고 내어주고 섬기는 봉사직이다. 만일 그리스도교의 사제가 탐욕을 부리고 군림하려 든다면 스스로 제국 종교의 사제가 되려는 것이다.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꼬마 아이를 만나 길을 묻고는 말한다. "친구여, 네가 아르스로 가는 길을 내게 알려주었으니, 나는 하늘로 가는 길을 네게 알려주겠다."
사제는 예수님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하늘의 영원한 행복을 세상에 전달하는 행복의 봉사자다. 예수님은 자비로운 연민의 마음을 가지셨다. 병든 이들, 굶주린 이들, 가난한 이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용서하고 치유하고 일으켜 주며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셨다. 자비가 없는 세상은 자기 정당화만 작용하는 황량한 영적 사막일 뿐이다. 고해성사는 용서하며 다시 살아나게 하는 하느님 자비의 성사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을 때 우리 또한 이웃을 자비로이 용서할 수 있다. 고해성사 집전자인 사제 역시 먼저 고해성사를 겸손하고 성실하게 받아 주님의 은총을 경험해야 하느님 자비의 충실한 봉사자가 될 수 있다. 사제생활의 중심은 성체성사이다. 생명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만나는 미사성제는 기쁨과 생명의 원천이다. 그런데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미사가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쇤보른은 "우리는 과연 어떻게 미사를 준비합니까?"라고 물으면서 기도와 침묵,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식하며 미사성제를 정성스럽고 또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거행하도록 사제들을 격려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기쁨과 행복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창조 신앙, 진화 과학에 대하여
쇤보른은 2005년 7월 7일자 '뉴욕 타임스'지에 '자연 안에 깃든 계획 찾기'(Finding Design in Nature)라는 짧은 기고문을 게재한다. 무신론은 50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철학자들이 주창했는데, 이젠 유물론적 진화주의자의 신념과 주장이 됐다. 세상은 우연과 필연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생성하고 발전하며 그리스도교의 창조주 신앙은 종교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6년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총회에서 진화는 "가설 이상의 것"이라고 언급했고, 이에 대해 무신론을 표방하는 신-다윈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유물론적 진화주의를 수용 또는 인정했다고 여겼다. 쇤보른은 여기서 분명한 구분을 설정한다. 생명체와 우주 탄생, 발전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이와 달리 진화 원리에 입각해 처음부터 하느님을 배제하고 세상을 설명하는 진화론은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으로서 진화론은 가톨릭교회에서 존중하지만, 이데올로기로서 진화주의는 수용불가하다.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교황 즉위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우연하고 무의미한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생각에서 생겨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원하셨고 또 사랑하시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라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 과학을 존중하고 또 연구를 장려하고자 진화를 가설 이상의 것이라고 언급했고, 베네딕토 16세는 세상을 완성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강조하며 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인 진화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2005년 가을부터 쇤보른은 창조와 진화, 이성적인 신앙을 주제로 빈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1년간 교리교수를 진행한다. 그는 창조 신앙과 창조주의를 구분한다. 창조주의는 창세기 1장 창조 이야기를 근본주의적으로 이해해 이를 우주에 대한 역사 보고서로 전제하고, 6일간의 창조를 근거로 6000년의 지구 나이를 주장하기도 한다. 과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진화 과학을 배척하는 창조주의 과학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흔히 창조를 믿는지, 진화를 믿는지 하고 물을 때 말하는 창조가 창조주의의 내용이다.
가톨릭교회는 창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우습게 만드는 논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쟁은 이성과 상반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창조 신앙은 세상의 기원과 목적이 하느님께 있다고 고백하며, 세상에 깃든 하느님 생각과 섭리를 알아보고 우주 만물을 통해 창조주께 경배드린다. 진화 과학은 우주와 생명체의 진리를 더욱 깊이 알도록 하기에, 창조 신앙은 진화 과학의 도움을 받으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지혜롭고 오묘하게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식해 창조주를 믿는 신앙을 심화할 수 있다. 창조 신앙은 창조주의와 진화주의의 양 극단을 배제하며 진화 과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7) 크리스토프 쇤보른 (하)
그리스도, 인간 사고 넘어선 하느님의 새로움 알려주는 분
쇤보른의 그리스도론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신의 역작 「나자렛 예수」 제2권 머리말에서 가톨릭 신학의 중요한 그리스도론 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크리스토프 쇤보른을 언급한다. 쇤보른이 2002년 출간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라는 제목의 그리스도론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 스위스 루가노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와 앙리 드 뤼박의 신학노선을 따르는 신학자들이 현대 신학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가톨릭신학교과서협회(AMATECA)를 설립한다. 여기에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 스페인어권과 영어권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종교학, 철학에서부터 기초신학,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교회론, 성사론, 전례학, 사목신학, 교회법, 교회사, 인간학, 영성신학, 윤리신학, 사회교리, 종말론 등을 망라하는 방대하고도 체계적인 신학교재 23권을 기획했고, 각 저작은 현재 꾸준히 출판 중이다. 이 시리즈물은 현대 신학의 전망 위에서 신학 개념을 충실히 소개하며 신학 교육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 언어로도 번역 중이다. 쇤보른은 가톨릭신학교과서협회 대표로 교재 편찬 작업에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시리즈의 제5부 그리스도론 부분을 집필했다.
위기의 그리스도
쇤보른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많은 이가 종교를 심리학적 투사물이라고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만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살아계신 주님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스도론을 한 채의 건물로 비유한다면, 이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성경과 전승, 경험이라 하겠다. 성경의 근거와 교회의 가르침, 믿는 이들의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이래 이 세 기둥이 차례차례 흔들리며 무너져 간다. 그 시작은 전승의 기둥이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순수 복음을 왜곡한다고 전제하며 전승을 버리고 성경만으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의 확실성이 파괴된 것이다. 그 다음 계몽주의가 도래해 역사학의 방법으로만 성경을 연구하면서 성경 또한 오류와 조작의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성경 역시 확실한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어서 심리학이 등장해 종교적 경험을 다만 인간 욕구의 투사라고 이해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심리적인 작용으로만 설명했다. 신앙 경험은 착각이고 환상이라는 것이다. 전승과 성경과 경험의 세 기둥이 무너져가는 이때, 그리스도론이라는 건물을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는가.
여기에 더해 쇤보른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긴장감을 조성한 세 가지 위기를 언급한다. 먼저 자연과학이 가져온 위기다. 근대 이전 세계상에서 인간은 창조계의 화관이고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된 강생의 신비는 우주의 중심인 지구 위에서 피조물의 정점인 인간을 수용하는 사건으로 이해돼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는 사건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명체의 유구한 진화 과정의 한 단계이고, 지구는 우주의 극미한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강생을 우주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구원사건이라고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역사의 위기다.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역사의 우연 진리는 필연적 이성 진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의식이 퍼졌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한 사건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또한 모든 역사 사건에 매여 있는 근원적 상대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과거의 다른 역사적 인물이 현재에 던져주는 교훈 그 이상의 의미를 그분에게서 찾아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쇤보른은 여기서 '신-아리우스주의'를 말한다. 많은 이가 예수님에게서 위대한 한 인간을 바라볼 뿐, 하느님의 아드님이고 주님이신 그분의 신원을 망각하고 훼손하며 또 이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가장 심각한 실존적 위기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선포하는 교회의 구성원은 과연 그 진리를 증언하며 살아왔는가.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는가.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데 세상은 왜 여전히 고통으로 점철돼 있는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마주 대할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믿는 신앙은 조작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 예수를 하느님으로 신격화한 교회의 음모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예수님 시대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줄기차게 감싸고 있었다. 그 근원적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에게 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3)라고 밝혔다. 율법의 백성인 유다인에게 십자가는 하느님 저주의 표징이요, 지혜로운 그리스인에겐 어리석음의 상징이었다. 율법에 따르면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신명 22,22-23 참조).
희랍 철학자들에 따르면 하느님은 고통을 겪을 수도 배신을 당할 수도 죽을 수도 없다. 십자가 위에 죽으신 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신앙은 사람들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시대 이방인 철학자 켈수스는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며 말한다. "자신이 약속한 바를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그 사람을, 우리가 고발하고 심판하고 형벌 받을 죄인으로 단죄했을 때 숨어있던 그 사람을, 비겁하게도 도망쳤다가 소위 자기 제자 일당에게 배신당해 붙잡힌 그 사람을 어떻게 하느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그가 하느님이라면 도주하지 말았어야 하고 체포되지 않았어야 하고 배반당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구원자, 위대한 하느님의 아드님, 기쁜 소식의 선포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가?"
켈수스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관습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초대교회 구성원 역시 이를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처음 예고하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한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흠모하고 존경하는 스승이 죽임을 당하리라 말씀하시는데 과연 어떤 제자가 베드로처럼 행동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1-23) 사람의 생각에서 보면 베드로나 켈수스의 입장이 훨씬 더 합당하지만, 하느님의 생각은 여전히 하느님의 생각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가 아무리 치밀하게 사유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생각을 결론으로 도출해내지 못한다.
초대교회 믿음에 주목
신학은 우리의 생각으로 하느님의 생각을 구축하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를 신앙으로 수용하고 이성으로 성찰하면서 심화된다. 하느님은 자유로우신 분, 당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유로 이뤄내시는 행위를 인간 편에서 속박할 수 없다. 신학은 하느님의 사건을 대면하며 그 안에 작용하는 하느님 논리를 찾아가는 것이지 인간의 생각으로 하느님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 이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분을 신격화해 하느님이라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화 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삼위일체 교의 및 예수님의 강생, 부활, 동정 마리아로부터 탄생 교의는 교회가 희랍 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작하거나 미화한 내용이다.
그런데 역사적 궤적을 따라 진지하게 살펴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신앙 고백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거부되고 박해받았다. 초대교회로선 혹독한 박해와 몰이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었다. 쇤보른은 바오로 사도를 주목한다. "그분(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주님, '호 퀴리오스'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한 분 하느님께만 드린 호칭이다. 바오로 역시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선포한다고 박해했는데,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하고 찬가를 부르고 있다. 근본적 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건은 바오로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이전의 그는 예수님을 갈릴래아의 위험분자, 신성모독자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분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는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분명히 밝힌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2코린 4,6).
부활하신 분의 현현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는 의미가 있다고, 그분의 죽음과 지상 행적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지탱되고 또 의도됐다고, 그분의 말씀은 참되고 그분의 가르침은 올바르다고, 이는 모두 하느님 그분의 행위 자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사고와 관습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새로움을 알려주신다. 하느님은 세상의 가장 낮고 어둡고 절망스러운 곳,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오시어 죄와 고통, 유한성과 죽음을 당신 품 안에 껴안으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어둠을 아래에서부터 끌어안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 생명과 진리가 드러나고 전해지는 자리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로, 성령의 거처로 성장해 나간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2) 발터 카스퍼 (상)
새로운 역사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 새롭게 규정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는 20세기 1960년대 후반기부터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학문적 결실을 줄곧 거둠으로써 세계 곳곳의 유수 교육기관들로부터 신학 발전에 기여한 걸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세계 정상급 대 신학자로 국제적 신망을 누리고 있다.(지난해엔 아시아에 있는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수원가톨릭대가 그에게 23번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오늘날 카스퍼 추기경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자로 손꼽힌다.
카스퍼의 신학 사상은 19세기 초에 형성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학맥을 잇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신학도 시절부터 시작해 교수와 주교, 그리고 추기경 신분을 두루 거치는 반세기 동안 이 학파에 속하고 있음을 때로 공언하며 '튀빙겐 신학자'로 불리는 것을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시대 사상과 열린 자세로 대화하며 신학 입장 정리
카스퍼는 1933년 3월 5일 독일 서남부 뷔르텐베르크주 방겐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교육자 부친과 독실한 신앙의 소유자 모친 밑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히틀러 통치 시절에 소년기를 보냈다. 부모 영향으로 매일 미사와 각종 신심 행사, 행렬 등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사제가 되려는 뜻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 종결 후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뒤 1952년부터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교구 소속 신학생 신분으로 튀빙겐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자유 학기만을 외부 뮌헨대에서 보낸 이외에는 줄곧 튀빙겐대에서 수학했다. 이는 그가 스승들 인도를 받으며 튀빙겐 학파 정신으로 양성되고 '튀빙겐 신학자'로 살게 되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튀빙겐 학파는 19세기 초 창시자 드라이(J.S. Drey)를 위시하여 히르셔(J.B. Hirscher), 묄러(J. A. Mu"hler), 쿤(J.E. Kuhn), 스타우덴마이어(F.A. Staudenmaier) 등 일단의 신학 교수들이 세속화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확산되고 교회의 세속적 영화가 쇠락하던 격변기를 맞아 교회와 신학의 쇄신을 도모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의 정체성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 당대 교계와 신학계에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광범한 반향을 자아냈다.
- 젊은 시절의 발터 카스퍼. 튀빙겐 신학자인 카스퍼 추기경은 오늘날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요셉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자다.
그들은 교회와 학문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당대에 형성되는 시대적 사상 조류와 대화하는 열린 자세로 신앙과 신학의 기본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했다. 또한 후기 계몽주의, 낭만주의, 독일 관념론은 물론 당대에 형성된 개신교 신학사상 등 모든 사조와 주도 인물을 상대로 비판적 학술 토론이나 논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역사의식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려고 진력했다.
강생 원리로서 그리스도 사건을 역사 안에 자리매김한 기반 위에서, 그들은 교회 전승(傳承)을 하느님 계시가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지속하는 현재가 되도록 생동적으로 움직여나가는 '자기를 전승하는 실재'로 파악했다. 더불어 낭만주의의 유기체(有機體) 사상을 교회 역사적 발전의 해석 도구로 원용해 계시 전체를 역사 안에서 펼쳐지는 유기체의 생동적 체계로 파악하는 가운데, 계시가 오로지 역사를 통해서만 현재를 사는 교회 공동체에 이르게 된다고 파악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계시가 교회의 '지속적인 현재에로의 자기전승' 안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다고 규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원리'는 튀빙겐 학파 신학 전체의 핵심적 통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대의 개방된 조류 안에서 신학을 수행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카스퍼는 이 학파의 전통 안에서 외견상 순탄한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재학 중 작성한 연구논문이 수상의 영예를 누리는 등 성공적으로 수학 기간을 보내고 1957년 4월 6일 소속 교구 사제로 수품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1년간 보좌 생활을 하고 1958년부터 3년간 튀빙겐 신학원에서 신학생을 지도한 그는 1961년부터는 3년간 가톨릭 신학부 조교로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1962년 '로마 학파 안에서의 전통 교설'을 주제로 작성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 '쉘링(F.W.J. Schelling)의 후기 철학 안에서 역사 철학과 신학'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쉘링이 초기 자연철학에선 자유의 자연적 전제를 밝혀냈고, 후기철학에선 근세적 자유철학의 한계를 숙고했다고 밝힌다. 이어 그 때문에 이 노선에서 관념론 후기 사상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가 파악돼 근세 후기 이래 등장한 제반 사상 조류와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입장을 정립할 수 있게 됐다는 소견을 개진했다. 논문은 1964년 「역사 안의 절대적인 것. 쉘링의 후기철학 안에서 역사의 철학과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카스퍼는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난 뒤 31세의 젊은 나이에 뮌스터대 신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곳에는 한 해 앞서 부임해온 라칭거가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그가 1966년 튀빙겐대로 학교를 옮기자 후임자로 칼 라너가 뮌헨에서 부임해 왔다. 라너는 1969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또한 라너의 제자이자 친구인 메츠(Johannes Baptist Metz)가 기초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뮌스터대에는 세계적 명성이 자자하던 신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라칭거가 1969년 튀빙겐을 떠나 레겐스부르그대학으로 옮긴 뒤, 카스퍼는 그 후임으로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레겐스부르그대에서 1970년부터 1989년 교구장 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출중한 신학 활동을 펼치며 세계적 신학자로 급부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카스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결정에 따라 1999년 교구장직에서 물러나,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직무를 맡았고 2001년엔 추기경 서임과 함께 평의회 의장직에 임명됐다. 그는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를 위시해 성공회와 개신교 등과의 교회일치를 촉진하고자 활발히 노력해 교회일치에 우호적 풍토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는 동시에 유다교와 관계 증진을 위해서도 진력했다. 2010년 은퇴한 그는 계속 로마에 거주하면서 교회 주요 현안과 관련한 자문 요청에 응하고, 세계 각국에서 초청하는 신학 강연이나 학술회의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집필 활동도 열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들
카스퍼가 신학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인 1960년대 후반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의 신학적 해석과 실천적 수용을 둘러싸고 가톨릭 신학계 안에서 편차 큰 입장들이 충돌해 갈등을 빚던 시절이었다.
일부 신학자 층은 근세 이래 진행돼온 사회 및 교회 전통으로부터 이탈을 통한 변혁을 도모하는가 하면, 다른 층은 전통적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카스퍼는 이러한 혼란기에 튀빙겐 학파의 '역사적 사고'를 자기 신학사상의 핵심 기조로 삼으면서 교회 신앙의 역사적 도정을 파악하고, 이를 오늘을 위한 신앙의 길로 만들고자 주도면밀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카스퍼의 이러한 노고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가 1969년과 1970년에 뮌스터대와 튀빙겐대에서 모든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신앙 입문' 공개강좌 내용은 1972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나왔다(국내에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으로 소개, 1979). 이후 그를 일약 세계적 교의신학자 반열에 올려준 저서 「예수 그리스도」(1974)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1982)이 출간됐고, 후속작 「가톨릭교회, 본질ㆍ실재ㆍ파견」(2008)은 고위직 수행 관계로 뒤늦게 출간됐다.
이 밖에도 「신학과 방법론」(1967), 「신앙과 역사」(1970), 「신학과 교회」(I, 1984; II, 1999), 「믿는 사람은 떨지 않는다」, 「자애」(2012) 등이 또 다른 주요 저서로 꼽힌다. 이와 함께 독일 '발터 카스퍼 추기경 연구소'를 통해 200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교회의 전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와 그 직무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에로의 도정」 등이 전집으로 속속 나오는 중이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3) 발터 카스퍼 (중)
개별 역사적 사실과 보편적 진리 아우르는 통합적 신학 전개
- 카스퍼의 신학은 한 편에선 자유주의적 또 다른 한 편에선 보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외부 비판에 전혀 동요치 않고 튀빙겐 신학자로서 길을 오롯이 걷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 신학계에는 신앙과 교회의 주요 핵심 사안과 관련해 이전처럼 단일한 입장이 아니라 복수의 입장들이 공존하면서 작지 않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불리는 신학 노선들 사이에는 신앙과 교회 생활의 주요 진리의 의미를 둘러싸고 확연히 구별되거나 대립하는 입장이 평행선을 긋다시피 양립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학 풍토에서 카스퍼의 신학은 한편에선 '자유주의적' 또 다른 한편에선 '보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외부 비판에 전혀 동요치 않고 '튀빙겐 신학자'로서 입장을 의연한 자세로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다. "그들(튀빙겐 신학자)에게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것은 서로를 배제하는 반대들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양립불가하지 않고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이에 비해서 극단적 주장들은 항시 더 단순하다. 이와 반대로 극단들을 함께 응집시키고 가급적 함께 생각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이는 '조정하다'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신학은 생각해야 한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카스퍼 신학의 인식원리
카스퍼의 신학은 방법과 내용 면에서 '튀빙겐 신학'의 입장을 오늘날의 역사 상황 안에서 충실히 대변한다. 이 신학의 인식원리와 방법으로부터 신앙의 핵심 진리 및 교회 주요 현안과 관련해 다른 신학자나 노선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면서,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는 다수 신학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카스퍼 신학의 특성은 튀빙겐 학파의 전통 개념을 '신학적 인식원리'를 적용한 방법을 통해 신앙의 여러 진리를 구명하는 데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튀빙겐 신학의 전통은 재래 전통 개념과 구별돼 하느님의 자기전승으로서 계시에 관한 모든 진술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는 영원한 하느님 말씀이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 시점과 공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증여)로서 나자렛 예수로 강생했다는 믿음이다. 이는 바로 신앙 핵심이 그 내용과 현실 그리고 매개와 전체 지평 안에서 역사적임을 가리킨다.
고대에서 시작해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는 교회와 신학 안에서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이 기간에 역사나 역사적 변천 현상은 교회와 신학 안에서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상사적으로 인간학적 전환을 이룩한 근세에 이르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역사가 우주의 포괄적 질서 안에서 한 소인이 아니라 모든 질서 자체가 그것을 즉시 상대화하는 역사 내에서의 한 소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세계 실재 자체가 심층으로부터의 역사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19세기 초 튀빙겐 신학자들이 도모했던 그리스도 신앙과 역사의 만남이 한 세기 훨씬 지나고 나서야 가톨릭 신학계 안에서도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학자나 노선에 따라 신학과 역사의 만남이 상당히 상이한 방법으로 이뤄졌기에, 현격한 입장 차를 드러내는 여러 신학적 입장들이 형성돼 혼선을 빚은 것이다.
신학계에서 그동안 이뤄진 신학과 역사의 만남으로 종교사와 역사ㆍ비평적 주석학이 태동했다. 이로써 영원불변한 하느님 말씀이 담긴 성경의 역사적 제약성, 타종교로부터의 영향, 당대의 문학형식과 사고형식, 기술형식으로부터의 영향, 그들의 역사적 발전 그리고 그로써 주어진 개별 진술 사이의 긴장 상태가 속속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성서 진술이며 신앙 진리에 관한 역사적 인식은 교회의 많은 교리 체계나 구조형식을 역사적인 것으로 드러내면서 교계나 신학계에서 신앙과 역사의 문제 처리를 둘러싸고 서로 구별되는 입장들이 갈등을 빚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카스퍼는 현대 신학의 이러한 갈등 상황 안에서 튀빙겐 학파의 전통 원리에 따라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에게도 전통은 살아있는 전통, 즉 사람들이 생활해 전수함으로써만 전승을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신앙 인식의 기초가 역사(특정 시간과 장소) 안에서 발생한 나자렛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전승의 계시로 규정된다. 그런데 계시와 계시된 것의 전달로서 전승이 중세 이래 지난 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명제(命題)처럼 생각됐다. 이것은 하느님 계시가 그 원천과 역사적 증거 안에서 명제들의 총합으로 이해됐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풍토 안에서 성경과 성전, 교도권 등의 문헌들이 초역사적 교리의 구성요소로 간주됐다.
하지만 카스퍼는 이러한 재래 전통 개념과 구별되는 튀빙겐 신학의 입장에 따랐다. 그는 전통을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현재화에 이르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요,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기억"으로 이해한다. 튀빙겐 신학자들이 내내 강조하는 '하느님의 자기전승'으로서 전통은 교회 역사를 거치면서 축적되고 물화(物化)된 소유자산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신자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자기전승은 교회와 신자를 전통주의로 속박하지 않고, 역사의 개방된 조류 안에서 미래의 길로 자유롭게 가도록 하는 살아 있는 전통이다. 따라서 카스퍼는 신앙 진리를 '추상된 명제로 구성된 교리 체계의 축적(蓄積)'과 간단히 동일시하지 않고 '교회 존재와 동일시되는 생동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카스퍼 신학 방법
카스퍼 신학은 튀빙겐 학파의 전통 개념에서 출발해 신앙과 신학을 조명하는 길을 걷는다. 여기서 교회성은 역사 진행에서 축적된 추상적 교리체계와 일치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주석이 늘 새롭게 이뤄지는 생동적 전통과 소통의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입장은 성경 진술과 결정된 교리 사실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신학적 실증주의나, 이를 무리하게 하나의 체계로 압축하는 교리주의 입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카스퍼는 역사적 개별 해석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신학적 개별 자료에 내재하는 활력에서부터 실재 일반의 종말론적인 궁극의 의미가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로 모든 것이 통합되는 체계적 연관성을 제시하는 것을 최대 관건으로 여겼다. 말하자면 그는 한편으로는 세계 안에서 발생한 다양한 역사와 개별적 역사적 사실(부분), 또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집중적이며 극적으로 주어져 있는 보편적 진리(전체)를 모두 중시하는 일종의 통합적 신학을 전개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방법은 '시대의 열린 조류 안에서 신학'을 전개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보편적 신앙 진리로서 복음 진리의 의미를 온전히 구명하기 위해 성경과 전승의 개별적 자료에 대한 엄밀한 역사적 연구 작업과 교회와 세계의 열린 조류 안에서 성령을 통해 생동적으로 이뤄지는 계시의 종말론적 자기전승의 의미를 구명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특정 과거 시점에 머물러 있는 고정된 교리 내용을 담은 보편적 진리 전체로 간주하기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계시 자체와 인격적으로 관련을 맺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카스퍼는 신앙 진리에 대한 역사적 개별 연구와 체계적 개관을 적절한 관계로 맺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양성교령」의 가르침과도 부합한다고 본다. "교회 학문을 재검토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 철학과 신학을 보다 적절히 조화시켜 학생들에게 인간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점차로 명백히 이해시키는 단일 목적에 철학과 신학이 함께 이바지해야 하겠다"(14항).
지난 공의회 이후에 신학계 안에는 신앙 진리에 관한 역사적 개별 연구를 생략하다시피 건너뛰고 기존의 개관 내용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작업에만 치우치는 입장들이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앙 전체의 성격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개별 진리에 관한 성서적거나 사변적 분석 작업, 세부 천착에 매몰되는 입장들이 목격된다. 카스퍼 신학에서는 특정 진리의 개별 연구 자체가 주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개별 해석을 유념하면서도 그리스도 신앙 전체를 살피며 앞으로 발생할 종말론적 차원의 실상을 구명하는 입장이 시종 관건이 된다.
그 때문에 그는 개별 논구 대상의 성경적이고 전승적인 근거뿐만 아니라 역사적 차원의 정신사적 발전 근거에도 주목하면서 이를 통해 도전을 받는 신학의 구체적 역사에 자기 자신을 세움으로써 보편적 신앙 진리의 종말론인 궁극적 면모를 제시하려고 진력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튀빙겐 신학의 이러한 입장이 인류 사회와 교회 안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주목하면서 그 신학적 의미를 구명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채, 재래 신학의 내적 논리 체계 안에서 순수 사변 일변도로 아니면 성경 실증주의적으로 또는 교리주의적으로 보편적 신앙 진리의 의미를 제시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다른 신학 노선과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소신을 피력해 왔다.
그는 다른 신학자와 논쟁에서 상대방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개진해 왔다. 그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와 관계 설정과 관련해 라칭거와 벌인 논쟁을 통해, 또 라칭거의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이나 교황 재위 기간 중에도 평소의 소견을 일관되게 개진한 사실을 통해 신학자로서 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 (24) 발터 카스퍼 (하)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와 쇄신 강조
카스퍼 신학의 중요사상
카스퍼를 포함한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위시한 신앙의 핵심 진리를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인 본성, 본질, 실체와 위격 개념 등을 사용해 의미를 밝힌 형이상학적 신학 경향을 탈피하고, 역사 안에서 만물과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마침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의 실상을 구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구세사적 신학을 공통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교회를 불완전한 사회나 종교 집단과 구별되는 교계제도로 구성된 초자연적 완전 사회로 파악하던 개선주의 경향을 벗어나 구세사적 지평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구원의 성사적 표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신앙의 주요 진리에 대한 공통된 신학 사상이 형성돼 있지만, 튀빙겐 신학의 인식 원리와 방법에 입각한 카스퍼의 주요 신학사상 안에는 특유의 구별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약된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내용보다는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요 통찰만을 간략히 소묘하고자 한다.
신앙이해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객관적 구원 사실을 진리라고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퍼에게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외부인 눈에는 숨겨진 역사로서 신앙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기적과 예수 부활 등을 이해하는 데에서 성경 본문이나, 교회 가르침을 진리 근거로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이 결정적 주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구세사는 인간에게 숙명론적으로 발생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 일상의 비루함과 현실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의탁하는 역사적 신앙 감행을 통해 발생한다. 신앙생활을 위해 구세사의 객관적 성격이 주요하더라도,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카스퍼의 입장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이해
카스퍼의 하느님 신학사상은 그분을 '절대적 자유로서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는 성부로서의 하느님이 절대적 자유의 선물이고 성자는 성부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 절대적 인정이며, 성령은 절대적 단일성과 절대적 상위성의 동일원천성이라고 이해한다. 하느님, 성령, 절대적 사랑은 하나의 관계이며 그것이 자유의 선물이고 시간 내지 가능성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서 자유의 선물이신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타자적인 것 즉 창조를 원하시는 데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유를 지닌 어떤 것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느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실제적인 무조건적 자유의 선물이다.
그리고 카스퍼는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아드님이자 로고스의 성령 역사로 이뤄진 육화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는 상위성을 단일성과 함께 성령적으로 시야에 담을 때에만 적절히 이해된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 칼케돈공의회 교의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로서 '인격' 개념 설명을 통해 밝힌다. 그는 인격이 구체적으로 '오직 관계 안에서'만 자신을 실현하는 사랑을 본질로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이 내용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그분을 신적 인격으로 특징짓는 정체성은 성부께 대한 그의 사랑의 관계, 곧 성부를 향한 사랑에서 발하는 그의 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간적 순명이 천주 성자의 순명인 한, 순명이 그를 성부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성부와의 일치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스퍼는 성자의 위격이 현실적으로 인간 예수로 존재하기에 성자는 인간으로서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적 위격이기도 하다고 논증한다. 성자가 자신의 신적 위격성을 이제 인간적 유형 양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 안에서 신적 '누구'의 인간적 '나', 천주 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성령과 긴밀한 연계 안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세계 안에서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 성령의 새로 마련된 현존과 실재의 목표이자 정점"이면서, 또한 "성령 파견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거를 찾는다. 그 다음 논거로는 예수와 그의 성령을 통해 종말시대가 이끌려졌다는 점을 꼽는다.
교회 이해
카스퍼의 교회론 역시 성령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충실하듯이 '시대의 물음'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열려 있고 은사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연계하면서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아울러 역설한다.
그는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일종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성령을 교회 제도에 연계하는 경향이 점증하며 '교계적 교회의 영혼'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삼 위격들의 외부로의 공동 역사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적 신학 명제가 강조되는 나머지 신자들의 개별 인격이 독자적 존재가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에 대해서 공언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성자 시대 이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서 언급한 중세 피오레의 요셉 수도원장을 거슬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는 구세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카스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는 죽은 문자의 양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유의 양식 안에서 발생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반복해 그 새로움 안에서 이 새로운 것을 자유에 맡긴다. 성령은 늘 새로운 것의 하느님으로부터 열린 공간이며 새로운 존재의 늘 새로운 힘이다."
카스퍼는 교회를 "성령의 성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령의 성사로서 교회 이해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비해 본질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견지한다. "교회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돌입할 때까지 와 있는 실재이다.… 교회는 한 번은 전체 실체를 포괄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어디서나 숨겨진 가운데 돌입하고 있는 하느님 다스림의 선취적인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일치 교령」이, 성령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다른 교회적 공동체를 사용하신다고 말할 때, 그로써 우리의 학교 교의학에서는 전혀 해서는 안 됐어야 할 양식으로 성령이 작용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또한 '성령'과 '성사' 개념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령 작용이 항상 구체적인 가시적 일치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분열을 극복하려는 교회는 가시적 다양성의 가시적 단일성에로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령의 성사인 교회 안에서 단일성이 다양성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사이의 관계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안에서 드러난 라칭거와 카스퍼 사이의 입장 차이의 핵심이 있다. 그는 다양성에 앞선 단일성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라칭거와는 달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성령의 성사'로서 이해된 교회의 삼위일체적 성격에 따른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상호침투성을 말한다. 즉 많은 지역교회들이 단지 하나인 교회의 한 부분이나 구역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카스퍼는 성령의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의 장점으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조할 수 없는 것" 등이 속하는 사실을 꼽는다.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새로움 안에서 항상 되풀이해 새롭게 현재화하는 데에서 이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죽이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의 성령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현상 유지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잠금장치가 아니라 지속적 쇄신의 성령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
끝으로 카스퍼가 한국교회에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한, 며칠간 머물면서 자신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같이 '아시아 복음화'가 제3천년기 보편교회의 최대 도전이자 과업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실패한 서구교회를 대체하고 이 과업을 수행할 여건을 제대로 구비한 지역교회로 한국교회를 꼽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에 앞서 50년 동안 복음을 신앙진리로 스스로 수용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하고자 진력한 창설 주역들에 대해 찬탄 어린 경의를 나타냈다. 그는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큰 신학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