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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사랑] 새 생명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1.30|조회수42 목록 댓글 0

[생명사랑] 새 생명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

 

마리아 요셉 프로젝트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요한 묵시록 12,1-6)

 

 

 

한 사람이 하느님의 성총으로 세상에 와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상의 삶을 마칠 때까지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과 교회공동체의 적극적인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독립성을 가진 고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웃과의 교류와 보살핌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이웃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세상이 주는 도움을 필요로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성숙시키고 미래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철학자 하이데커가 말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닌 던져진 세상 안에서자신을 구현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동시에 과거를 지니고 미래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 잉태된 아기와 아기의 부모에 대한 사목적이며 공동체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태아와 그 가정을 위한 사목 매우 중요해

 

 

 

하지만 우리교회가 세상 안에서 생명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새로운 생명과 그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초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우리 사회는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교회의 입장에서도 위기로 느끼고 있지만 몇몇 교구에서 실시하는 출산 격려금이나 임신부축복예식을 제외하고는 공동체적 사목적 배려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태아와 그 가정을 위한 사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새로 태어나는 인간생명을 위한 것인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그 가정과 부모를 위한 사목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최초의 교회이고 학교이며 부모는 첫 번째 교사이기 때문에 새 생명인 태아에게 있어서 가정과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잉태한 가정과 그 부모를 위한 교회 차원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또한 태아는 학교에서 배우듯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소리를 듣고 느끼며 부모의 삶을 체험하면서 부모와 함께 세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게 됩니다.

 

 

 

부모의 모습이 곧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게 될 전()인생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신앙이 곧 아이의 신앙이 될 것입니다. 굳은 신심과 신앙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자렛의 성가정을 닮으려 노력하는 부모와 함께 한 아이는 부모를 닮아 그렇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목적 배려 - 가톨릭 태교사목(마리아 요셉 프로그램)

 

 

 

마리아 요셉 프로그램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잉태된 아기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를 위한 교회의 공동체적 돌봄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나자렛 성가정을 닮아 새로 잉태된 아기에 대해서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한 것처럼 교회 공동체와 가정이 잉태된 아기를 잘 돌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태기 : 일반적으로 수태에 대한 교육은 임신시기 초기에 함께 하거나 임신시기 전체를 통해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태 전 시기 혹은 혼인 전 교육 때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의 교육은 주로 초대하는 사목입니다.

 

 

 

혼인을 축하해주고 축복해주며 이들이 혼인생활을 복되게 할 수 있도록 혼인의 의미와 부부사랑 그리고 출산의 의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이와 함께 자연출산조절 프로그램을 알려줍니다. 이 프로그램은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따라, 새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람의 몸 안에 처음부터 만들어주신 하느님의 계획과 질서를 체험하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부부사랑과 모성, 부성 그리고 자녀의 의미 등 가정과 사랑, 출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탄생준비기와 출생 : 이 시기는 수태 후 출산 때까지의 임신기간입니다. 이 때야 말로 교회의 사목적 배려 및 돌봄이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임신기간은 결코 편안한 시기가 아닙니다. 최근처럼 혼인연령이 높아지고 고령임신의 경우 태아 자연유산률이 높고 기형출산 및 미숙아 출산률도 높아집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태아의 안전한 출산뿐 아니라 가톨릭 태교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한 출산을 위한 사목적 배려와 돌봄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사목적 배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비 세례명(태명)을 지어준다. 예비 대부모를 선정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2. 태아와 임신부 및 그 가정을 위한 기도를 공동체가 함께 봉헌합니다. 또 함께 정기적으로 임신부 및 태아 축복식을 거행합니다. 3. 봉사자들은 정기적으로 임신부모를 위해 본당의 주보를 전해주는 등 신앙생활을 도움으로서 임신부 가정의 임의냉담을 막을 수 있습니다. 4. 출산이 임박하면 공동체가 함께 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출산 후에는 즉시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우리 본당 공동체에 한 생명이 태어난 기쁨 소식을 전하고 그 가정을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 같은 돌봄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생명이 교회 공동체와 가정에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되고 참으로 축복과 기쁜 소식으로 전해 질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세상과 교회 공동체의 큰 기쁨일 뿐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사건이며,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 드러나는 신비입니다. 이러한 큰 기쁨과 신비에 동참함으로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세상에 큰 기쁨이 되어 왔으며 하느님의 신비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생명 사랑] 생명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우리 인생의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이 여행 중에 나누는 대화는 우리 이야기이며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라이프 스토리(LIFE STORY)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라이프 스토리는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거이야기를 의미하지만 우리가 함께 나눌 라이프 스토리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포함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아직 겪지 않았지만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복음

 

1995325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아주 중요한 회칙을 반포합니다. 교황은 수년 동안 전 세계 주교들과 우리 시대의 눈물과 아픔, 그리고 고통의 근원에 대하여 고뇌합니다. 온 세상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특별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가장 작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이 서한을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이 편지는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같은 전 세계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 간곡히 전하는 호소입니다. “생명을 사랑해주십시오. 생명을 지켜주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생명의 백성입니다.”

 

이 회칙은 인간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한교회의 가르침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이며 생명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회칙의 제목은 ‘Evangelium Vitae, 생명의 복음’(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입니다. 2015년 올 해는 회칙 생명의 복음이 반포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상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교황님의 따뜻한 손을 우리도 함께 느껴보고 그 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며 생명의 백성인 우리가 교황의 희망대로 생명의 봉사자가 되는 생명을 위한 새해가 되시길 희망합니다.

 

생명의 복음은 인간생명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 까지 오직 하느님만이 그 주인이시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적으로, 의도적으로 파괴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이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53)

 

인간은 인간인 것 자체로 하느님의 모상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 가치와 존엄성을 갖는다. 이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그가 어떤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다.’

 

 

시작과 초대의 말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복음에로 초대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며 가치 있고 숭고한 그래서 거룩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잘 알고 있습니까? 안다는 것은 이성의 작용으로 습득한 지식과 마음으로부터의 깨달음 그리고 행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오로가 야고보서에서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 214-24)라고 말씀하셨듯이 생명복음을 알고 깨닫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를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제 전해야 합니다. 내가 깨달아 알고 삶으로 실천하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회칙은 날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모든 시대 모든 문화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복음 선포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전할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며 그 분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곧 생명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짧지만 아주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삶의 마지막 시간에 신음하는 나를 만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처음 내가 생명을 선물로 받을 때 나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왜 그렇게도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지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혹시 이 만남과 소리, 그리고 그 모습들이 두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과정입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표정 그분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으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금방 따뜻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그 따뜻함이 생명의 따뜻함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본 것을, 들은 것을, 만난 것을 증언하십시오. 그것이 생명의 백성들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 곧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생명의 복음 회칙을 반포하시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호소합니다. “생명을, 모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오직 이 방향에서만 여러분은 정의, 개발, 참된 자유,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524)

 

 

 

 

[생명 사랑] 성탄은 모든 사람의 출생의 완전한 의미를 밝혀줍니다

 

 

 

 

 

디에릭 보우츠의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1450-1455; 폴 게티 미술관 소장).

 

디에릭 보우츠는 네덜란드 화가로 동시대 반 데르 웨이덴과 함께 수학하여 웨이덴의 영향을 받아 초기 작품에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한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보우츠의 수태고지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내부의 넓은 구조와 짙은 붉은 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 그리고 나무로 짜진 작은 앉은뱅이책상과 기도서 같은 책이 전부이다. 마리아가 자신의 방에서 기도하는 중에 천사 가브리엘이 붉은 커튼을 젖히며 나타나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리라고 예고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러나 마리아는 놀라 당황하며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가 1, 28-34) 라고 답한다.

 

보우츠는 이 긴박하고 긴장된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돌아앉지 않는다. 비스듬한 자세로 눈은 아래를 향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천사는 마리아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는 커튼을 젖히고 한 손가락을 세운 채 매우 경건하면서도 단호한 모습을 취한다. 여기서 커튼을 젖히는 것은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드러나는 계시를 나타낸다.

 

또한 보우츠가 표현한 수태고지의 모습은 프라안젤리코의 수태고지와 같은 작품에서처럼 천사와 마리아가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는 모습, 천사와 마리아가 진솔하고 깊은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없다. 대신 천사 앞에서 마리아는 천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떤 대화도 없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이러한 침묵은 마리아의 인간적 고뇌와 긴장을 심오하면서도 심도 있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 침묵 속에 거룩하고 역동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

 

사실 오늘 천사가 마리아께 전하는 말씀, 곧 성경이 말하는 큰 기쁨이 될 소식이란 구세주의 탄생이다.(생명의 복음 1)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신 이 구원사건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사건이며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이 큰 기쁜 소식이다.

 

이로서 비교할 수 없고 대치될 수도 없는 인간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드러나게 된다.

 

시편 저자는 8편에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보살펴주십니까?’(시편 8,4) 라고 물으며 하느님을 찬미한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사건과 모든 사람의 출생을 연관시켜 제시한다.

 

성탄은 모든 사람의 출생의 완전한 의미를 밝혀준다. 따라서 메시아 탄생의 따르는 기쁨은 모든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가 느끼는 기쁨의 토대이며 그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생명의 복음 1)

 

그러므로 인간의 출생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성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인간의 출생은 우연한 결과이거나 철학자 하이데커가 말하듯이 세상에 피투(被投) 된 존재곧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져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은 이미 하느님의 모상이며 그 분의 뜻이 담겨진 존재로서 태어나 세상을 위해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따라서 누구든 사람이 세상에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탄처럼 세상의 구원과 축복을 가져주는 존재로서 세상에 큰 기쁨이 되는 소식이다. 때문에 한 아기의 탄생은 한 가정만의 사건이 아니며 그가 속한 공동체를 넘어 세상의 큰 기쁨 곧 우리 모두의 큰 기쁨이 된다.

 

인간생명 안에는 그가 누구든 아주 특별하고 고유하며 하느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져 있다. 모든 한 사람 한 사람, 바로 나는 아주 특별한 의미, 세상에 새로운 희망과 축복과 참된 사랑의 구원이라는 선물을 지닌 큰 기쁨으로 세상에 왔다. 큰 기쁨은 그의 생명이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유효하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성모님의 신앙 필요

 

이 구원사건이 마리아에게 전해졌다. 마리아는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지만 거룩한 침묵 속의 대화에서 천사로부터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임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라는 말씀을 듣는다.

 

자신에게 일어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마리아는 들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용감하게 답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5-38) 오늘날 생명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용기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성모님의 신앙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명 사랑] 생명의 어머니 성모님 닮은 우리시대 어머니들

 

 

 

 

 

오늘은 두 분의 장한 어머니, 생명의 어머니 성모님을 닮은 두 어머니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분은 알렉시아 자매님이고 또 한 분은 태아들의 수호성인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입니다.

 

 

 

알렉시아 자매는 셋째 아기 임신 중에 기형검사를 했는데 아기의 신장이 요로질환에 의한 기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검사가 진행되었고 알렉시아 가족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하느님의 선물인 아기와 함께 했습니다. 의사는 아기가 불치병에 걸렸으며 출산하더라도 6시간정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아기를 낙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알렉시아는 아기를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이며 선물로 받아들이고 아기를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품에서 태어났고 열한 시간 정도 살다 엄마 품에서 다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다음은 엄마 알렉시아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네게 편지를 쓰는 사람은 네 엄마란다. 네가 엄마에게 온 지 24주째이고 내일이면 25주째로 접어든다. 요즘 엄마는 다양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단다. 너를 갖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과 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느낀 무한한 기쁨.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척 걱정이 되는구나. 네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단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너와 함께 하도록 하느님께서 내게 선물하신 커다란 평온과 평화를 동시에 맛본단다.

 

 

 

그동안 엄마는 너를 위해 너와 함께 기도하는 것을 배웠단다. 네가 여자아기인지, 남자아기인지 아직은 모른단다. 그리고 알 수도 없단다. 비록 네가 엄마의 세 번째 아기지만 엄마의 사랑은 온전히 너만을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엄마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누군가 네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해.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신 천국으로 갈 운명이기 때문이란다. 누군가에겐 이 고통이 쓸모없는 것이며 네 존재를 우리의 문제’, 우리의 고통을 지워버리기 위해 아주 간단한 행위인 낙태로 충분할 테니까 말이야.

 

 

 

사랑하는 아가야, 그런데 모든 아기의 생명에 깃든 하느님의 선물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무관심하고 경박한지! 하느님께서 너를 위해 세우신 위대한 계획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하지만 사랑의 가르침은 하늘나라의 지혜를 읽어내고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비참한 이 땅의 지평선 너머를 보게 해준단다.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성모 마리아의 자애로운 두 팔에 너를 선물로 안겨드리는 무한한 기쁨을 깨닫게 되었단다.

 

 

 

사랑하는 아가야 네게 무슨 말을 더하겠니! 우리는 너를 사랑한단다. 형들이 무척 너를 기다리며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사랑하는 아가야 하느님께서 너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그날 엄마와 만나자.]

 

 

 

엄마 알렉시아는 이 사건이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며 성모님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또한 성모님과 같이 자식의 십자가 아래에서 십자가를 짊어진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경험이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나는 일곱 시간에 걸친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특별한 시간 20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세례를 받은 갓 태어난 아기들은 하늘나라의 성인입니다. 우리 베드로는 우리 가정의 첫 번째 성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태어난 다른 모든 아기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다시 영원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딸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

 

 

 

- 잔나 베레타 몰라(1922-62. 축일 428)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는 1922104일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기꺼이 신앙의 선물을 받아들였고, 신심 깊고 훌륭한 부모로부터 확실한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선물로서의 삶을 체험했고, 주님의 섭리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훌륭한 소아과 의사이며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일상의 삶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조화롭게 처신하며 신앙을 중심에 둔 성가정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어머니와 아기, 노인과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619, 막내아이의 임신 2개월이 되었을 때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그녀의 자궁 안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임신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태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낙태를 거부하고 기도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자신을 맡겼습니다. 결국 태아의 생명은 지켜졌고 그녀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7개월 동안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어머니요 아내요 의사로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모든 고통을 견디어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자궁 안에 있는 태아가 고통을 안고 태어날까 걱정하며 하느님께 이를 막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며칠 전, 섭리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이미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태아와 산모 중 한 생명을 선택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만약 당신이 나와 태아 중에서 한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아기를 선택하세요. 아기를 살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1962421일 주일 아침, 마침내 잔나 엠마누엘라(Gianna Emanuela)가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태아와 산모를 살리기 위한 모든 노력과 처치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뒤인 428일 아침,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띠고 아기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39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1973923일 교황 복자 바오로 6세는 순례객들과 함께하는 삼종기도 전 훈화에서 의식적인 희생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딸에게 생명을 준 밀라노 교구의 젊은 어머니라는 말씀으로 그녀를 기억하며 그녀의 행동을 기렸습니다. 잔나 베레타 몰라는 1994424, 국제 가정의 해 행사 중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5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 중에 그녀를 단순한 여성, 그러나 누구보다도 의미 있는 하느님 사랑의 메신저라고 칭송했습니다.

 

 

 

오늘 소개한 어머니들은 생명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모성애를 실천함으로써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에 생명의 존엄성과 귀함을 삶으로 천명함으로써 새로운 희망 - 하느님 사랑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생명 사랑] 인간은 하느님 영광의 흔적입니다

 

 

 

 

 

아담의 창조(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바티칸 시스티나경당 천정화 일부, 1508-1512).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축복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하느님의 모습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던 바로 그 극적인 순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생명을 이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아담의 창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가인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4년에 걸쳐서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에 그렸던 천정화 천지창조의 한 부분입니다. ‘천지창조중에 가장 유명한 장면인 아담의 창조, 최초의 인간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조주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을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막 깨어나고 있는 몽롱한 상태에서 힘없이 한 쪽 팔을 내밀고 있는 아담, 그리고 그의 손가락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어 주려고 힘 있게 뻗은 하느님의 손길...닿을 듯 하면서 아직 닿지 않은 두 손가락...

 

이렇게 하느님이 뻗은 손에서 아담의 둘째손가락으로, 마치 전류가 흐르듯이 새 생명이 전달되고 있는 장면은 신의 전지전능함으로 완성된 인간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손길을 작품 중심에 놓은 놀라운 구성과, 완벽한 인체 묘사, 거기에 신비로운 색채까지...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아담과 하와는 마치 작품 속에 아담이 그랬듯이, 하느님의 손에 이끌려 완성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뜻과 노동으로 만들어져

 

성경에서 인간생명에 관한 가장 근간이 되는 대목은 창세기 1, 2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람에 대해서만은 다른 사물들과는 전혀 다른 특별하고 고유한 창조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창조하셨지만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는 하느님의 뜻(의지)과 노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 함께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사람을 흙으로 빚어 만드신 후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은 숨을 쉬게 되었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숨이 우리에게 들어오자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고 이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하느님의 뜻이 담긴 존재이며 신성한 하느님의 노동에 의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으며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보다 귀하디귀한 존재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모습을 닮고 하느님의 생명을 지닌 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충만함으로 인해 측량할 수 없는 가치와 대치되거나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언하는 존재이며 그 분이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있는 인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눠 받은 존엄한 존재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존엄한 존재이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이 명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못난 사람이든지 잘난 사람이든지 훌륭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죄인이든지 혹 장애인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본질적으로 지닌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며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 닿을 듯 한 하느님의 손길과 아담의 손가락, 여기 하느님의 눈빛과 아담의 눈빛 이 속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함이 샘솟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참으로 복된 존재입니다.

 

사람아 너는 참으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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