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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종착역’ - 2021년 감독 권민표, 서한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s ain’t over till i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05|조회수95 목록 댓글 0

[영화칼럼] 영화 종착역’ - 2021년 감독 권민표, 서한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s ain’t over till it’s over)

이란을 대표하는 거장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로 자신의 작품들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한편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 팀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s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문장을 통해 구기 종목 중에서 드물게 시간제한이 없는 야구가 지닌 매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라는 단어가 품은 ()’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끝에 대한 희망을 품곤 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에 권민표, 서한솔 감독이 함께 연출한 영화 <종착역>도 동참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중학생으로서 첫 방학을 앞둔 시연(설시연 분), 소정(박소정 분), 연우(배연우 분), 송희(한송희 분)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새로 전학 온 시연은 학교의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고, 여기서 만난 소정, 연우, 송희와 친구가 됩니다. 여름방학을 맞은 네 소녀는 동아리 선생님께서 주신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방학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세상의 끝을 어디로 설정할지 고민하다가 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인 신창역으로 가서 사진을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물리적 공간의 끝에 도달하기 위한 소녀들의 여정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지점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창역에 도착한 네 소녀는 의구심에 빠집니다. 종착역인데도 신창역에 놓인 선로는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창역이 1호선의 종착역임과 동시에 전북까지 가는 장항선이 이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네 소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무원에게 문의해 본 결과 끊어진 선로를 보기 위해서는 옛 신창역으로 가야 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고, 이들은 폐허로 남은 옛 신창역을 향해 길을 나섭니다.

세상의 끝을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내고자 하는 네 소녀의 의지는, 자신들이 의식하는 세상의 경계를 더 넓혀가는 과정이 되어줍니다. 예컨대 극 중 소정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왔던 길을 함께 되돌아가 주는 친구들의 모습, 고단한 여정 중에 길고양이에게 먹이와 물을 줄 여유를 보이는 모습, 시간이 늦어져 마을 경로당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결정하는 모습, 각자의 조부모를 향한 추억을 공유하며 언젠가 자신들이 맞게 될 노년을 상상하는 모습 등을 통해서 영화는 네 소녀가 세상의 끝을 찾아 나선 여정의 폭을 더욱 넓혀준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종착역>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관객은 네 소녀가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혼이 났는지, 방학 숙제를 선생님에게 제대로 제출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중요한 사안이 아님을 영화 속 네 소녀가 어느 여름날에 선보인 여정을 통해서 알려줍니다.

영화 속 네 소녀가 보인 세상의 끝을 향한 여정은, 한 해의 종착점에 다다르며 아쉬워하기 바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더불어 우리가 해마다 맞는 한 해의 마무리를 비롯한 여러 종착의 순간들과 지점들이,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자 우리네 삶의 실존적인 경계가 어제보다 더 확장되는 시점임을 일깨워 줍니다.

 

 

 

 

[영화칼럼] 영화 어떤 영웅’ - 2023년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

좋은 사람 되기 vs 나쁘지 않은 사람 되기

()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독선(獨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지고 펼친 행동이라도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을 선한 존재로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 몰두한다면 그 선행은 악보다 더 지독한 독선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는 자칫 잘못하면 좋음이라는 함정에 빠져 독선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란의 거장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 <어떤 영웅>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지닌 함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된 라힘(아미르 자디디 분)이 귀휴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합니다. 라힘은 일부나마 돈을 갚고 채권자에게 석방을 요청하려 합니다. 라힘의 애인 파르크혼데(사하르 골두스트 분)가 우연히 은행에서 주인 없는 핸드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많은 양의 금화가 들어 있었으나 금값이 떨어져 기대만큼 돈을 구하지 못하게 되고, 또 채권자는 빚의 일부만을 변제하는 것으로 라힘을 석방시켜줄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라힘은 계획을 포기하고 뒤늦게나마 핸드백을 주인에게 찾아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핸드백의 주인이 나타나면서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라힘은 타인을 도운 선한 사람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고 영웅으로까지 추앙을 받습니다. 이를 계기로 라힘이 채무에서 벗어나 더 이상 수감 생활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려는 공식적인 후원 단체까지 마련됩니다. 그러나 그의 평판이 높아질수록 주변의 의심 또한 깊어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라힘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로 이어집니다.

극 중 라힘이 겪는 딜레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을 동일시했을 때 맞게 되는 실존적인 혼돈을 상징하듯 다가옵니다. 영화는 주인공 라힘을,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책임한 거짓말을 일삼는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그립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인물로도 드러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영웅 대접에 현혹되었던 라힘은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추락한 명예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며, 좋은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던 모습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이처럼 영화 <어떤 영웅>은 좋은 사람으로 대표되는 영웅이 아닌 영웅을 만들어내는 어떤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저희를 선하게 하소서.’가 아닌, ‘악에서 구하소서.’로 맺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 2019년 감독 얀 코마사

그리스도의 몸아멘사이

신부들의 복장인 클러지 셔츠를 입고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생면부지인 교우에게 인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불특정 다수가 운집한 공간에서는 복장을 보고 저를 신부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처럼 인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저는 로만 칼라를 뺀 채 클러지 셔츠를 입어 저의 신원을 가립니다. 반대로 신부의 신원이 드러나야 하는 장소에서는 잽싸게 로만 칼라를 채웁니다.

폴란드 출신인 얀 코마사 감독의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신부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복장이 품은 의미를 개인의 편의에 따라 달리 활용했던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소년원에 복역 중인 스무 살의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 분)을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출소를 앞둔 다니엘은 평소 따랐던 토마시 신부(루카시 심라트 분)에게 출소 후 신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토마시 신부는 다니엘이 전과자 신분이어서 신학교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짚어주며 목공소에서 일할 것을 추천합니다. 출소한 다니엘은 토마시 신부가 주선한 목공소로 향하던 중에 한 마을 성당의 주임신부를 대신해 얼떨결에 신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소년원에서 훔친 클러지 셔츠를 입고서 아슬아슬하게 신부 행세를 이어간 다니엘은, 열정적인 사목과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과 성당 신자들에게 신뢰를 받게 됩니다. 한편 마을은 일 년 전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생긴 상처 때문에 반목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였는데, 다니엘은 기존의 성직자들이 보인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나섭니다.

영화 속 다니엘의 모습은 ()과 속()’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지닌 모호함을 꼬집습니다. 다니엘의 몸을 휘감은 문신과 다니엘이 신부를 사칭하는 데 사용되는 클러지 셔츠는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 한편 마을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극명하게 갈린 상황을 해결하려는 다니엘의 모습은, 마치 다니엘 자신이 이전에 지었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모습처럼 다가옵니다. 이제 다니엘은 가짜 신부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진짜 신부처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문신을 한 신부님>의 원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Corpus Christi’입니다. 성과 속, 선과 악 등을 단순화하여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몸뒤에 이어질 아멘이라는 고백을 기계적인 응답처럼 만들어버립니다. 세상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아멘사이에 놓인 빈 공간을 더욱 묵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아멘사이를 깊은 성찰과 고민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아들’ - 2002년 작,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루마니아 태생의 유다계 작가 겸 인권 운동가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 쓴 자전적 소설 «나이트»는 작가가 경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별히 어린 소년이 교수형을 당하는 모습을 수용소 수감자들이 지켜보게 만드는 대목은 이 소설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교수형을 당하는 어린 소년의 몸이 가벼워 30분이 넘도록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수감자들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으며 절규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자신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저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바로 하느님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아들>,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듯 이어지고 있을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절규 섞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줄 작품입니다. 영화는 목수인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분)가 소년원 출신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재활 센터에서 목공 기술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사회에 온전히 속하고자 애쓰는 청소년들에게 책임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어느 날 소년 프란시스(모간 마린느 분)가 찾아옵니다. 프란시스의 등장에 올리비에는 당황합니다. 프란시스가 바로 5년 전에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살해 당한 아들의 복수를 다짐하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향한 용서의 마음을 감상적 차원에서 섣불리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시선을 덤덤하게 따라갈 따름입니다. 그 시선은 두려움으로 시작합니다. 아들을 죽인 살해범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은 두려움입니다. 이어서 호기심도 드러납니다. 저 아이가 왜 나의 아들을 살해했는지,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등에 관한 궁금증을 품은 호기심입니다. 더불어 원망의 마음, 한탄의 마음, 절규의 마음도 보여줍니다. 이러한 갖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올리비에는 프란시스를 향한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않습니다. 목공일을 배워서 프란시스가 자립하기를 바라는 마음, 진심을 다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내려놓을 수 없는 원망의 마음과 아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시선은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시선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감내한 고통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끌어안은 인류의 죄 안에도 계십니다. 우리 각자의 연약함, 세상 안에 굴레처럼 자리 잡은 부조리, 인류 역사 속 참혹한 범죄의 결과에도 함께 하십니다. 영화 속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복잡한 시선에도 하느님은 함께 하십니다. 본격적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지내며,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민 안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아야 하겠습니다.

 

 

 

[영화칼럼] 영화 장기자랑’ - 2023년 작, 감독 이소현

영원을 태우리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어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에도 결국 아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당신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가수 노사연의 노래 만남을 불러줍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를 통해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해 온 지난 시간이 우연과 필연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게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만남을 무언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기적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아들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어머니는 확신합니다.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연극 활동을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한동안 슬픔과 절망에 빠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들은 자녀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몇몇 취미 활동들을 함께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연극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김태현 연극 감독의 도움을 받아 4·16 가족 극단 노란리본을 꾸린 어머니들은 연극을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되었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기회를 제공받았다며 만족합니다. 그렇게 연극 활동은 어머니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난 자녀들을 우연이나 필연과 같은 일방적인 영역이 아닌 서로 간의 바람으로 이어진 인연과 영원의 영역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노란리본 극단의 세 번째 작품인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합니다. 이 연극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될 단원고 학생들이 여행지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연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기자랑은 연극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게 도착한 제주도에서 친구들에게 선보이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어머니들은 단원고등학교 강당에서 <장기자랑>의 마지막 공연을 펼칩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학부모들이 처음으로 모였던 장소이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열렸던 곳에서, 아이들의 못다 핀 꿈을 연극으로 대신 피워주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영화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우연과 필연의 틀이 아닌 서로 간의 바람으로 묶듯이 담습니다. 이 같은 영화 속 어머니들의 모습은 한계 지어진 우리네 기억에 영원을 새기고 태울 수 있음을, 그리고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영원을 태우는 기억으로 새겨져야 함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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