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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 2015년 작, 감독 ‘피에로 메시나’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08|조회수45 목록 댓글 0

[영화칼럼]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 2015년 작, 감독 피에로 메시나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성경에 드러나지 않은 성모님의 삶을 헤아려봅니다. 아들 예수님을 잉태한 이후부터 겪은 어려움들을 함께 버티고 이겨낸 남편 요셉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전에 겪은 어려움들 이상의 깊은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전했던 예고와 달리 공생활 전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예고의 신빙성을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똑바로 서서 바라보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삶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는 증언으로 대변되며, 이는 성모님의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어미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의 모습 앞에 논리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기 때문입니다.

피에로 메시나 감독의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인 참척(慘慽)’을 진중하게 담은 작품으로, 성모님의 심경을 함께 읽어내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그 심경 안에 담긴 기다림의 정서를 관객과 공유합니다. 영화는 아들 주세페(지오바니 안젤로 분)를 잃은 어머니 안나(쥘리에트 비노슈 라쥬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립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시름에 빠져있던 안나에게, 어느 날 주세페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주세페의 여자 친구 잔(루 드 라주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옵니다. 주세페와 연락이 닿지 않아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안나는 주세페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고 잔을 시칠리아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합니다. 고통스러운 비밀을 품은 안나와, 애인의 무소식에 상심해하는 잔은 주세페가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함께 지내게 됩니다.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안나를 성모님의 모습에 빗댑니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자연스럽게 성모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후 영화 속 안나의 모습은 성모님이 어머니로서 겪었을 인간적인 슬픔을 가늠하도록 이끕니다. 일꾼이 집에 못을 박는 소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상기시키고, 창문들을 암막으로 가려서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저택의 모습은 예수님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펼쳐진 암흑의 상황과 맞닿아있어 보입니다.

시메온의 예언(루카 2,35 참조)에서 드러나듯 성모님이 감내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은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 깊이 새기는 성모님의 태도에 힘입어 고귀한 기다림으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모 성월은 우리에게 밀려오는 사태를 두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마주할 수 있는 태도를 일깨우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렇게 영화 속 안나가 잔에게 주세페의 죽음을 곧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칼럼] 영화 괴물’ - 2023년 작,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늘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하늘이 구름이 떠다니는 곳까지라면 그 높이는 약 10킬로미터라고 할 수 있지만, 푸른 창공을 말한다면 지구 대기까지의 높이인 약 1백 킬로미터라고 답해야 합니다. 만약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 말하는 것이라면 하늘의 높이는 약 1천 광년이라고 말해야 하고, 온 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배경 복사를 말하는 것이라면 높이는 수백억 광년이 됩니다. 하늘의 높이를 10킬로미터라고 답했다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배경 복사를 언급한다 해도 틀렸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다른 하늘의 높이를 이야기하고 있어도 그 하늘이 모두가 이해하는 하늘로 수렴이 가능합니다. 이를 깨닫게 되는 순간,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하나의 이야기를 향한 세 가지의 다른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향한 우리의 편협해지기 쉬운 시선을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첫 번째 시선은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분)에게 학대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의 시선입니다. 이 시선에서 호리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비칩니다. 두 번째 시선은 학급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학생 미나토를 대하는 호리 선생님의 시선입니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관점을 바꿔 호리 선생님의 시선에서 동일한 상황을 복기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영화는 미나토와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 분)의 시선을 담습니다. 이제 두 어린이의 시선을 바탕으로 그간 쌓여온 오해와 숨겨져 있던 비밀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세 가지의 시선을 모두 마주하고 나면 동일한 상황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고 단정되는가를 알게 됩니다. 바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괴물이란 선입견과 편견에 휩싸여 상대방을 괴물로 만들려고 하는 세태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하나의 시선만으로 선과 악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단정 짓는 일이, 그렇게 하늘의 높이를 단 하나의 답으로만 규정지으려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를 보여주고, 이 같은 태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종국에는 관객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에 기반한 편협한 태도와 혐오의 시선이 만연한 이 시대에 신앙이 제시할 수 있는 참된 진리는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를 약속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을 주님의 시선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시선을 염두에 둔 삶의 자세를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으로 삼고 이를 부정하려 드는 흐름에는 열렬히 저항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 자유롭기 위한 신앙인의 과제이자 숙명일 것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원더랜드’ - 2024년 작, 감독 김태용

죽으며 살리라

레오나르도 보프의 저서 성사란 무엇인가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성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특별히 저자는 자신이 책상 서랍에 보물처럼 보관해 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바로 작은 유리 상자에 넣어 둔 담배꽁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담배꽁초는 저자가 독일 뮌헨에서 지내던 시절, 가족들이 보내온 편지와 함께 전해졌는데. 편지에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담겨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피운 마지막 담배꽁초를 편지와 함께 보낸 것입니다. 저자는 편지와 함께 전달된 담배꽁초가 단지 볼품없고 쓸모없는 꽁초의 형상에만 그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저자에게 꽁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현존케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세상의 한 사물이 또 다른 하나,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을 상기시킬 때마다 그것은 성사적 기능을 띤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성사적 사고라 칭하며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이해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습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이별을 성사적 사고를 통해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죽은 사람 혹은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하여 가상의 세계에서 살게 하며 살아있는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인 원더랜드서비스가 일상이 된 근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서 사람들은 휴대전화처럼 주어진 기기의 화면 너머의 복원된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된 이들은 자신이 복원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영화는 딸 바이지아(여가원 분)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서 죽기 전에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여 고고학자의 모습으로 복원된 바이리(탕웨이 분), 사고로 의식을 잃은 남자친구 태주(박보검 분)를 우주인으로 복원해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정인(수지 분)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삼습니다. 이와 더불어 원더랜드 서비스의 수석 플래너 해리(정유미 분)와 신입 플래너 현수(최우식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손주 진구(탕준상 분)를 잃은 할머니 정란(성병숙 분)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서 진구를 복원하는 이야기,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는 용식(최무성 분)의 이야기들도 함께 펼쳐집니다.

영화 <원더랜드> SF적 요소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 않습니다. 극복을 전제로, 욕망 해소를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종국에는 상실감과 무력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오히려 영화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두고 필연적으로 성사적 사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렇게 영화 속 원더랜드 서비스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담배꽁초와 같은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영화칼럼]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 - 1951년 작, 감독 로베르 브레송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1951년 작인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원작으로 삼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사람들이 원하는 종교의 역할과 본질적인 종교의 존재 사이의 갈등을 다룹니다.

영화는 어느 젊은 신부가 북부 프랑스에 위치한 시골 마을의 본당 신부로 부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곳은 그가 처음으로 부임하는 본당으로, 자신이 맡게 된 첫 본당인 만큼 열성적으로 사목에 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같은 그의 열성은 일시적인 평안과 휘발적인 위로로는 참된 구원에 다다를 수 없다는 확신에서 옵니다. 하지만 이전의 본당 신부들과 달리 마을 사람들의 성향을 맞추어주지 않는 주인공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더구나 그의 병약한 몸은 마을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여러 갈등을 빚으며 사목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세상 앞에 당당히 맞서던 마을 의사의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습니다. 삶 한가운데에서 표류하던 백작 부인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서 다시 용기를 얻지만, 그녀는 다음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회의가 주인공 신부의 마음을 점점 더 곪게 만듭니다.

주인공 신부는 결국 위암 판정을 받게 되고, 한 때 신부였지만 이제는 환속한 친구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친구는 주인공 신부가 병자성사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두고 주인공 신부는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주인공 신부의 마지막 모습은,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 · 신앙적 위기를 겪던 그가 제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다가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주인공 신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감자를 깎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으로부터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의 저서 어느 한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묵상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성인은 수도원에서 순무를 깎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처음에는 순무를 깎는 자기 모습이 하찮게 여겨지다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순무를 깎는다면 이는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순무를 깎는 자신에게는 공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순무를 깎는 일처럼 허무와 냉소, 무력감이 지배하기 쉬운 상황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존엄과 사제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신부의 모습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내가 신앙인으로서 이 정도의 모습만 갖추어도 충분하겠지.’라는 식의 교만함 혹은 내가 신앙인으로서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라는 식의 패배주의에 휩싸인 신앙인들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커다란 자극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탄생’ - 2022년 작, 감독 박흥식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신학생 시절, 방학을 앞두고 학기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신부님들께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저 인사말은 사제 성소를 향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사실 신학생에게 방학이란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는 다짐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더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향한 기억은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저에게 순교라는 단어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게 해줍니다. 저 자신이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에 합당한 사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면 살아남았다.’라는 안도로 가득한 일상을 다시금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채우기 위해 마음을 다잡기 때문입니다.

박흥식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탄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을 다룹니다. 영화는 신학생으로 발탁된 뒤 마카오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청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어가는 과정과 순교의 영광을 입게 되는 순간까지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려나갑니다. 그 안에서 박해로 점철되는 조선 천주교회의 실정과 아편전쟁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를 마주한 청년 김대건의 사제직을 향한 열망과 교회와 세상을 향한 애정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그 뜨거워진 마음이 조선인 최초의 사제를 탄생시켰고, 수많은 박해를 겪은 조선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세속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허무그 자체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마카오로 유학을 가 10년의 세월 동안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은 청년 김대건은, 사제가 된 지 13개월 만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부님의 삶을 결코 허무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허무하게 끝나버렸을지 모를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로서의 삶은, 이후 한국 천주교회를 넘어 세계 보편교회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탄생이 보여주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같은 다짐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같은 신부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순교란 결국 세상의 허무를 극복해 나가는 삶의 태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실히 살아가며 묵묵히 걸어 나가는 삶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앙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퍽퍽한 현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이자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부활의 영광으로 승화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밀려오는 허무의 순간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허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남았다.”라는 안도의 한숨 대신에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뜨거운 다짐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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