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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우리의 이름은 MZ가 아닙니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2|조회수55 목록 댓글 0

[도서칼럼] 우리의 이름은 MZ가 아닙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기업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고졸 출신 신참 여직원들을 두고 직장 내 기성세대는 너희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라는 식의 폭력적인 조언을 던집니다. 그 와중에 여직원들의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기성세대에 속한 봉현철 부장(김종수 분)은 후배들이 회사에 저항함으로써 발생한 책임을 오롯이 본인이 감당하기로 결심하고, 이후 후배 직원 보람(박혜수 분)에게 편지로 자신의 속내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옛날이 좋았다.’, ‘옛날이 좋았다.’ 쉽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옛날을 안 살아 본 사람들한텐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지나간 시간이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 또한 누군가에겐 좋은 시절이었으면 좋겠어.”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은 저자 본인을 포함한 미국의 대다수 밀레니얼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섬세하게 비춤으로써, 그들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의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특히 그들의 대입과 취업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베이비 부머 세대의 어린 시절부터의 사회적 상황을 되짚어봄으로써 현재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합니다.

자신을 희생해 가며 얻게 된 대학 학위조차 이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와중에,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보다 2배 증가한 실업률과 고용 인원이 860만 명 감소한 현실 앞에 대다수가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 급급하게 됩니다. 그렇게 임금이나 근무 환경, 근무 시간과 같은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과로를 유능함으로 포장하여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모순에 맞서 밀레니얼 세대가 적극적으로 저항해 나가길 촉구합니다. 사회적 불안정을 개인의 불안정으로 엮지 않고, 기성세대들이 구축해 놓은 세대론에 잠식당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을 당연시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애들이 진단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은 한국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옵니다. 한국 청년들 역시 세대론에 파묻혀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이전 세대를 혐오하는 차원에 머물도록 사회 시스템이 그들을 길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안에서 요즘 애들은 사회 전체가 엠제트(MZ) 세대라 칭하는 요즘 애들을 마주함에 있어 우리 사회의 태도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봉 부장의 시선을 따르길 요청합니다. 엠제트 세대가 마주한 절망을 단순히 그들의 나약함이나 부족함의 결과로 치부하지 않고 이전 세대들의 부덕함이 낳은 결과로 여길 수 있는 사회적 성찰로 이끌 수 있는 그 시선 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년 신자 수가 감소하는 현상을 마주하는 교회의 시선과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교회의 태도에도 요즘 애들이 요청하는 성찰과 쇄신의 과정이 절실해 보입니다.

 

 

 

 

[도서칼럼] 대화가 필요해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에 수록된 단편소설 저녁 산책은 첫영성체 이후 복사단 활동을 시작한 딸 유리를 바라보는 엄마 해주의 마음을 그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유리는 커서 신부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그런 유리에게 남자 어린이들만 대복사를 설 수 있는 복사단 규칙은 커다란 상처로 남습니다.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유리의 바람을 다독여야 할 무엇으로 규정짓는 본당 공동체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 꿈이 꺾인 유리의 모습을 엄마 해주는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아마도 작가는, 커서 신부가 되고 싶다는 여자 어린이의 바람을 두고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어.’라는 식으로 편리하게 매듭짓는 교회 공동체의 일반적인태도가 조금 더 섬세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 꿈이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더라도 그 바람에 담긴 고귀함을 응원하며, 인간은 함부로 가늠해볼 수 없는 하느님만의 방식이 언젠가는 그 꿈을 꼭 이루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 교회 공동체를 작가는 꿈꾸었을 것입니다..

조민아 신학자의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은 여성의 관점으로 가톨릭 신학을 살피며, 젠더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교회의 역할과 복음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저자는 이 모든 갈등과 권력 체계의 뿌리를 가부장제로 규정하고, 이를 여성신학의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고민과 분석을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저자는 성서에서 엄연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교회의 가부장적 역사 흐름 안에서 의도적으로 소실된 여성들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습니다. 이를 위해서 의심의 해석학창조적 상상력’, ‘기억과 재구성등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성서와 교회 전통이 그리는 여성상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필 수 있기를 요청합니다.

이 대목에서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 여성사를 함께 꺼내어봅니다. 한스 큉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배제된 여성의 존재를 박탈당한 절반의 진실로 규정합니다. 그는 교회가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성들의 위치를 회복시킬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힘 있는 이들에 의해 잊힌 존재들에 관심을 두는 것, 힘 있는 이들이 듣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미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우리를 위해 항상 먼 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짊어지는 주님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교회가 쉽게 단정 짓거나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대화와 소통의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주님처럼 먼 길을 기꺼이 돌아갈 줄 아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도서칼럼]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을 추모하며

10여 년 전 즈음, 신학교에서 개최된 어느 학술회 때의 기억입니다. 신학생 스태프로 참여한 저는 교정 입구에서 VIP(귀빈)로 분류된 참가자들의 차량을 VIP들만을 위한 주차 시설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행사 전날에, VIP 참가자 중 한 명인 유경촌 주교님에 대한 주의 사항이 공지되었습니다. 개인 운전기사가 배치된 차량으로 방문하는 보통의 VIP들과 달리 유경촌 주교님은 20년이 넘은 빨간색 소형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오실 예정이니, 혹시라도 차량 상태만 보고서 VIP가 아닐 것으로 예단하여 입구에서 막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주교님은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짐가방을 들고 걸어서 교정을 방문하셨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길을 오르시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반가운 얼굴로 신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시던 주교님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제 마음 한 켠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2019415일 저녁에 광화문 광장에서 봉헌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미사에서 뵈었던 티모테오 주교님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대가 놓인 단상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 중 극히 일부의 인원만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좁았습니다. 그럼에도 미사가 봉헌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의자가 억지로 추가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 구석에서 홀로 제의를 정리하고 계시는 주교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고개를 숙인 채 제의를 정리하시는 주교님의 모습에서 오롯이 미사에만 집중하며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아 하는 의지를 감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유경촌 주교님의 저서 21세기 신앙인에게는 이같은 주교님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청 문헌 중 노동, 경제, 환경, 전쟁 문제 등에 집중한 사회 교리 문헌들을 모아서 작금의 한국 사회의 처지에 맞게 해설한 내용은, 평소 주교님께서 노동자들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어려운 이웃들을 자주 찾아갔던 모습과 맞물려서, 사태를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강조되어 다가옵니다. 또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생태 문제와 맞물려 분석한 내용은 미래 세대를 향한 주교님의 애틋함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렇게 21세기 신앙인들을 향한 주교님의 당부는 주교님께서 몸소 보인 삶의 태도를 보증해 주고, 또 주교님의 검소하고 겸손했던 삶의 태도는 당신이 쓴 글에 진정성을 더해 줍니다.

주교님의 빈자리가 꽤 오래도록 눈에 밟힐 것 같습니다.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을 추모하며, 우리 교회가 주교님의 빈자리를 채워나갈 방도를 치열하게 고민하길 희망합니다.

 

 

 

 

[도서칼럼] 평범함 안에 숨은 특별함 발견하기

교회의 전례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시기는 연중 시기로 전례력 안에서 총 34주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연중 시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하거나 특별한 전례 시기에 속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신비의 어떤 특수한 측면을 준수하지 않는,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 시선을 두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연중 시기를 저는 평범함에 집중하되, 그 평범함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기로 여깁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개인의 일상과 눈에 띄는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세상사의 흐름, 그 안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 우리에게 연중 시기는 한 해의 전례력 안에서 가장 긴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차지해 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평범함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집중하는 성경 속 예수님의 모습에 깊이 집중하는 시기로 연중 시기를 받아들입니다. 그런 연중 시기는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쉬운 우리네 일상 안에서 미세하게 변화되는 지점들을 포착해 내는 섬세함을 제공합니다. 또 변화의 폭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사의 흐름을 이전보다 더 긴 흐름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를 갖추도록 이끕니다. 이처럼 연중 시기는 우리네 평범함 안에 숨어있는 특별함을 깨우쳐 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현정 아나운서의 에세이 유일한, 평범을 읽으며 연중 시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특별히 이렇게 미지근한 나의 삶에, 그 안에서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버둥대는 나에게, 애정을 주고, 인정을 주고 싶다. 이 모습도 만족스럽다고. 그런 마음을 발아래 디디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발걸음을 내딛는 슬로모션이 여기 담겼다.”는 프롤로그 속 작가의 포부가 평범한 삶 속에서 유일함과 특별함을 발견해 내기 위한 의지를 사치처럼 여기기 쉬운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이어서 작가의 평범해 보이지만 유일하고 특별했던 일상속 여러 경험과 체험, 밀려온 감정과 떠오른 생각 등으로 꾸려진 이야기들은 서로의 일을 나의 일처럼 여기며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함, 다르지 않아 보이는 개개인의 평범함 속에 담긴 미세한 차이를 느끼고 그 차이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섬세함 등을 공유합니다. 이처럼 작가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번지는 유일무이한 특별함은,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꾸어 나가는 모든 범인(凡人) 독자들의 마음을 특별함으로 인도합니다.

유일한, 평범에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네 존재를 감싼 평범함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품게 됩니다. 더불어 평범하게만 보이던 세상사의 흐름 속에 내재된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타자의 평범함 안에 감추어진 특별함을 발견해 낼 줄 아는 마음을 갖추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평범하게 흘려 보내고 있을 연중 시기를 향한 마음을 특별하게 다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칼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책임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속 인류의 빛(Lumen Gentium)’이라는 제목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교회 헌장’)14항부터 17항까지를 할애해 가톨릭 신자와 예비신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교 종교인, 자기 탓 없이 복음과 교회를 모르지만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 등을 섬세하게 구분합니다. 교회 헌장은 교회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로 표현된 가톨릭 신자들과 더불어 언급되는 모든 이들에게 나름의 구원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알립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톨릭 신자에 대해 언급하는 14항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교회 헌장은 단순히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교회와 완전한 합체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라는 제목으로 엮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하 사목 헌장’)21항을 통해서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목 헌장은 무신론자들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된 연유가 교회가 보인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살핍니다.

교회가 세상 앞에서 보여야 할 책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60여 년 전 가톨릭교회가 다짐하듯 선언했던 문헌 속 내용들은 교회가 아직 다 하지 못한 책임에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1927년 영국 비종교인협회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종교에 관해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폐부를 찌르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를 대표한 철학자 러셀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를 향한 그의 비판은 굉장히 지엽적이라는 한계를 보입니다. 그의 주장은 근본주의적 색채가 매우 짙은 1920년대 영미 개신교회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그리스도교가 보이는 현실이 백여 년 전 러셀이 펼친 비판에서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지엽적이며 한정적이고 소모적이기까지 한 비판은,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일부 그리스도교 내의 행태들, 곧 교회에 몸만 남아있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는 주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닌 문제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기인함을 알려줍니다. 더불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딱한 시선으로, 교회를 왜곡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교회공동체 스스로가 일조한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 년 전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비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6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보인 자성의 태도는 아직도 유효해 보입니다.

 

 

 

 

[도서칼럼] 세상에 사소한 일은 없다

지난 927, 세계 불꽃 축제가 한강에서 대규모로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불꽃을 감상하기 위해 수백만의 인파가 한강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불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상파TV 채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불꽃 축제를 생중계해 주었고, 심지어 아파트 단지 사이 같은 좁은 틈으로 불꽃이 겨우 보이는 지점을 찾아내어 이를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무고하게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리며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함께 모았습니다. 천여 명의 인원이 참여한 이 집회는, 같은 시간 벌어진 불꽃 축제의 화려함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 두 가지의 풍경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불꽃 축제는 아파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지점까지 발견해낼 만큼, 어떻게든 여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절실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제대로 마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현실마저도 외면하는 세태도 존재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절실할 일상의 안위가 일 년에 한 번 펼쳐지는 불꽃 축제보다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인 것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다수로부터 사소한 일로 취급되어 버리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실존을 뒤흔드는 긴급한 상황일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 소설은 1985년 겨울, 아일랜드의 뉴로스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석탄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빌 펄롱은 성탄을 앞둔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겨온 불편한 진실에 혼자만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성실히 가족을 위해 살아온 그는 자신이 석탄을 배달하는 수녀원의 보일러실에 갇힌 소녀를 발견하고, 그 순간 자신이 그동안 사소한 것이라 여기며 지나쳤던 기척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외면해온 현실이 펄롱에게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됩니다. 고심 끝에 펄롱은 돌아올 불이익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안을 더 이상 사소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전 세계적 관심이 요구되는 참상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상에 집중하는 세태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짚어내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나약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성탄을 앞둔 세상은 주님의 성탄이 품은 본질 대신 조명과 장식 같은 화려함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세상이 몰두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시대에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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