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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성체성사, ‘거룩한 변화와 현존’의 신비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7|조회수33 목록 댓글 0

[전례] 성체성사, ‘거룩한 변화와 현존의 신비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신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1375-1376). 이를 실체변화라고 하는데, 이 변화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감각적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실체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합니다. 이는 성찬례의 빵과 포도주가 단순히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만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몸과 피의 실체로 현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위와 같은 가르침이 현대인에게 매우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앙의 신비’(참조 : 교황 바오로 6, 회칙 신앙의 신비)에 속하는 이 거룩한 변화에 대한 막연한 이해나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사 성제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사적 현존’(참조 : 신앙의 신비34-45)에 눈을 뜰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제자들을 향해 끝까지’(요한 13,1) 한 사랑,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지극한 표현입니다. 빵과 포도주에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행하신 모든 것, 특히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역동적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 온갖 병고와 질병을 짊어진 이들을 향한 가엾은 마음’,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다가가 건네신 따뜻한 말씀과 몸짓, 그들을 향한 자비와 신뢰 가득한 눈길 그 모든 것 안에 그들과 하나 되고자 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배어납니다. 바로 그 사랑을 빵과 포도주에 담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당신 자신을 십자가 죽음의 운명에 내맡기십니다.

아주 작고 미소하게 보이는, 너무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사랑은, 실제로는 세상 안에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오며,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완전히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신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자신을 내어놓는사랑으로, 증오와 원한, 폭력과 불의, 갈등과 다툼은 이제 사랑과 자비, 화해와 용서에 자리를 내어 줍니다. 예수님의 인품을 접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새롭게 밝혀짐을, 무너졌던 삶이 다시 일으켜짐을 경험합니다.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혔던 지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찾는 여정으로 초대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창조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미사 성제를 통해 지금 여기서재현됩니다. 들어 높여지는 빵과 포도주 안에, 떼어 주시는 나눔의 행위 안에 예수님은 현존하시며, 우리들 각자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우리 안에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 내 안에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교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비밀스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간적이며 신적인 사랑과 희생이 우리의 신앙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안에서 현실화되는 구원의 신비, 새로운 창조에 관한 것이며, 주님의 사랑이 다스리는 은총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성체 훼손 사건관련성체 성사에 대한 신앙인들의 자세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현존최상의 흠숭으로 경배해야

 

극단적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WOMAD)에 익명의 누리꾼이 성체를 불태웠다는 글을 게시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주교회의는 천주교 신앙의 핵심 교리에 맞서는 것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매 주일미사 때마다 가톨릭신자들은 성체를 영하지만, 성체 성사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자들도 많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안봉환 신부의 기고를 통해 성체 성사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안봉환 신부는 1997년 사제품을 받은 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교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대학원에서 교부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성체(聖體)를 모독하고 훼손한 일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도를 넘는 일탈이라 하더라도 신자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할 엄청나고 심각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는 신자들에게 지극한 공경의 대상이며 신앙의 핵심 교리이기에 성체를 훼손한 것은 그야말로 신성 모독이고 모든 신자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체 모독과 훼손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신자들에게 이 사건이 성체 성사의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 깨닫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빈다. 교회의 가르침과 문헌을 통해 성체성사에 대한 신앙인들의 자세를 되새겨 보자.

실체 변화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거행하면서 성체 성사를 제정하셨다(마르 14,22-24; 마태 26,26-30; 루카 22,14-20; 1코린 11,23-25 참조). 복음서와 바오로 성인이 증언하였듯이 그리고 교회의 전승에 따라 성찬례 안에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vere), 실제로(realiter), 실체적으로(substantialiter) 친히 머물러 계신다고 교회는 신앙의 진리로 굳게 믿고 있다.

교부시대부터 실제적 현존 교리는 열띤 논쟁의 결과로서 발전되다가 결정적으로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명백히 공언하고 있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 안에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성하신 빵과 포도주의 감각적인 사물의 형상 아래 참으로, 실재적으로, 실체적으로 현존하신다”(신앙 규정 편람(DS) 1636).

실제로 교회는,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통하여 빵과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언제나 믿어 왔다. 다시 말하면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로 한 실체에서 다른 실체로 변한다고 믿는 것이다. 미사 중에 거행되는 이 성사를 통하여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다(신앙 규정 편람(DS) 1652)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 속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실제적이라 불리는 것은, 마치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의 현존 방식이 실제적이 아닌 것처럼 배타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 현존이 탁월한 것이기 때문이다(신앙의 신비39;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 6). 성찬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빵과 포도주뿐이므로, 그리스도 성체의 실제적 현존 교리는 충실한 신앙을 통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성체를 모시는 자세

그렇다면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신자들은 어떤 마음과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성체를 신자들에게 분배하는 이유의 하나는, 성체가 우리를 일상의 잘못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대죄를 짓지 않게 해 주는 방어책이기 때문이다(구원의 성사80). 그러기 위해서 모든 신자는 자신을 깊이 성찰하여야 하며, “중죄를 자각하는 이는 고해성사를 먼저 받지 아니하고서는 미사를 거행하지도 주님의 몸을 영하지도 말아야 한다”(구원의 성사81).

거룩한 미사 거행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는 지극한 정성과 합당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최상의 흠숭으로 경배하며, 최고의 존경을 드리는(교회법 제898, 구원의 성사83항 참조) 마음을 지녀야 한다. 법으로 하자가 없는 세례 받은 신자는 무릎을 꿇거나 서서 영성체할 수 있다. 그러나 서서 영성체할 때는 같은 규정에 따라 성사를 모시기 전에 마땅한 공경을 표시한다(구원의 성사90). 모든 신자는, 바란다면,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실 권리가 있지만, 영성체하는 이가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바랄 경우, 그 사람에게 거룩한 제병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영성체하는 이가 교역자 앞에서 제병을 먹게 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성체를 손에 들고 멀리 나가지 못하게 특히 주의하여야 한다. 신성 모독의 위험이 있다면, 신자들의 손에 성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구원의 성사92). 신자들이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성반을 사용함으로써 거룩한 제병이나 그 조각이 떨어지는 위험을 막아야 한다(구원의 성사93). 성찬의 잔치 중에 신자들에게 표징의 충만함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전례서에 규정된 경우 평신도들에게도 양형 영성체가 허락될 수 있다(구원의 성사100). 하지만 평신도들에게 양형 영성체를 집전하려면 여러 가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하며, 이는 누구보다도 교구장 주교가 판단하여야 한다.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모독할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구원의 성사100-101).

그러나 많은 대중 앞에서 거룩한 미사를 거행할 때에 교리와 규율에 속하는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고려하지 않고 영성체하러 나오거나, 때때로 미사 때에 성체를 받아 모신 부모가 졸라대는 아기에게 성체 일부를 나누어 주거나, 성체를 모시는 척하며 몰래 집으로 가져가거나, 가톨릭신자가 아니거나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잘 모르고 와서 영성체하러 나오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구원의 성사83-84항 참조). 하지만 어느 누구도 법 규범을 거슬러 성체를 자기 집이나 다른 어떤 장소에 가져갈 수 없다. 또한 신성 모독의 목적으로, 축성된 성체를 제의실이나 부적절한 장소 또는 땅바닥에 내던지는 행위, 또는 그것을 모독하거나 불로 태워 훼손하는 행위도 중대한 범죄(graviora delicta)임을 명심하여야 하며 그런 자는 누구든지 규정된 형벌을 받는다(구원의 성사107항 참조).

교회는 성체가 모독되고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갖 위험에서 최대한 예방해야 하며(교회법 제9383항 참조) 교회의 영적 세습 자산과 권리를 보호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런 개별 범죄나 심각하고 중대한 행위에 대해 교회법은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성체를 내던지거나 독성의 목적으로 뺏어 가거나 보관하는 자는,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 성직자는 그 외에도 다른 형벌로도 처벌될 수 있고, 성직자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도 제외되지 아니한다”(교회법 제1367).

나아가 공연이나 공중 연설 중에 또는 공개적으로 유포되는 글이나 기타 사회 홍보 매체를 이용하여, 모독을 공언하거나 미풍양속을 심하게 해치거나 또는 종교나 교회에 대하여 모욕을 표현하거나 증오나 경멸을 도발하는 자는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교회법 제1369). 이런 중대한 범죄는 지체 없이 바티칸 신앙교리성에 알려야 한다(구원의 성사179). 또한 이에 대한 사면은 신앙교리성에 오로지 유보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구원의 성사132항 참조).

따라서 모든 신자는 미사 거행에서든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에서든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특별히 길러야 하고, 신앙인의 어투나 몸짓, 자세와 행동을 통하여 그러한 인식을 보여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18).

우리는 영성체할 때마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굳세게 믿으면서 그분을 받아 모시기 전에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하고 말하며 성체 공경과 신심을 더욱더 고양시켜야 하겠다.

 

 

 

 

성사풀이 (4) 준성사축복, 축성, 구마예식 포함

성사는 아무 곳에서나 받을 수 있나요

 

성사는 어디에서나 거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리는 성당이 성사를 거행하기에 알맞은 장소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1180항 참조)

성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는 임종 세례와 같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합니다. 어른은 자신의 소속 성당에서, 유아는 부모의 소속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교회법 제857조 참조)

견진성사도 성당에서 거행합니다. 그러나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적당한 장소에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성당과 경당 등 거룩한 장소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다만 구역 미사 등 장소를 달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단정한 곳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구 직권자의 허락 없이 일반 개인의 집에서 사사로이 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교회법 제932)

고해성사도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합니다. 사제는 참회자와 고해 사제 사이에 칸막이가 있는 고해소나 대면식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집전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경우 다른 장소에서 고해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병자가 있는 병원, , 요양원 등에서 거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당이나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줄 수 있습니다.

성품성사는 일반적으로 주교좌성당에서 거행합니다. 하지만 사목상 이유가 있다면 다른 성당이나 경당에서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몇몇 교구에서는 성품성사에 최대한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장소에서 거행하기도 합니다.

혼인성사는 혼인 예정자 소속 성당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구 직권자나 소속 본당 주임 신부의 허가를 받아 다른 성당이나 경당 또는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사의 경륜이란 말뜻은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성사를 통해 살아 계시며 활동한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성사의 경륜이라고 부른다. 이 성사의 경륜은 교회가 성사의 전례 거행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얻은 열매를 전하고 나누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1076항 참조)

성사의 경륜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경륜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경륜(經綸, administration)이란 말은 일정한 포부 아래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일을 말합니다.

경륜은 청지기가 집을 관리하고 다스리듯이(루카 16,2-4)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구원 계획을 역사 속에서 이루시고 드러나게 하시는 것으로 구원 경륜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성사의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들을 통해 활동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시는 것을 뜻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오늘날 교회의 성사 안에서 그리고 성사를 통해 당신 구원의 활동을 드러내시고, 현존하게 하시고 전해 주십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오늘날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성사를 통해 실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준성사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성사를 제정하셨고, 교회는 몇 가지 직무와 생활양식, 신앙생활의 다양한 상황들과 유익한 물건 등을 성화하려고 준성사를 제정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668) 이 준성사들은 성사들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영적 효력을 가지며, 삶의 다양한 상황들을 성화시킨다.(전례헌장60)

준성사는 성사처럼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하지만, 교회의 기도를 통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은총에 협력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준성사로는 먼저 사람, 음식, 물건, 장소 등에 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필요한 선물을 청하는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보통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 성호를 그어 축복합니다.

또 축성이 있습니다. 축성은 거룩함이 함께 한다는 뜻으로 지속적 효력을 가지는 축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축성은 하느님께 봉헌되어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되는 사람이나 사물들에 대한 축복을 가리킵니다.

구마 예식도 준성사에 포함됩니다. 구마 예식은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예식입니다. 장엄한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 사제만 할 수 있으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그 지배력에서 구해 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673)

 

 

 

 

성사풀이 (3) 성사, 하느님 은총을 보고 느끼게 해주다

성사 집전자는 누구인가요?

 

교회는 성사를 집전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1136항 참조) 또한 성사를 거행한다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사를 거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 성품을 받은 성직자들에게 맡겨진 특별한 역할들이 있다.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그리스도께서 집전하십니다. 그리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히 봉사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아 그 직무를 수행합니다.

세례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와 신부, 부제입니다. 정규 집전자가 없거나 장애 되는 경우에는 교구 직권자에게서 교리교사 또는 이 임무에 위탁된 다른 이가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임종 직전과 같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당한 의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적법하게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견진성사 정규 집전자는 주교입니다. 보편법이나 특별한 허가로 이 특별 권한을 받은 신부도 이 성사를 유효하게 수여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 집전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성찬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뿐입니다.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의 집전자 역시 사제입니다.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축성된 주교입니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들과 달리 집전자와 주례자가 다릅니다.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혼인 계약을 맺는 신랑 신부입니다. 혼인 주례자는 그 자리에 입회해 혼인 당사자들의 합의와 표명을 요청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주교와 본당 신부입니다.

성사를 거행할 때 물질들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성사 거행 때 쓰이는 물질적인 도구와 행위들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을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언어, 몸짓, 동작, 그리고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에 인간을 참여시키시고자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이것을 성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사는 하느님의 영적인 은총을 드러내 보이고자 물과 기름, 빵과 포도주와 같은 물질적 도구와 행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145항 참조)

예를 들면, 교회가 세례성사를 베풀 때 사용하는 물은 모든 죄를 씻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드러내며, 견진성사 때 사용하는 기름은 성령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과 축복을 드러냅니다.

성사를 거행하는 특별한 시기가 있나요?

성사는 시기적으로 어떤 특정한 때나 정해진 시간에만 거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성사의 의미를 더 잘 드러내고 능동적으로 성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와 때를 권고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어느 날이든 거행될 수 있지만, 교회는 주일이나 파스카 성야에 거행하도록 권장합니다(교회법 제856조 참조). 다만 유아는 출생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례를 받아야 하므로 본당에서는 유아세례를 위해 따로 정기적인 날을 정합니다.

견진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입니다. 따라서 본당에서 견진성사는 주교가 봉헌하는 미사 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견진성사의 경우에는 어느 사제나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본당에서 모든 신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거행합니다. 사제는 사목상 필요하다면 평일에는 세 번까지,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네 번까지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본당에서 일반적으로 미사 전ㆍ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사제는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청하면 언제든지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병자성사 예식 중에 고해성사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병자성사는 병이나 노령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지기 시작한 신자들에게 거행됩니다. 따라서 사제와 병자의 친지들은 적절한 때에 병자들이 바로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성품성사는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장엄 미사 중에 거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목상의 이유가 있다면 평일에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혼인성사는 원칙적으로 미사 중에 거행됩니다. 그러나 사제는 사목상 필요하다면 미사 없는 혼인 예식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단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혼인성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성사풀이 (2) 합당한 자세로 준비한 만큼 결실맺는 성사

성사는 언제나 유효한가?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으므로,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한 만큼 더 참된 결실을 얻게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1128·1131항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성사를 세우시고 그 성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정당하게 거행된 성사는 언제나 유효하며, 성사의 은총은 틀림없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사는 성사를 집전하는 사람이나 성사를 받는 사람의 개인적 신앙의 깊이나 도덕적 삶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유효합니다. 이를 성사의 사효성(事效性)’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사에 참여하는 사제와 신자들의 마음가짐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모든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이기에 그 자체로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하지만 성사는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사를 받는 사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성사를 준비한 사람은 참된 결실을 얻습니다. 이를 성사의 인효성(人效性)’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마음으로 거룩한 전례에 참여해 주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합당한 신앙의 자세로 성사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성사와 개인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기도는 뗄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 요소와 공동체적 요소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2596항 참조) 성사는 공동체의 측면이 강조된 공적 예배다.

전례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적 성격을 띱니다. 성사와 개인 기도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공동체성에 있습니다. 성사는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공적 예식의 거행을 통한 기도입니다. 이와 반대로 개인 기도는 개인 차원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성사와 개인 기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성생활은 오로지 거룩한 전례의 참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또한 자기 골방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며, 더욱이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전례 헌장12)

이렇게 교회는 성사생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개인 기도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 기도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전례, 믿음과 희망, 사랑의 덕과 성사입니다. 개인 기도는 그가 바치는 기도를 통해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과 그 후에 그 전례를 내면화하고 그 전례에 동화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개인 기도는 전례생활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사와 개인 기도가 조화롭게 서로를 도와주는 가운데 하느님께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는 성사가 없나요?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선물이며 신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만 성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의 성사로서 자신을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도구로 내어주시면서 그 계속되는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 사업을 계속해 나아갈 임무를 받았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거행하는 전례들 중에서 주님이 세우신 온전한 성사가 일곱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곱 성사는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존재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교회의 성사입니다.

또한, 성사는 신앙을 전제로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없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성사란 당연히 있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 안에서는 어떨까요? 동방 정교회는 일곱 성사를 모두 인정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성공회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거행된 세례는 그 유효성이 의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5559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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