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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 전 존재를 활용하여 독서하라!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7|조회수49 목록 댓글 0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 전 존재를 활용하여 독서하라!

렉시오 디비나를 언급함에 있어 귀고 2세의 문헌이 중요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첫 번째 단계인 성경 독서는 고대 수도승들의 전통에서 행했던 성경 독서의 수행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본인은 귀고가 주장한 독서의 개념보다는 더 원천적으로 고대 수도승들의 전통을 말해주는 문헌들에서 그 근거를 가져오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고대의 수도승들은 성경을 읽을 때,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눈과 머리만 이용해서 대충 읽거나 빨리 읽지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눈으로 본 내용을 입술로 작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직접 귀로 듣고 또 그것을 기억과 마음에 간직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활용하는 능동적인 독서의 수행이다. 사실 고대에서 의사들은 종종 환자들에게 걷고 달리는 운동과 같은 하나의 훈련으로서 독서의 처방으로 내주기도 하였다. 그것은 독서가 인간의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전인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그 옛날 독서란 오늘날과 같은 묵독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어느 날 에티오피아 고관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필리포스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이사야서를 소리 내며 읽고 있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즉 그 당시 독서는 소리 내어 읽고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사도 8,26-30 참조)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가 나온다. 어느 날 세 명의 수도승이 한 원로를 찾아가서 저마다 자기들의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한 형제가 스승님, 저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암기하였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자 원로는 즉시 그에게 어지간히 시끄러웠겠소!”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당연히 성경을 소리 내어 읽고 듣고 암송하는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시대에도 일반적으로 독서는 소리 내어 행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록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가 암브로시우스 성인을 방문했을 때, 그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혀로는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 책장을 젖히고, 마음으로 그 뜻을 새겨나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전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도 규칙서(RB)에서 점심 식사 후에 형제들은 침묵 중에 휴식을 취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독서를 원하는 사람은 독서를 하되 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RB 48,4-5) 이것은 그 당시 독서한다는 것이 작게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눈으로 보고, 본 내용을 천천히 입으로 작게 소리 내고, 그리고 소리 낸 내용을 다시 자신이 귀 기울여 듣는, 전 존재를 활용한 독특한 독서 수행이 바로 고대 수도승 전통에서 전해 준 훌륭한 영적 유산이다. 이것은 성경 독서 시간에 본문을 구조 분석하는 방법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2)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들으라

 

현대의 영성가 중의 한 분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트라피스트 수도승 마이클 캐시(Michael Cas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경 독서는 마치 시집을 읽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성경 본문을 천천히 읽고, 우리가 읽은 것을 맛보고, 그 본문을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길 필요가 있다.”

, 성경을 재빨리 읽지 말고 시집을 읽듯이 천천히 소리 내어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음미하며 읽으라는 권고이다.

독서학에서는 색독(色讀)과 체독(體讀)을 구분한다. 색독이란 표현된 글의 문자적 의미만 읽는 것을 말하지만, 체독이란 표현된 것 이상의 내포적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며 읽는 것을 말한다. 즉 책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천천히 올바르게 읽고, 또한 온몸으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도 전통에서 전해준 렉시오 디비나에서의 독서는 바로 이렇게 꼼꼼히 온몸과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체독의 경지를 말한다. 체독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을 때, 천천히 글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사실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자의든 타의든 빨리빨리 움직여지고 있으며,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빨리! 빨리!’ 문화에 휘둘려 들어가게 된다. 인간에게는 생체 리듬이 있다. 걷는 것이나 먹는 것을 평상시와 달리 빨리하게 되면 신체 기관이 즉시 거부반응을 보여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빨리 읽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막을 수가 없다. 책을 재빨리 읽는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갈 때의 묘한 힘과 지혜를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은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점은 반드시 성현의 말씀과 행동을 마음으로 읽되, 푹 잠겨 그 참뜻을 구해야 한다. 설렁설렁 넘어가고 벙벙하게 외울 따름이라면 귀로 듣고 입으로 옮기는 쓸데없는 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으로 책을 잘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아주 천천히 읽고,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렇게 천천히 읽다 보면 가끔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문득 황홀한 기분에 젖어 들어갈 때가 있다. 만약 빨리빨리 건너뛰면서 읽는다면 우리는 단 몇 분, 몇 초의 이러한 기쁨조차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바쁜 일상에서 천천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책 자체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참된 맛을 한껏 맛볼 수 있고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고대 수도자들의 독특한 독서 방법은 성경의 참된 맛을 어떻게 맛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던져주고 있다.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3) 렉시오 디비나와 들음

 

초기 수도승의 작품들을 보면 독서(lectio)와 들음(auditio)이라는 두 용어는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곤 하였는데, 그것은 성경 독서가 말씀을 읽으면서 동시에 귀 기울여 듣는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수도승들의 독서는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읽는 수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귀 기울여 듣는 수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성경 독서 시간은 들음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잘 듣는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영성 생활에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성 베네딕도는 그의 저서 규칙서(RB)에서 첫 마디를 들어라, 오 아들아!(Obsculta, O Fili!)”로 시작하고 있다. 성인은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규칙서전체에서 드러나는 침묵과 잠심(潛心)의 분위기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 말씀에 철저히 귀 기울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수도승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 때 지혜는 시작되며 바로 이때 마음과 정신은 개방되고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수용력을 갖게 된다. 아르스의 체사리우스 주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 말씀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마치 우리가 성체를 소홀히 하여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하느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들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신명 6,4 참조) 또한 시편 저자 역시 이스라엘아, 부디 내 말을 들어라.”(시편 81,9)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도 한결같이 이러한 들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즉 하느님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고 그분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묵시록에서도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묵시 13,9)라고 강조하고 있다.

개인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느님 말씀이 선포될 때, 바로 그 순간 하느님 말씀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Hic et Nunc)” 새롭게 다시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선포되고 있는 그 말씀에 온 마음으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말씀은 내 안에서 새롭게 울려 퍼지고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은 성경 독서 시간에 친히 각 사람에게 말을 건네시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도자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 독서 시간에 깨어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자 하였기에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신비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었고, 또한 실제적으로 수도 생활 안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 독서 시간에 성경을 작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동시에 귀 기울이는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5) 수도 전통에서의 묵상인 되새김

 

수도자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기억하며,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씹음으로써 성경 말씀에서 충만한 영적 자양분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가 바로 반추(ruminatio)이다. 이것은 마치 소나 낙타가 음식을 대충 저장하였다가, 그것이 살과 뼈에 스며들 때까지 그것을 천천히 되새김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본문을 되씹음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맛보고 또한 그 본문의 깊고 충만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러한 되새김은 수도 전통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영적 수행 중 하나였다.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 압바는, 우리 모두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음식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그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하여서, 마침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그 음식을 집어넣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각자의 소임지에서나 혹은 혼자 있을 때나 언제나 성경 말씀이 수도자들의 마음 안에서 계속 암송되기를 바랐다. 성 파코미우스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오스도 수도원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수행이 멈추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 역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적인 묵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書庫)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암송인 묵상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형성할 때까지 스스로 열심히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묵상은 말할 것도 없이 되새김 수행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복음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되새김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였다. 체사리우스 주교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수도자의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성 안셀모는 되새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아주 자세히 묘사하였다.

당신은 그분 말씀의 벌집을 씹고, 그 맛을 빨아들여라. 그것은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하다.”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한 하느님 말씀의 벌집을 되새김 수행을 통해 씹고 빨아들이라는 권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성경 본문을 암송하고 되씹음으로써, 헛된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말고 온갖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어, 하느님 말씀 안에 온전히 머물러야 한다. 이미 고인이 되신 장익 주교님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경은 안경을 쓰고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고대 채록자들 역시 생활이 바빴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알아듣고 구원을 찾았던 이들입니다.”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6) 반추기도와 쪽지 수행

 

우리는 앞에서 수도승 전통 안에서의 묵상이라는 되새김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의 어떤 구절을 반복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반추동물이 삼킨 음식물을 토출, 재저작, 재혼합, 그리고 재연하하여 완전히 자신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일련의 과정처럼 묵상에 속하는 반추기도는 하느님 말씀을 되뇜, 혹은 암송을 통해서 온전히 나의 것이 되게 만드는 독특한 수행이다.

반추동물이 음식물을 섭취할 때 일단 그것을 삼켜서 제1 ()에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다시 토출하여 되새김하듯이, 우리 역시 하루 중 아침의 적당한 시간에 성경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기억하거나 쪽지에 일단 기록해서 간직해 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의 기억이나 쪽지는 반추동물의 제1 위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했다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응답해야 할 많은 일과 바쁜 일정 속에 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성경 독서를 하고 말씀을 분명히 기억 속에 간직하였지만, 일상에서 떠올리려고 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억이란 100% 신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 쪽지 수행을 하도록 특별히 권고하고 싶다. 매일 성경 독서를 하고 끝마칠 때는 그 말씀들 가운데 하루의 영적 양식으로 삼을 한 말씀을 쪽지에 적고, 일상에서 동행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시간이 날 때, 일터에서나 휴식 시간에 혹은 홀로 산책할 때 쪽지에서 그 말씀을 떠올리고 천천히 되새김할 수 있다. 또한 저녁의 적당한 묵상 시간에 그 구절을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반추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하느님 말씀을 기억이나 쪽지를 통해 떠올리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되뇌는 수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그 말씀은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메시지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결론

교회는 언제나 성전(聖傳)과 동시에 성경을 신앙의 최고규범으로 늘 간직하여 왔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성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매일 가까이하고, 성경을 읽고 맛 들일 때 비로소 성경 말씀은 우리 안에서 살아 현존하게 된다. 이에 수도승 전통에 근거한 성경에 대한 능동적인 독서와 반추기도의 항구한 수행은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 그 자체로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의 영성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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