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5) 신자로서 알아두면 좋을 영성체 상식 I
미사 중 사제가 성체를 모시면, 본격적으로 모든 교우가 성체를 직접적으로 모시는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하고도 당연한 이 영성체 시간에 생각보다 크고 작은 모습으로 인해 분심이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십니다. 2주간에 걸쳐서 신자로서 알아두면 중요한 영성체 상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 영성체를 모실 때 어디에 예를 표해야 합니까?
성체를 영할 때, 먼저 성체를 모시기 위한 행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앞사람이 성체를 모실 때 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성체를 모시기 위해 자신의 차례가 되면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쳐 들고 성체가 모셔진 성합과의 거리에 유의하여 손을 내밉니다.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성체를 들어 보이면 성체를 응시하며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성체를 받아 들고 양옆으로 몇 발 나와 오른손으로 성체를 집어 모십니다.
성체를 영하고 난 후에는 사제나 감실, 제대에 절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성체 행렬 중에 요구되는 인사는 성체를 모시기 직전 그리스도의 몸 앞에서만 절을 하면 됩니다. 그 외에는 굳이 인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성체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 침묵 중에 그리스도와 일치의 시간을 갖습니다.
◇ 영성체를 모시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앞서 소개했던 글이지만 다시 소개해드립니다. 4세기 말 예루살렘의 주교학자 성 치릴로는 그의 저서 ‘신비의 교리 강화’에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성체를 영할 때에는 오른손을 내밀고 그 위에 왼손을 얹는다. 마치 황제를 맞이하듯이 성체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 하고 사제가 말하면 ‘아멘’ 하고 대답한다. 그 다음 손 위의 성체께 절하고 눈으로 응시한다. 그러고 나서 성체를 입으로 가져가 영한다.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손으로 모실 수 있지만 특별한 사유, 예를 들어 아기를 안고 있다거나 손을 다쳤을 경우 입으로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하는 점들이 성체를 모시기 위해 교회가 제시하는 합당한 자세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방법은 오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전달되어 온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는 외적인 자세뿐만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영성체를 모실 때, 성체를 공경하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서는 내적 자세도 중요함을 의식하고 다가섰으면 합니다.
◇ 성체를 오른손으로 받아도 됩니까?
위에서 소개해드린 성 치릴로의 ‘신비의 교리 강화’에 나와 있는 내용이 지금까지 교회에 이어져 온 전통이라면 오른손으로 받느냐, 왼손으로 받느냐의 명확한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실용적인 방법을 찾느라 교회의 전통을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만일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입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2025년 8월 10일(다해) 연중 제19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세종도원 주임)]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6) 신자로서 알아두면 좋을 영성체 상식 II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영성체 상식에 대한 부분을 간단히 나눠보고자 합니다.
◇ 성체 훼손에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가끔 본당에서 성체의 일부 조각이 성전에서 발견되거나, 훼손된 성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중대한 사건에 해당됩니다. 교회법에서도 성체 훼손에 대한 내용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체를 내던지거나 독성의 목적으로 뺏어 가거나 보관하는 자는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교회법 제1382조 1항)
“신성모독의 목적으로,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치우거나 보유하는 행위, 또는 그것을 버리는 행위도 사도좌에 사면이 유보된 ‘중대한 범죄’임을 명심해야 한다.”(구원의 성사, 132항)
거룩함을 더럽히는 행위나 성체를 모실 수 없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경우, 그리고 성체를 쪼개는 행위나 보관의 목적으로 숨기는 행위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교우분들 중에 이러한 목적으로 일부러 훼손하시려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사 중에 성체 훼손에 대한 부분을 방지하기 위한 우리들의 관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성체를 가져가는 행위를 본다면 누구라도 즉각적으로 성체를 모실 것을 요구하고, 훼손된 성체의 조각을 발견한다면 바로 사목구 주임 사제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성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일은 비단 사제에게만 유보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지킬 수 있는 중대한 소임이기도 합니다.
◇ 성체를 모시고 기도해야 합니까? 성가를 불러야 합니까?
가끔 성체가 입에 모셔진 상태에서 성가를 부르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영성체 성가가 중요하지만, 성체가 훼손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성가를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모습입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는 바로 성가를 부르기보다는 잠시 침묵 속에 주님과 하나 됨을 의식하고, 성체가 다 모셔진 다음에 성가를 불러야 합니다. 만일 입에 성체의 일부가 남아 있는 상태라면 말을 하거나 성가를 부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성체를 다 모신 다음에 훼손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성가를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영성체 상식입니다.
◇ 성체를 모시고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합니까?
사제가 성작을 닦고, 정리하는 동안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은 침묵 속에 기도합니다. 미사 경본에는 ‘감사 침묵 기도’라는 명칭을 통해서 이 시간의 침묵을 강조합니다. 로마 미사 경본에서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시간의 기도의 핵심은 ‘감사와 침묵’입니다. 나에게 오신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리고, 그 감사함을 통해 찬미를 드리는 기도가 이 시간에 봉헌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몇 차례 요구되는 침묵 시간이 있지만, 의미로 보아 영성체 후 침묵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몇몇 교우분들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지 모릅니다. 주님께 감사할 일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마주한 상황이 어떻든, 지금 바로 주님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감사 침묵 기도의 명칭은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7) 우리는 왜 미사를 봉헌해야만 할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제는 성호경으로 거룩한 제사에 모든 이를 초대합니다. 이러한 미사는 주일과 평일 구분 없이 날마다 성전에서 거행됩니다. 이 미사는 사제 홀로 바치는 것이 아닌, 하느님 백성이자 하느님 자녀들인 모든 교우와 함께 거룩한 만찬으로 봉헌합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질문을 가져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왜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가? 주일미사 또는 평일미사 상관 없이 신앙인으로 미사가 주는 은총은 무엇이기에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가?
우리는 미사가 중요한지 알고 있지만, 이 답에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당연한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미사는 구원의 역사 전체를 이끄는 사랑의 계획, 곧 하느님의 신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미사는 사랑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신앙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사랑의 만찬인 성체성사를 통해서 각자의 삶 속에서 이 신비를 체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신비를 통해서 살아갈 힘을 선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미사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온 정신과 마음으로 사랑과 구원의 계획 그리고 그 신비를 의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큰 은총의 선물을 깨달으며 다가설 때, 성사가 담고 있는 온전한 신비를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선물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에서 우리에게 착한 목자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참된 사랑으로 우리를 맞이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사 안에서, 그분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서 더욱더 주님과 일치되는 은총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선하고 아름답게 해 주십니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한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왜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가? 신앙인으로 미사가 주는 은총은 무엇이기에,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강조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미사 안에서 주님과의 기쁨의 만남을 완성하고, 그 만남을 통해 주님께서 일러주시는 참된 사랑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미사 중 자비이시며 사랑이신 그리스도와 만남이 이루어짐으로써 은총을 받습니다. 따라서 미사를 참례하면 할수록 우리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일치에로 나아갈 은총을 받습니다.
미사, 결코 어려운 전례나 예식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만남, 그리고 은총을 받는 통로, 그리고 사랑의 신비를 의식하며, 적극적으로 주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봉헌해 나아갑시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4) 미사 예물(지향)? 봉헌금? 교무금?
미사 예물 : 미사를 거행하거나 공동 거행하는 어느 사제든지 교회가 승인한 관습에 따라 특정 지향대로 미사를 바쳐 주도록 제공된 예물을 받을 수 있다. 자기의 지향대로 미사를 바쳐 주도록 예물을 제공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교회의 선익에 기여하게 된다.(교회법 945, 946조 참조)
봉헌 예물(봉헌금) : 예물 봉헌. 이때, 흔히 행렬을 지어,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바친다. 사제는 이 빵과 포도주를 성찬의 희생 제사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치는데, 여기에서 이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지금은 화폐로 봉헌하지만, 미사 때 쓰일 빵과 포도주를 직접 봉헌한다는 의미는 퇴색될 수 없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50항 참조)
교무금 : 교회 유지를 위해 교우들이 의무적으로 교회에 바치는 헌금을 말하며 그 기원은 구약의 십일조에서 유래한다. 교무금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단위로 해서 분량이 책정되고, 소속본당을 통해 정기적으로 징수되어 교구에 전달되는데, 교구장은 이를 교회 유지와 교회 사업을 위해 사용한다. 또한 교무금에 대한 의무는 열심자와 냉담자, 성사받는 자와 받지 않는 자의 구별 없이 모든 교우에게 부여된 의무이다.(가톨릭대사전, 교무금 중에서)
우리가 소속된 본당에 봉헌하는 예물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미사 지향을 넣으면서 봉헌하는 예물과 주일미사마다 봉헌하는 봉헌금, 그리고 교무금이 대표적입니다. 각각의 의미는 위에서처럼 정의합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봅시다.
우선 미사 예물입니다. 미사가 ‘제사’라는 관점에서 어느 지향을 봉헌하게 되는데, 제물 없는 제사가 없듯이 지향을 봉헌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를 우리는 미사 예물을 제대에 올림으로써 제물로 봉헌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인 사제는 미사 지향을 공동체 전체가 기억하자고 초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미사 지향을 넣는다고 해서, 그 미사를 자신의 지향으로 독점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미사이지만, 그 미사 중에 구체적으로 기억하고자 원하는 지향을 함께 깃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헌 예물, 봉헌금입니다. 주일미사와 평일 미사의 여러 가지 차이 중 하나가 바로 봉헌금의 유무입니다. 특별히 주일미사에서는 반드시 봉헌금을 봉헌합니다. 이는 미사 봉헌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성찬전례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하는 거룩한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변화할 ‘빵과 포도주’입니다. 그래서 미사를 참례하는 신자들은 변화할 빵과 포도주를 직접 봉헌함으로써 그 거룩한 제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무금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신자들의 의무로써 본당과 교회의 유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구약의 십일조에서 유래되었으며, 본당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봉헌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정리하자면, 미사 예물은 자신의 지향을 담기 위한 ‘제물’을 뜻하고, 봉헌 예물(봉헌금)은 미사의 신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뜻하며, 교무금은 하느님 백성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공유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6) 성찬례와 구원의 희생 제사
성찬례를 통해서 강생의 신비가 성사적으로 재현되는 것처럼, 성찬례는 예수님의 구원을 위한 봉헌 행위도 성사적으로 현재화합니다.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것처럼, 예수님의 몸으로 세상은 생명을 얻게 됩니다(요한 6,51 참조). 예수님은 당신 살을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생명을 얻도록 내어주십니다. 구원의 희생 제사의 본질적인 부분인 성찬례를 통하여 세상은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의미는 성혈을 축성하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여기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은 단순히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셈어식 표현으로 ‘모두’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치신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바쳐진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에게 새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 성자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이며 십자가상의 희생 제사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은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음식으로 내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희생 제사의 결과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신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성사적인 동시에 상징적으로 구원의 희생 제사를 재현합니다. 이러한 성찬의 거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희생하시고 온전히 성부께 봉헌하신 희생 제사의 구원 업적을 현존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특징짓고, 십자가상 희생 제사에서 충만함에 이르렀던 봉헌 영성은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에도 꼭 필요합니다. 성찬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결합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고통이나 불안으로, 우리는 늘 죄의 유혹 앞에 흔들립니다. 하지만 성찬례에 참여하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죄가 부추기는 ‘불순종’을 거스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힘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인 성찬례 안에서 예수님의 ‘순종’에 결합한 신앙인은 부활의 신비 안에서 완성되는 구원을 희망합니다. 성찬례 안에서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파스카 신비를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양식 곧 참 생명을 주는 양식이 됩니다. 이처럼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인 동시에 그 희생 제사가 부활의 신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바쳐진 슬픈 봉헌 행위를 기념하면서도 기쁨으로 거행하게 됩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합니다. 동시에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 주시는 주님 부활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줍니다. 성찬례는 인간이 겪는 크고 작은 고통이 끝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보장해 주는 구원의 기쁨을 기억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상 희생 제사가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참된 행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성찬례는 끊임없이 기억하도록 합니다.
성찬례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이 부활의 기쁨에 이르는 길임을 믿고 희망하고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아 줍니다. 지금 앞에 놓인 고통에 슬퍼하기보다, 다시 일어날 힘과 은총을 구원의 희생 제사인 성찬례에서 얻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희망하며 구원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알기 쉬운 전례 상식] 성체 분배?
얼마 전 다른 교구에서 전입해 온 베드로 씨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본당 신부님께 물었단다.
“신부님, 이전 교구에서 비정규 성체 분배 교육을 받고 주일 미사 때마다 본당 신부님을 도와 교우들에게 성체를 분배해 드렸는데, 이 본당에서도 그렇게 해도 될까요?”
○○ 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우리 교구 내 어느 본당으로 소임지를 옮겨온 수녀에게 그곳 본당 신부님이 교구에서 시행하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 교육을 다시 받도록 권했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신부님, 이전 교구에서 비정규 성체 분배 교육을 받았는데 이 교구에서도 다시 받아야 하나요?”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영성체 예식 때 정규 성체 분배자는 사제(주교, 신부, 부제)입니다.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제의 고유 의무입니다.
오늘날 지역 공동체의 특징과 형편에 따라 규정된 예식은 없지만, 효과적으로 인정을 받게 하고자 공동체 앞에서 하는 관할 권위의 위임을 통해서 공적으로 직무를 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비정규 성체 분배 직무가 그것입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시종자와 성체 분배권을 받은 평신도를 말합니다. 하지만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교회가 예외적으로 수여하는 것이므로 보조적인 직무일 뿐만 아니라 비정규적인 직무입니다. 특히 1)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외에 성직자, 곧 사제와 부제가 없을 때, 2) 성직자들이 있어도 허약한 체질이나 고령 때문에 실제로 성체를 분배하지 못할 때, 3)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이 너무 많거나 정규 성체 분배자들이 부족해서 영성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때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거행 중에 본당 신부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 성체 분배자가 있더라도 사제의 성체 분배 의무가 전적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 중에 신자 수가 많을 때,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표현을 확대 해석하여 본당 신부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습관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성체 분배권을 받을 수 있는 평신도의 순위로는
1) 신학교에서 시종직과 독서직을 받은 신학생,
2) 수사와 수녀
3) 40세 이상의 남녀 평신도 순서입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권한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중에만 본당 신부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미사 밖(예를 들어, 공소나 병원 등)에 성체를 분배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따로 교구 직권자로부터 명시적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 전례를 집전하는 성체 분배자는 말씀 전례 중에 성체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성체 분배자가 성체를 현시하거나 다시 감실에 모시려면 교구 직권자로부터 따로 권한을 받아야 합니다.
성체 분배자가 소속 교구를 벗어났을 때에는 해당 주교로부터 다시 권한을 받아야 합니다.
성체 분배자가 품위에 어긋나는 경우 본당 신부는 성체 분배를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교구장이 인정한 의복을 입고, 미사 공동 집전 사제가 하듯이 스스로 성체를 모실 수는 없습니다.
사제의 손으로 미사는 거행되고 성체는 분배되며, 사제의 손으로 교우는 강복받고, 사제의 손으로 사물은 축복됩니다.
어느 본당 신부님은 주일 미사 때마다 많은 교우들에게 성체를 직접 분배하십니다.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자주 마음에 새기면서.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3) 성전의 이해 : “사제석”에 대해서
주례 사제의 좌석은 회중을 주도하고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자리는 제단의 높은 데에 있으면서 신자들과 마주 보는 곳이 가장 좋다. 그러나 회중과 사제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소통이 어렵거나 제대 뒤 가운데 부분에 감실이 있을 때처럼, 성당의 구조나 다른 설비 때문에 방해를 받으면 달리 할 수 있다. 그리고 왕좌 같은 형태는 모두 피한다. 주례석은 전례에 쓰기 전에 《로마 예식서》에 제시된 예식에 따라 축복한다.
또 제단에는 공동 집전 사제들을 위한 좌석과 공동 집전은 하지 않지만 가대복을 입고 제단에서 거행에 참석하는 다른 사제들을 위한 좌석도 마련해 놓는다. 부제석은 주례석 곁에 마련한다. 다른 봉사자들을 위한 좌석은 성직자석과는 분명히 구분되면서 그들이 맡은 임무를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10항)
그동안 전례의 공간으로 “제단, 제대, 독서대, 감실”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해 볼 공간은 바로 “주례석, 사제석”입니다.
주례석에 대해서 알아보기에 앞서, 그 본연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주교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모든 교구에는 반드시 “주교좌 성당”이 있습니다. 우리 대전교구 역시 주교좌 성당이 있는데, 대전 대흥동 성당에 주교좌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교좌 대흥동 성당>이라고 부릅니다. “주교좌 성당”, 곧 교구장 주교의 좌석이 제단에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교구장 주교가 공적으로 거행하는 전례 대부분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는 이유는 바로 주교좌가 있는 곳이면서, 상징적으로 우리 교구 사목의 지향점이 이곳에서 선포된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습니다.
“주교가 신자 공동체 전체를 사목한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주교좌는 하나만 설치하고 고정시켜야 한다. 신자들이 주교를 잘 바라볼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주교좌 아래에 단을 몇 개 설치한다. 주교좌 위에는 천개(天蓋)를 세우지 않는다. 다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예술 작품은 소중히 보존한다.”(주교예절서 47항)
주교좌는 교구에 한 군데에 지정되지만, 주교좌 아닌 다른 본당들은 주교좌 대신 주례좌, 주례석, 사제석이 제단에 위치합니다. 흔히 우리가 제단을 바라보면, 전례 중 사제가 어느 일정한 좌석에 가서 앉게 됩니다. 여기서의 사제석, 주례 사제의 좌석은 단순히 의자 이상의 전례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말하듯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지닌 곳입니다. 그래서 유독 높은 자리, 그리고 잘 보이는 자리, 그리고 그 제사장의 자리라는 의미에서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침에 의하면, 너무나 “왕좌”의 형태는 피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주례석 또한 합당한 축복 예식을 거행해야만 합니다.
정리하자면 주례석, 사제석은 사제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제의를 입고 성사가 집전되는 동안 앉는 자리를 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주례석, 사제석을 통해서 기도가 선포되고, 찬미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