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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삶과 신앙] “진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교부” 로마의 히폴리투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8|조회수49 목록 댓글 0

[교부들의 삶과 신앙] “진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교부로마의 히폴리투스

 

3세기 초 로마 교회는 외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긴장과 혼란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 했던 이들과 현실 앞에서 흔들렸던 이들 사이의 갈등,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열망과 죄인을 품어야 한다는 자비 사이의 긴장이 공동체 안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등장한 교부가 바로 히폴리투스입니다.

히폴리투스는 170년경 태어나 235년경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 로마 교회의 중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성경 해설과 교리 논쟁, 그리고 이단 논박에 관한 여러 작품들을 남겼으며, 특별히 교회의 사도적 전통과 신앙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히폴리투스가 살아가던 시대의 교회는 단순히 외부의 박해만 겪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내부에서도 여러 이단 사상들이 등장하여 자신들만의 특별한 지식과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였습니다. 특별히 영지주의 계열의 사상들은 복음을 철학적 사변과 신비주의로 바꾸려 하였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에 맞서 히폴리투스는 모든 이단 논박(Refutatio omnium haeresium)이라는 작품을 집필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이단들을 비난하는 책이 아니라, 당시 여러 철학 사상과 이단들의 뿌리를 분석하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오류를 참으로 논박할 수 있는 이는 교회 안에서 주어진 성령뿐이다. 이 성령을 먼저 사도들이 받았고, 그 후 정통 신앙을 지닌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우리 역시 그들의 후계자로서 같은 은총과 가르침에 참여하며, 교회의 수호자로 살아가고 있다”(히폴리투스, 모든 이단 논박서문).

히폴리투스에게 참된 신앙은 새로운 사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도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믿음, 교회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전승 안에 진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리옹의 이레네오의 정신을 이어받은 교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레네오가 교회의 일치와 사도적 계승을 강조했다면, 히폴리투스는 그 전승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히폴리투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과 회개 문제와 교회 규율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으며, 결국 한때 교회 역사상 최초의 대립 교황으로까지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단순히 분열이라는 말로만 기억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마지막 때문입니다. 그는 이후 로마 교회의 주교였던 폰티아누스와 함께 유배를 당하였고, 그곳에서 결국 교회와 화해한 뒤 순교자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교회는 훗날 그를 분열가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정 속에서 살아갔던 교부이자 순교자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수많은 정보와 사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과 화려한 주장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때로는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최근 발표된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 역시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다움과 진리의 문제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기술은 치유하고, 연결하며, 교육하고,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분열시키고, 배제하며, 새로운 불의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보자면 기술은 그 자체로 인류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자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을 구상하고, 자금을 대고, 규제하며, 사용하는 이들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 9).

초기 교회가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은 단순히 무엇이 새로운가가 아니라 무엇이 참된 신앙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히폴리투스는 그 답을 사도적 전승과 교회의 진리 안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황 레오 14세께서도 기술과 문명이 인간의 존엄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결코 대신할 수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시대는 달라져도, 교회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얼굴 안에 비추어지는 복음의 진리, 곧 하느님의 모상성입니다.

 

 

 

 

 

[구역반장 월례연수] 사랑 <가정>

사랑의 성소, 기장을 향한 교회의 조대

- 기쁨과 희망의 동행 -

 

1. 시대의 징표 :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길을 찾는 청년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급격한 사회 변화, 경제적 불확실성, 그리고 무한 경쟁의 굴레는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울타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축복이 아닌 생존의 문제포기해야 할 선택지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가족과의 갈등, 독신의 외로움, 자발적 무자녀, 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정서적 혼란과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징표와 젊은이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변화된 가치관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가정의 참된 의미와 행복을 다시 발견하도록 간절히 초대하고자 합니다. 가정은 단순히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나 경제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갈구하는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유일무이한 사랑의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2. 가정 공동체: 하느님 사랑이 구현되는 친교의 성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권고 가정 공동체를 통해 가정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하고도 거룩한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가정을 단순히 혈연의 집합체가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히브리어 바이트(Bayit)’는 건물로서의 집을 넘어 가족 구성원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실현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가정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징입니다. 청년들이 꿈꾸는 가정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선조들은 혹독한 계급 사회 속에서도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진리를 깨달아 신앙 공동체를 일구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우리 가정 안에서도 이어져야 합니다. 부부와 부모 자녀가 서로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고, 하느님 앞에 존귀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때 가정은 비로소 안식처가 됩니다.

가정은 서로의 믿음이 바닥나지 않게 돕고,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지탱해 주는 신앙의 학교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가정은 세상을 복음화하는 가장 강력한 보루가 됩니다.

 

3. 사랑의 기쁨: 일상의 구체적인 삶에서 만나는 자비의 학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권고 사랑의 기쁨을 통해 가정이 완벽한 성인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채워주는 자비의 학교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삶의 폭풍 속에서 흔들리고 찢어진 돛을 단 채 울며 기도해야 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하지만 가정은 내가 처한 문제를 다 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가족을 위해 다시금 손을 내밀고 위로할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곳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그 순간, 우리는 가정 안에서 부활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청년들에게 전해야 할 핵심적인 세 가지 진리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가정은 이 거창한 진리를 이론이 아닌 밥상머리일상의 대화속에서 몸소 배우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체득한 사랑의 기쁨은 담장을 넘어 사회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하느님의 진리 위에 바로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4. 2027 서울 WYD : 복음의 설득력 있는 증인이 되는 길

다가오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전 세계 청년들이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특히 이번 대회는 현대 사회 가정의 위기 속에서 참된 사랑의 가치를 성찰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찾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원가족의 상처를 안고 있거나, 혼자 사는 청년, 혹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고민하는 모든 젊은이와 함께 걷고자 합니다. 2027 서울 WYD는 어떤 처지에 있든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임을 깨닫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랑을 구현하며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함께 답을 찾는 자리

가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평신도 신앙과 순교 정신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생명과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줍니다. 세상이 주는 죽음의 문화소비적 사랑에 저항하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주역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기 집안을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1티모 3.5)라는 말씀처럼, 청년 여러분은 자신의 일상과 가정이라는 작은 밭을 먼저 사랑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곧 복음의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됩니다.

 

5. 성령의 이끄심에 몸을 맡기는 사랑의 모험

가정은 우리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비겁하게 숨어드는 도피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충전하여 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는 파견지입니다. 2027 서울 WYD를 향한 이 여정은 여러분에게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생명의 삶을 약속할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강조하신 가정의 거룩한 본질을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일깨워주신 구체적인 사랑과 자비를 여러분의 삶에서 실천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연약함을 생명력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며, 성모님께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 여러분의 사랑의 여정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구는 작은 사랑의 노력이 모여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성가정의 모범이 되고, 그것이 온 세상을 비추는 복음의 빛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정은 내 문제를 다 풀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위로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성소입니다. 이제 그 사랑의 기적을 향해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의 복음참조)

 

 

 

 

 

[구역반장 월례연수] 진리 <생명>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죽음의 문화를 넘어 생명의 복음으로 -

 

1. 시작하며 : 2027 서울 WYD, 생명의 축제로의 초대

우리는 지금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이하 서울 WYD)라는 거룩하고 은총 가득한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서울 WYD는 단순히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는 축제를 넘어,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가치인 생명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 생명의 기쁨을 함께 찬미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생명의 가치를 효율성, 생산성,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곤 합니다. 유용함이 존엄성을 앞지르고, 소유가 존재를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여정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단호하고도 따뜻하게 선포합니다. “어떠한 인간 생명도 우연히 생겨나거나 홀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숨을 직접 불어넣어 창조하신 고유하고 절대적인 선물입니다. 이번 서울 WYD를 향한 여정을 통해, 우리가 현대 사회의 소음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생명의 경이로움을 회복하길 희망합니다.

 

2. 생명의 복음: ‘죽음의 문화에 맞서는 예언자적 소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95년 발표하신 회칙 생명의 복음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위협을 죽음의 문화’(Culture of Death)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이는 진리나 객관적인 선과는 거리가 먼, 타인과의 연대 없는 왜곡된 자유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낙태, 안락사, 배아 복제, 유전자 조작 등 현대 사회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생명 경시 풍조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이 아닌, 하나의 도구나 자원, 혹은 처리해야 할 짐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교황님은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중단시키려는 모든 시도가 인간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는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주장 아래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생명을 보존하고 사랑하기 위해 주어지는 책임 있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사회가 종용하는 왜곡된 성 윤리와 생명관에 저항하며, 복음이 가르치는 책임 있는 자유를 살아낼 예언자적 소명으로 불림받았습니다.

 

3.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한 신비입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생명은 단순히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생물학적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맺어지는 신비로운 일치이며, 그 자체로 거룩한 성전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건강이나 질병, 지능이나 외모, 경제적 생산성의 유무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갓 시작된 보이지 않는 생명부터, 병들고 연약하여 타인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생명, 그리고 사회의 변두리에서 소외된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동일하게 눈부시고 소중합니다.

창세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숨결을 받아 생명체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인간 생명에 손을 대는 행위는 곧 창조주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에 도전하는 오만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생명을 하느님의 소유물로 여기며, 깊은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4. 청년들의 현실과 교회의 동행 :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

우리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젊음을 악용하고 왜곡된 성 인식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중독과 정서적 고립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디지털 중독, 약물, 혹은 무한 경쟁이 주는 무력감 속에서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자비의 손길을 내밉니다. 생명은 홀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내어놓고 연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의 사고와 언어에 맞는 방식으로 생명 윤리를 전달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가르침이 금지규제가 아니라, 우리를 참된 행복과 해방으로 이끄는 기쁜 소식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5. 2027 서울 WYD와 청년들의 사명 : ‘생명의 복음의 증인

서울 WYD는 한국 교회의 찬란한 뿌리인 순교 정신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신분과 계급의 벽을 허물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평등한 생명임을 고백하며 목숨을 바쳤듯, 오늘날의 청년들도 이 시대의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과 행동, 태도가 곧 가장 강력한 복음 선포가 됩니다.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태중 아기를 보호하고, 외로운 친구의 곁을 지키며, 생명을 경시하는 농담이나 문화에 가담하지 않는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세상을 치유합니다.

생명을 수호할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내 삶이 흔들리고 관계 속에서 낙담할 때,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와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과 머무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생명의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6. 성령의 이끄심에 몸을 맡기는 생명의 파수꾼

생명을 지키는 일은 곧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각자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생명의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어떠한 생명도 우연히 생겨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 밖으로 밀려나 있지 않습니다.

2027 서울 WYD를 향한 이 여정이 여러분에게 생명의 기쁨을 만끽하고, 그 존엄함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연약함을 강인함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며, 성모님께서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으로 여러분의 생명 수호 여정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십시오.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며, ‘죽음의 문화를 이기는 생명의 복음의 생생한 주인공이 되어 주십시오. 교회가 여러분의 그 용기 있는 걸음에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눈부신 가치를 드러냅니다. 여러분은 그 생명을 수호하고 꽃피울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의 복음참조)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24) 최필제(베드로)

배교 후 교회로 돌아와 순교로 보속한 약방 주인

 

복자 최필제(베드로, 1770~1801)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의 부인은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4쌍의 동정 부부 가운데 한 쌍이다. 황사영(알렉시오)백서에서 주문모 신부가 일찍이 최필제에게 탄복하고 칭찬해 말하길 부부가 정결을 지키는 자로서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아주 드문데 최필제 부부는 지조가 갈수록 굳어지고, 힘써 노력하는 것이 갈수록 부지런하니 참으로 어진 사람이라 하였다고 증언했다.

초기 조선 교회 지탱한 기둥 약방

최필제는 1770년 한양의 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그 또한 약방을 운영하며 생활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최필공(토마스)의 사촌 동생이다. 1790년 복자 최필공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진실하고 후덕하며 어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사촌 형 최필공조차 중대한 결정을 할 때마다 그의 의견을 들어본 후 행동할 정도였고, 약값이 싼데도 약재가 좋아 약국을 찾는 이 모두가 그를 신용했다.

약계(藥契)에 종사하던 조선 가톨릭 신앙공동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약방을 복음 선포의 장소로 활용했다. 약방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특별히 남의 시선을 끌지 않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중인 출신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양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이는 최필제, 최필공과 더불어 정인혁(타대오현계흠(플로로김계완(시몬손경윤(제르바시오손경욱·손경무·손인원 등이다.

약국은 초기 교회 조직을 떠받치고 있던 중요한 축이었다. 이들 약국이 대부분 오늘날 남대문과 중구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던 점도 흥미를 끈다. 최필공은 도저동(중구 도동), 최필제는 장흥동(중구 충무로 1?), 손경윤은 관정동(중구 태평로 2)과 안국동(종로구 안국동), 손경욱은 모화관(서대문구 영천동), 손인원은 남대문 밖 삼거리(중구 도동 인근), 김계완은 양대전동(서대문구 의주로 1), 정인혁은 광통교(중구 남대문로 1), 현계흠과 손경무는 회현동(중구 회현동)에서 약국을 열고 있었다.”(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260~261)

이들 대부분은 최필공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최필공과 정인혁은 친척 간이고, 손경윤과 손경욱은 형제이고, 손경욱은 최필공의 약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손경윤·손경욱 형제의 사촌 동생 손경무는 현계흠의 사위였다.

높은 식견·신분 한계 지닌 중인, 천주교 수용

조선 후기 신분제는 양반-중인-양인-천인 체제였다. 중인은 양반에서 도태되거나 양인에서 신분이 상승한 중간층을 일컫는다. 이들이 한양 중간 지점인 청계천 일대 북촌과 남촌에 거주해 중인이라 했다고도 한다. 중인은 주로 역관·의관·율관(법률사무천문관·서리·향리 등으로 활동했다. 조선 후기 지배층은 중인들을 사회 불만 계급이라고 인식했다. 양반도, 평민도 아닌 중인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던 정조는 중인들이 가톨릭 신앙에 심취할 가능성이 크고, 그들이 서학 곧 천주교에 빠지는 것은 그들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정조는 탄압하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교화시키고자 노력했다. 당시 중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의약과 통역 등 자기 직업과 관련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양반층에 버금가는 학문에 대한 교양과 사회 식견, 경제적 부유함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문화인 서양 학문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도망가라는 유혹 뿌리치고 순교

최필제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최필공과 함께 체포됐으나 배교하고 석방됐다. 곧바로 회개한 그는 다시 신앙 공동체로 돌아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신입 교우와 예비 신자들을 자기 집에 모아놓고 교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그를 찾아가 성사를 받고 자주 미사에 참례했다. “새벽에 김이우의 집에 갔더니 홍문갑의 집에서 신부를 모셔와 첨례를 한다면서 벽장 안에 예수상을 걸고 장막을 드리운 채 방석 등의 물건을 펼쳐, 신부가 윗자리에 앉았고, 저희가 벌려 앉았는데, 창밖에는 김이우 집안의 여인들이 또한 앉아서 강송하였습니다.”(사학징의, 최필제 공초; 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534)

최필제는 180122(음력 18001219) 자신의 장흥동 약방에서 신입 교우 오현달, 충주 아이 구석이, 종현의 이태랑, 생민동의 이범이 등과 함께 신앙 모임을 하다 체포됐다. 사촌 형 최필공이 체포된 지 이틀 후 벌어진 일이었다.

최필제가 형조 옥에 갇히자 그의 나이 든 아버지는 놀란 나머지 쓰러져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필제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형조 관리들은 그를 임시로 풀어주면서 넌지시 도망갈 것을 귀띔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제 발로 형조로 찾아와 옥에 다시 갇혔다. 최필제는 아버지 장례 때 몇몇 교우에게 저는 마귀에게 원수를 갚고, 전에 제가 배교했던 일을 보속하려 합니다. 저의 가장 큰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라며 순교의 뜻을 밝혔다.

최필제는 1801514(음력 421) 한양 서소문 밖 형장에서 정철상(가롤로정인혁(타대오윤운혜(루치아정복혜(칸디다이합규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사기그릇 장수 복자 한덕운(토마스)이 그의 시신을 거두었다.

 

 

 

 

 

[Soul 신부의 영혼의 법] 혼인 무효의 원인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교회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혼인을 준비하면서 교회법적 절차를 충분히 안내받지 못한 채 혼인을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 유효한 혼인인 줄 알고 살고 있었지만, 교회의 기준에서는 무효인 혼인인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경우를 판단할 때, 혼인이 무효가 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봅니다.

혼인 무효 장애

혼인에 앞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교회법적 장애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 장애는 사전에 제거되거나 교회 권위로부터 관면을 받아야 합니다. 가령, 이미 유효한 혼인 유대가 있는 상태에서 새 혼인을 맺은 경우 또는 비신자와 관면 없이 혼인을 맺은 경우, 장애를 제거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 혼인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합의의 결여

혼인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겠다는 자유롭고 성숙한 서약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혼인 당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

혼인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책임질 수 있는지

배우자에 대해 중대한 착오나 속임이 없었는지

강요, 폭력, 심각한 압박 없이 자유롭게 동의했는지

혼인의 본질이나 자녀 출산·부부의 신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는지

혼인 합의를 위한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혼인은 겉으로는 성립된 것처럼 보여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형식의 결여

교회법이 요구하는 혼인 형식을 지키지 않은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자와 신자 사이에서 성사혼을 하지 않은 경우,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서 관면혼 없이 혼인을 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교회는 해당 혼인을 유효한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기준에서는 아직 혼인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로 보게 되며, 그에 따라 성사 생활에 제한이 따를 수 있습니다.

이미 유효하지 않은 혼인을 맺었거나, 혼인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유효한 혼인을 맺을 수 있도록 영혼의 목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여 유효한 혼인을 맺으셔야 합니다.

 

 

 

 

[박병준 신부의 철학 상담] (68·) 진정성

진정성의 위기, 타자에 대한 돌봄 상실에서 비롯

 

오늘날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진정성이 의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진심을 호소하지만, 그 뒤에는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위선과 거짓이 숨겨져 있다. 정의 역시 정치적 도구화가 되어 정의라는 이름 뒤에 집단적 이익과 배타성이 자리 잡으면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면 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준다.

진정성(authenticity)은 고대 그리스어 아우텐테스’(αθέντης)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아우토스’(ατός)와 관련되어 이해되며, 일반적으로 자기 손으로 행하는 자혹은 행위의 근원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진정성을 언급할 때 중요한 요소는 거짓됨이 없는 마음과 그것이 진리에 입각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진정성은 계보학적으로 보면 주체의 권위를 최고의 지위로 끌어올려 기존 질서에 얽매임 없이 개인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근대 휴머니즘 기획 아래 형성된 개념이다. 진정성은 우선 내 삶의 태도로서 고유한 자기 세계관과 연결되며, 그 안에서 자기와 타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 내적 태도를 의미한다. 즉 우리는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면에서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실존철학은 자기 됨과 관련하여 진정성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하이데거의 용어인 본래성’(Eigentlichkeit)이 영미권에서 진정성으로 번역되면서, 진정성은 종종 자기 존재의 고유한 가능성과 관련된 현존재의 한 존재 방식으로 이해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원래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아도르노는 이러한 사유를 비판하며, 진정성 담론이 존재론적 깊이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공허한 언어 형식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곧 진정성은 사회적 매개 구조를 은폐하고, 이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언어 형식으로 기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터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성이 모호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것의 추구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허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즉 진정성이라는 이상은 오히려 위선과 연출을 수반하며, 소비문화 속에서 하나의 가치 코드로 기능한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진정성은 문화산업의 상품 코드로 작동할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해체되어야 할 허위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정성과 관련하여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은 여전히 삶의 핵심 과제이다. 삶의 진정성을 상실할 때 우리는 행위의 방향을 상실하기 쉽고, 그 결과 삶의 의욕과 의미 역시 약화된다. 진정성의 결여는 곧 마음의 병리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정직한 대면이 요구된다. 노딩스는 참된 자기에 이르는 길을 관계 속의 자기’(the self-in-relation)에서 찾는다. 오늘날 진정성의 왜곡은 타자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데서 발생한다. 관계의 결여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없다. 자기는 돌봄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며, 진정성 역시 타자에 대한 돌봄의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위선과 거짓, 자기 이익으로 덧씌워진 오늘날의 왜곡된 진정성은 결국 타자를 진심으로 돌보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12) 걸리버 여행기: 약자에 대한 공감

지배자의 오만함에서 벗어나 억압받는 이들의 아픔 속으로

 

현대 영국 소설을 대표하는 이언 매큐언은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9·11 테러범들이 치명적인 상상력의 실패를 겪었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만약 그들이 피해자들의 마음과 감정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폭력으로 인해 겪을 고통을 인식할 수 있었다면, 그토록 잔혹한 행위를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갈등을 감내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마음 혹은 공감 능력이다. 성경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타인의 내적·외적 상황을 깊이 살피도록 초대한다. 마태오복음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라는 황금률을 선포한다.

1726걸리버 여행기가 출판되었을 때, 이 책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완판되었을 정도로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소인국, 거인국, 날아다니는 섬 등의 놀라운 상상력은 독자들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아동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 본성과 문명의 어두운 면들 그리고 18세기 영국 사회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대표 풍자소설이다.

2부에서 유럽의 정치 제도, 전쟁, 화약과 총기의 사용에 대한 걸리버의 이야기를 들은 거인국 브롭딩낵의 왕은 이렇게 말한다. “자네 나라의 인간들은 자연이 이제껏 이 지구상에서 기어다니게 한 벌레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벌레들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특히 인간의 이기적 오만함과 거만함에 대한 일침이다.

돈을 벌기 위해 선원들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의사였던 걸리버는 어느 날 자신이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우연히 소인국에 표류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했던 주인공은 소인국에서 자아와 우월감이 극대화되는 오만함을 경험한다.

개미 같은 소인국 사람들과의 압도적인 신체 차이로 인해 주인공은 보통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그의 우월성은 신체적 감각을 통해 느껴진다. 그들이 쏘아대는 수많은 화살은 그에게 거의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다루며, 수백 명분의 식사를 한 번에 먹어 치운다.

걸리버는 아무리 많은 군인이 자신을 공격하더라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인국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자각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릴리퍼트인들을 짓밟을 수 있는 절대적 지배의 가능성을 통해 우월감이 내면에 자리 잡는다.

걸리버는 블레푸스쿠 제국의 군함 50척을 밧줄로 엮어 릴리퍼트 왕국의 항구로 모두 끌고 와 적의 침략을 막아낸다. 뭍에 상륙한 그를 황제는 온갖 찬사로 반겼고, 즉석에서 그 나라 최고의 호칭인 나르닥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걸리버 자신의 우월한 정체성은 내면에서뿐만 아니라, 외적인 인정으로 한층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제2부 거인국에서 주인공은 소인국 사람들의 처지가 되어 굴욕과 무력감을 겪게 된다. 소인국에서 부풀어 오른 자만심에 주변 사람들의 상황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는, 홀로 남은 땅에서 거인들을 목격하고 처음으로 소인국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릴리푸트 사람 하나가 영국인들 속에 있다면 아주 우습게 보일 것처럼, 내가 현재 이 나라에서 앞으로 얼마나 가소롭게 보일 것인지 생각하면 괴롭기 짝이 없었다.”

소인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했던 그 신체는, 이제 거인들 앞에서 왜소하고 미약한 존재가 된다. 평소 상대조차 되지 않았던 대상들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쩔쩔매야 한다. 농부의 어린 아들은 그의 한쪽 다리를 붙잡아 공중에 매달아 올린다. 갓난아기는 걸리버를 꽉 움켜쥐고 그의 머리를 입에 넣으려 하다, 그의 비명을 듣고 놓아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걸리버가 여성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면이다. 당시 여성들은 독립적 주체로서 인격과 존엄성을 보장받기보다는, 신체를 타인의 사용이나 쾌락을 위한 대상 혹은 상품으로 취급받으며,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주인공도 어른이지만 항상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채로 옮겨 다니고 보호받아야 하는, 즉 강요된 의존 상태를 경험한다.

농부의 딸인 글럼달클리치는 인형 침대를 개조해 걸리버를 재우며,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벗겨주기도 했다. 옷도 여러 벌 만들어 주었다. 18세기 여성 패션의 확산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패션 인형처럼, 걸리버의 몸은 상품화된다.

상품화된 여성의 몸은 응시(gaze)의 대상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농부의 아홉 살 된 딸에게 종속되어 인형처럼 다뤄지는 걸리버도 응시의 대상이 된다. 그의 작은 몸은 호기심 혹은 신기함의 대상으로 관찰되고 전시되며, 구경거리로 돈벌이가 되었다. 심지어 왕비의 시녀들은 그를 구경도 하고’, ‘완전히 발가벗겨서는 품에 껴안기도 하는 등, ‘아주 역겨운 행동을 했다.

18세기 영국은 아일랜드를 식민 지배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토지 소유권을 박탈당하고 종교 차별을 받았으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아일랜드 성공회 신부였던 스위프트는 누구보다도 억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걸리버 여행기뿐만 아니라, 다른 저서들에서도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걸리버 여행기1부와는 대조적으로 제2부에서 주인공이 겪는 굴욕과 무력함은 바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배하는 자들의 자기중심적 오만함에서 벗어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려보도록 초대한다.

미약한 존재가 된 걸리버는 그리스도교 윤리에서 강조하는 소외된 존재들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다. 예수님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라고 가르침으로써, 작은 이들이 예수님만큼 중요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에 멈추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신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히브 13,3)

비록 걸리버는 거인국에서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우습고 골치 아픈 일을당해야 했지만, 그 이후 나머지 이야기에서 도덕적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 여기에 저자의 중요한 통찰이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 사도는 물 위를 걷다 믿음이 흔들려 물에 빠져버리거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복음사가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유는 베드로 사도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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